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가계 부채의 증가 추이자료 : 한국은행
새사연
빚은 늘어나고, 저축은 줄어드는 불안한 미래가계부채 증가속도는 2009년 잠깐 내려갔지만, 2010년 다시 빨라졌고, 평균 8% 이상 유지되고 있다. 이는 가계 소득증가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 경제 성장률마저도 웃도는 증가 속도다. 그 결과 2011년 3분기 가계부채는 1071조 원까지 올라갔는데, 최근 1년 동안에만 약 90조 원이 늘어난 것이다. 가처분 소득대비 부채 비율은 2010년 157.6%까지 올라갔고, GDP대비 비중은 86.4%까지 늘어났다. 회복되는 듯하던 경제가 올해부터 다시 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당장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늦춰야 하는 것은 물론 절대 규모를 줄여야 하는 난제가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부채가 늘어나는 동시에 저축이 줄어드는 구조 역시 전혀 바뀌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저축성향은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유낙하 수준으로 추락해 2007년 2.6%까지 내려갔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빚은 계속 늘어가고, 저축은 거의 할 수 없으며, 그래서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미래 위험에 전혀 대응할 수 없는 가정경제 패턴이 2000년대 이후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은 부채를 제공하고, 부동산은 투기를 유도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하면, 1990년대 말 이후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확대 등 우리나라도 유럽 선진국처럼 사회보험 부담금이 늘어나면서 가처분 소득은 줄고 저축 유인이 줄어든 것이 하나의 요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일부 영향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전혀 본질적인 측면은 아니다. 사회보장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인 스웨덴, 노르웨이의 저축률이 모두 OECD평균 이상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실 소득을 묶어놓고 부채를 늘려서 민간소비를 증대시키는 경제성장 패턴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성장 메커니즘이었다. 가계 부분은 부채로 소비해 구매력을 유지시키고, 금융 부분은 부채 공급을 위해 다양한 대출상품을 쏟아내면서 성장 동력을 확대하고, 부동산과 자산시장 부분은 투기를 유도함으로써 저축을 자산시장으로 유입시켜 성장세를 이뤘다. 이로써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 안정기(Great Moderation)를 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최종적인 붕괴가 바로 아직도 진행 중인 '글로벌 금융위기'다.
가계부채 문제는 신자유주의식 성장을 폐기할 때 해결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로 전환됐다는 것은 단순히 규제완화와 감세, 금융화, 민영화 논리가 정책으로 채택됐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양식도 부채를 늘려 내수를 촉진하고 가계경제를 성장시키는 경제시스템, 이른바 '적자호황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유형의 시스템이 이미 붕괴된 미국은 2009년부터 부채축소, 저축확대의 단계에 들어갔지만, 아직 직접적 충격이 없는 한국과 상당수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적자 호황' 국면의 끝 언저리를 맴돌면서 부채 위험요인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낮은 소득-높은 부채-낮은 저축'은 이제까지 가계의 희생을 담보로 해 신자유주의적 내수 성장 동력이 돼 왔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의 가계부채를 줄이는 문제는 신자유주의 방식의 내수 성장 동력을 폐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또한 1998년 이후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누적된 가계 부채를 줄여 가면서 새로운 내수 성장 동력과 가정 경제 살림 패턴을 전환시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부채의 양적 증가와 함께 대출 구조의 취약성이 문제우리 가계의 두 번째 위험성은 부채구조가 다른 나라와 달리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에 있다. 이 역시 익히 알고 있는 문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취약성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구조적 취약성 세 가지를 짚어보자.
1) 대출기간이 짧고 원리금 일시상환이 많다만기가 10년 미만인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통상적으로 모기지 대출은 20~30년 장기 대출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출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 길지 않은 대출기간에 더해 원금상환 방식도 만기 일시 상환 비중이 37.3%로서 매우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 가계 대출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말부터고, 특히 2005년 이후 더욱 팽창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대출 만료 기간이 집중되는 시점이 오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나마 3~5년 동안의 거치기간을 정해서, 은행이 거치기간을 연장해주거나 새로운 대출로 갈아타는 방식을 통해 거치 기간을 갱신함으로써 원리금 상환을 회피하는 경우가 3분의 1 정도 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규제와 은행의 대출 태도 변화로 거치기간 연장이나 갱신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2012년에는 이런 부분이 구조적 취약점이 돼 터질 수 있다.
