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가장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세운 거대한 신전인 아부심벨 신전. 사막에 묻혀 있던 신전은 탐험가 벨조니에 의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일반적인 고대 이집트의 부조 석상과 달리 얼굴을 정면으로 조각한 것이 특징.
박경
새벽 2시 반. 늦도록 수크 거리를 쏘다니다 설풋 잠든 여행자들이 화르륵 깨어나야 할 시간, 뒷골목의 호텔 창문에 하나둘 불이 켜지는 시간이다. 이집트의 어느 곳보다도 아스완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세계문화유산인 아부심벨을 보려고 아스완으로 모여든 여행자들은 새벽 3시부터 호텔을 도는 투어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물론 좀 더 늦게 시작되는 투어도 있다.
우리 가족도 지난밤, 아부심벨 투어를 신청하려고 수크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소개하는 투어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작고 허름한 호텔을 돌며 흥정해 보았지만 제시하는 가격도 다 제각각. 투어의 질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계약을 했다. 그런데 같은 버스를 탔다고 해서 가격이 같은 게 아니라 다 흥정하기 나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어둠을 뚫고 한곳에 모인 버스들은 경찰차 'Convoy'의 호송 하에 아부심벨을 향해 세 시간도 넘게 줄지어 달려간다. 수년 전 아부심벨을 향해 가던 독일인 관광객들이 괴한들에 의해 살해됐다. 범인은 누비안들, 그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그 후 아부심벨로 가는 육로는 차단되고 비행기로만 접근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비싸 관광객이 뚝 끊겨 버렸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이집트로서는 육로 여행길을 다시 열 수밖에. 대신 경찰차의 호송 하에 육로 여행이 재개됐다.
차창 밖은 짙은 어둠뿐이고 선잠이 깼던 여행자들은 적당히 흔들리는 차 속에서 이내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나는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칠흑처럼 어두운 차창 밖으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후드득. 세상에 이런 별들은 처음이다. 이렇게 크게, 가까이서 빛나는 별들은 처음인 것이다. 나는 얼른 딸을 흔들어 깨웠다. 나보다도 더 별을 본 적이 없어 더 별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딸은 차창 가득 빛나는 별을 보더니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 아주 가끔은 휴양림 같은 곳에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꺾어 올려봐야 하는, 하늘 저 멀리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오는 기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집트 사막을 몇 시간 달려 맞닥뜨리는 별들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 별들의 향연을 열고 있었다. 사막의 지평선은 멀고도 멀어, 버스 창 가득 별이 박혀 있고, 고개를 젖히지 않고 바로 내 눈높이에서 커다란 별들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별들이 너무도 크고 선명했고 저절로 별과 별들이 이어져 있어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책에서 본 별자리가 한눈에 들어올 판이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가슴이 설렌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아, 별을 보고 저 별을 꿈꿀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차 안은 불이 꺼져 있고 여행자들은 잠들어 있다. 사막의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아, 난 마치 별들 속에 버려진 존재처럼 아득함이 밀려왔다. 별을 보고 비로소 내 위치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저 별을 느끼지 못할 때는, 난 그저 평평한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저렇게 완전하게 빛나고 있는 저 별은 둥근 지구라는 작은 별 위에 내가 동그마니 서 있다는 걸 일깨워 준다.
딸과 나는 창밖의 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각자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을 잃어버린 건, 어쩌면 저 별을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렘도 떨림도 더 이상 없는 건 내 마음속의 별을 일찌감치 밀어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던 시절은 진정 행복했을 것이다. 우린 이제 닿을 수 없는 것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해 버린 지 오래다. 저 어둠 속에서, 저 별들은 제 존재를 알리듯이 저렇게 와락 달려들고 있는데.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내 가슴 속으로 쳐들어 왔던 별은 그렇게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아부심벨에서 감 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