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무역 의존도와 민간소비 국제비교무역의존도 = 상품교역량/GDP×100, 자료 : Global Insight, OECD
새사연
그런데 '다음은 2조 달러'라는 식의 목표를 성급히 세우기 전에 돌아볼 것이 있다. 먼저 우리의 무역 규모가 세계 9인데 비해 경제규모는 15위라는 점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래
[그림1]을 보면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는 90~100% 안팎으로 대단히 높다. 일본에 비해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출로 성장하고 있어 대외 변수에 취약하다는 중국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말고 아무것도 없던 한국경제가 50년 동안 땀 흘려 노력하여 5천억 달러 이상의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팔고, 또 그 만큼의 물건을 밖에서 사다가 쓸 능력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해외에 내다 팔기만 하느라 정작 50년이 지나도록 우리 자신이 윤택하게 살게 위해 나라 안에서 소비하는 규모는 상대적으로 성장하지 않다. 즉, 무역규모가 팽창하는 만큼 내수규모가 커지지는 않았다.
[그림1]을 보면 우리 경제에서 민간소비의 비중은 52%로 중국을 제외하고는 주요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낮다.
결국 무역 1조 달러 돌파는 수출지향형 한국경제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수와 수출의 상대적 격차가 그만큼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자본과 기술, 시장 등 아무것도 없고 저임금 노동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수출지향형 공업화를 추구해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50년이 지나고 무역규모는 1조 달러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의 내수기반이나 국민들의 소득과 소비기반이 동반 성장하지 못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세계 경제 침체, 더 이상 무역에 의존할 수 없어 소득에 비해 과도한 소비,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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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해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라는 책에서 미국 경제학자이자 전 노동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한다. "너무 많은 빚이 문제가 아니고 너무 적은 소득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너무 지나치게 대출을 받은 소비자들을 비난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경솔하게 대출을 남발한 은행을 나무랐다. 어떤 이들은 자기네 물건을 수입하랍시고 우리에게 기꺼이 많은 돈을 빌려준 외국 채권자들, 특히 중국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국민들이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이 소비한 것이 문제"라고 비난할 때, 라이시(Robert Reich)는 "진짜 문제는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수입 이상으로 (부채를 얻어) 지출하고 소비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수입이, 경제 성장에 따라 그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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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무역 환경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결코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다. 지금 세계는 전통적인 수출 주도형 국가는 물론이고 세계 소비시장 국가인 미국까지 앞장서서 수출 경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나라가 경제위기로 망가진 내수시장을 대체할 외수시장, 즉 수출시장을 찾아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를 위해 환율인하 경쟁도 마다하지 않으며 국제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갈등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동안 수출 의존도가 크고 무역수지 흑자가 컸던 독일, 일본, 중국, 한국 같은 나라들에 대한 경계와 비난의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
오랫동안 항상 당위적인 명제일 뿐이었던 내수 기반 강화가 이제는 현실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매우 절박한 문제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올해 '내수 살리기 백가쟁명'의 정치구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내수를 이루는 중요 요소로는 기업 투자나 정부소비도 있지만, 여기서는 특히 민간 소비 측면에서 들여다 보기로 하자.
민간소비 증가율 3.1% 전망하지만일단 우리 정부는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이 3.1% 증가하여 지난해의 2.5%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하며 수출 부진을 상당부분 민간소비가 받쳐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우리 경제에서 내수 확장에 의해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는 1990년대 전반기 정도다. 그 시기 외에 민간소비가 성장률을 추월했던 시기는 카드대출 남발이 횡행했던 1999~2002년 정도였다. 나머지 시기는 모두 민간소비가 성장률을 밑돌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취약한 민간소비 능력조차도 상당 부분은 노동자의 실제소득이 아니라 금융대출과 부채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 빚을 얻어 소비를 하는 일종의 '적자 호황'이 이어진 것인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적자호황의 붕괴를 의미했다.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럽은 물론 한국 역시 더 이상 빚으로 소비를 할 수 없게 되었고 민간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현재의 내수기반 약화는 바로 이런 적자호황 붕괴로 나온 결과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 단지 물가 상승률이나 소비심리 따위로 판단될 문제가 아니다.
소비와 저축은 하락, 부채는 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