2) 이자만 갚아 왔는데... 이제는 원금상환 시작지금까지는 이자만 갚으면 됐기 때문에 현실적 연체나 부실위험이 적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원리금 상환이 개시되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은행들은 2005년부터 거치기간을 설정한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을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은행에 의하면 최근 들어 이런 대출의 거치기간이 종료되고 있다. 실제 자료를 봐도 2010년 말까지 이자만 갚는 주택담보 대출 규모가 17.7%에 불과했는데 6개월 뒤에는 22.0%까지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올해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가계의 상환부담은 이전보다 훨씬 커질 것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부채 상환능력이 낮으면서 이자만 납부하는 부채상환 능력 취약 대출'이 전체 주택담보 대출 잔액의 26.6%를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 연 소득 수준이 2천만 원 미만인 비중도 39%에 달한다는 점이다. 특히 부채상환능력 취약 대출의 만기도래가 2012년 21.2% 몰려 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진단이다. 구조적 취약성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올해 상당히 커졌다는 얘기다.
3) 금융시장 변동성에 약한 변동금리 대출이 90%가계 부채 가운데에서 시장 금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고정 금리보다는 변동 금리형태가 91%로 압도적으로 많아 금리인상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주택관련 대출에서 변동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기준 미국 10%, 프랑스 13%, 영국 62% 등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변동 금리형 대출은 금리 변동시 그 위험을 은행이 아닌 가계가 부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계에 불리한 구조다. 결국 금리변동이라는 미래의 위험을 은행이 아니라 가계가 부담하도록 설계돼 있는 금리 조건이다. 물론 올해 상당 기간은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에서 묶어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금리변동으로 인한 가계 충격이 단기간에 올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높은 경기변동성은 경제변동 여건에 따라 언제든지 금리 변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할 때에 가계가 받는 충격도 매우 커질 것이다. 또한 금융당국도 가계 부채라는 족쇄에 갇혀 경기변동에 대응하면서 금리정책을 유연하게 사용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위험, 서민 부채의 급증이상 살펴본 가계부채의 양적 증가와 구조적 취약성에 더해 지난해 이후 가계부채에 대한 새로운 이슈가 발생하고 있다.
1)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이 크게 늘고 있다첫 번째는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의 대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0년에서 2011년 상반기까지 은행 대출은 8.5% 증가한데 비해, 제2금융권은 두 배가 넘는 17.9%나 늘어났다. 지방 주택경기 상승에 따른 상호금융의 주택담보 대출이 늘어나고, 서민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2금융권 이용을 늘렸던 점이 수요 측면의 이유일 것이다. 동시에 2010년 이후 신용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다시 영업을 재개하고 은행에서 분리되면서 대출경쟁에 나섰던 공급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제2금융권 대출의 확연한 증가를 이끌었던 것은 카드사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체 가계 대출에서 차지하는 은행의 비중은 줄어들고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 대출 비중은 높아졌다. 똑같은 가계 부채규모라고 해도 가계가 짊어질 부담이 커진 것이다. 제2금융권의 평균 대출 금리는 24.4%로 은행 대출금리 9.8%의 평균 2.5배에 이른다. 제2금융권에서는 초저금리 시대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2) 비싼 이자로 돈 빌리는 계층은 저소득층평균 20%가 넘는 고율의 이자를 물고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계층은 주로 저소득층이다. 저소득 계층의 경우 대출 잔액은 전체 가계 대출의 12%에 불과하지만 2010~2011년 상반기 중 총 대출 증가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달해 여타 소득 계층에 비해 증가폭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림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