▲김종대 <디펜스 21 플러스> 편집장
유성호
-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주요한 위협으로 떠오른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도발의지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이른바 '능동적 억제전략'이 대두됐다. 최근 결정된 차기전투기 사업(FX), 대형 공격헬기 사업(FHX) 등 대형무기 도입사업도 이 전략을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미국 얘기를 좀 해보자. 지난 2004년 공개된 9·11 테러 조사 보고서를 보면 알 카에다가 테러 공격을 위해 쓴 돈은 많이 잡아야 50만 달러에 불과하다. 그런데 미국이 보복차원의 대테러 전쟁을 위해 지출한 비용은 4조 달러에 달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쓴 돈의 800만 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쏟아 부은 결과는 나라가 거덜 나는 경제 파탄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최근 추진하는 대형무기 도입 사업을 보면 비대칭 위협에 첨단 무기체계로 대응하려다가 실패한 미국의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비대칭 위협에 대한 이해 없이 이것에 대응하기 위해 FX, FHX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아주 기계적인 발상이다."
- 비대칭 위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약소국이나 약소집단 입장에서는 총력을 다 동원해서 전쟁을 하는데, 역사적으로 미국은 돈이 있으면 전쟁을 하고 없으면 전쟁을 할 수 없는 문화다. 미국 입장에선 전 세계에서 위협이 다양화되면 다양화될수록 국방비를 늘려서 대처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그 결과 재정파탄에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미국은 지금 거의 빈사상태에 빠졌다.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보자. 냉전시대 미국은 소련이라는 명확한 경쟁상대가 있었고, 당시 하나의 고정관념은 상대방과의 군비경쟁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소련 해체 후 이제는 상대방의 결정적 우위에 있는 지점을 회피해서 자신이 결정적 우위에 있는 지점으로 전쟁의 무대를 옮겨버렸다. 물론 냉전 시대에도 약소국은 이런 방식을 써왔지만, 최근에 와선 더욱 일반화되어서 미국의 군사력 자체가 이런 국지전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게임의 룰이 바뀐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세계 최고성능의 무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비한다고 하면, 이것은 이제까지 미국이 무수히 실패했던 교훈을 망각하는 것이다. 또 앞으로의 국방소요를 무한대로 열어 놓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대형무기 도입은 막대한 재정적 압박을 초래하는데, 이 정부는 결정만 해놓고 떠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정부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도 북한의 새로운 비대칭 위협이 제기될 때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대응하는 전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무기 도입사업이 무시무시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북한에는 순수한 의미의 군사작전 존재하지 않아"
- 그래도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대처 방법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문제는 이런 비대칭 위협에 우리가 군사적으로 다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북한에는 전면전이 아닌 상황에서 순수한 군사작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기 위해 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할 뿐이다. 연평도 포격을 당하고 나서 서북도서 요새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모델이 된 것이 바로 타이완의 진먼다오(金門島) 아니었나.
그런데 미 국무장관을 지냈던 헨리 키신저가 쓴 '중국이야기'에는 충격적인 대목이 나온다. 당시 중국은 타이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짝수날에만 포격을 하고 홀수날이나 공휴일에는 포를 쏘지 않는다는 식으로 제한전을 했다는 것이다. 좁쌀만한 섬에 대한 아무런 점령의지 없이 중국이 스스로 제한전을 벌였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타이완이 섬을 지켜냈다고 높이 평가를 하지만 실상은 당시 중국이 섬을 점령할 의도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서북5도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북한의 특수부대가 서북5도를 점령한다는 전제 아래서 우리가 아파치 헬기를 사려고 하고 또 여러 가지 상륙 차단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북은 서북 5도를 점령할 의도가 없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인 논리와 군사적인 논리를 구분하고 경계선을 짓지만 북한에선 그 경계선이 확실치 않다.
황장엽 선생도 증언했듯이 북한 군부는 정치심리전의 일환으로 남측을 혼내주기 위한 의도, 자신이 공격받을 것에 대비해 선제적 군사행동을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거부하는 이런 목적에서 일탈해서는 총 한 방 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무기 소요는 북한이 어느 날 서북5도를 점령할 수도 있고, 영종도에 화학무기를 쏠 수도 있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는데, 이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대응 무기를 갖겠다는 것 아닌가? 이것은 반드시 무기 소요의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