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샤리콩, 쌀, 마카로니, 면 위에 소스를 얹어 먹는 이집트 대표적 서민 음식.
많은 사람들은 코샤리가 맛있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은 한번 먹어 보고 끝.
이집트 민주화 혁명을 '코샤리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박경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보고 오길 잘했네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두 번이나 들렀다는 사실이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박물관의 유물들이 파손되고 사라졌다고 뉴스는 전했다. 약탈자들은 지붕의 유리 천장에서 로프를 타고 박물관의 맨 위층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다 보려면 아홉 달이나 걸린다는 이집트 박물관을 겨우 두 번 방문해서 뭘 얼마나 보았겠는가마는, 그래도 유물이 사라지고 약탈자들의 손을 타기 전에 들렀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사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의 첫인상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붉은 색 외관은 다소 촌스러울 정도였다. 박물관에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돌로 된 유물들 때문인지) 좀 으스스한 기운마저 돌았다(2층에는 미이라 전시실이 있고 투탕카켄의 유물들로 가득하다는, 말하자면 온통 무덤에서 파낸 것들 투성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15만 점이나 되는 유물, 100개나 되는 방들, 규모만도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1층 메인 홀에는, 몇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고색창연한 유물들 중 많은 것들이 유리관에 갇혀 있지 않고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이쯤 되고 보니 저절로 새어나오는 말, "이게 창고야 박물관이야?"
죽음의 기운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2층에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과 미이라 전시실이 있었다.
투탕카멘의 미이라 바로 위에 씌워졌던 황금 마스크와 금관 앞에 서고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평소 금붙이의 누런빛이 촌스럽다 생각했었는데, 200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황금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11kg이나 되는 황금 마스크의 아몬드 같은 눈을 통해 18세에 죽은 소년 왕 투탕카멘의 눈매를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투탕카멘의 금박 입힌 커다란 관과 죽은 자의 몸에서 끄집어 낸 위, 장, 폐, 간을 담는 캐노푸스 단지들이 복도 전시실에 가득했다.
미이라 전시실 입장료는 박물관 입장료보다 더 비쌌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딸랑 미이라 12구 보는 데만 우리 가족은 260이집션파운드(우리 돈으로 5만7000원쯤 된다. 1E£는 약 220원)를 지불해야 했다.
가이드도 들어갈 수 없는 어둑신한 전시실에 들어서서, 유리관에 누워 있는 미이라를 내려다보는 순간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 내 상상 속의 위대한 파라오보다는 다소 왜소해 보였다. 엄청나게 큰 피라미드와 신전을 건축한 파라오라면 기골이 장대해야 마땅했다. 죽음과 오랜 시간 앞에서는 파라오도 별 수 없었던 걸까. 시커멓게 말라붙은 피부와 곱은 손가락은 생기 없이 쪼그라들어 손만 대도 바스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카데시 전투에서 인류 최초의 평화협정을 맺고, 그 유명한 아부심벨 신전을 건축한 람세스 2세의 머리카락은 비현실적으로 생생했다. 쪼그라든 발가락에 달라붙은 천조각들이며, 발톱이나 손톱, 속눈썹까지 그대로인 미이라도 있었다.
이 비현실성이 다가오지 않아 나는 미이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이라가 되는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죽은 자의 콧구멍으로 쇠갈고리를 쑤셔 넣어 두뇌를 빼내고, 텅 빈 두개골은 탄산소다와 회반죽으로 채워 굳히고, 복부를 절개해 내장을 나누어 캐노푸스 단지에 담는다. 아차, 심장은 남겨두어야 한다. 그건 저세상에서 심장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 심판을 받을 때 필요하기 때문이다.
텅 빈 몸속은 야자술로 깨끗이 씻고 몰약과 향료를 채우고 꿰맨다, 시신을 70일 동안 탄산소다에 담가 두었다가 씻어 붕대로 감는다, 생전의 모습을 닮은 황금 마스크를 씌운다, 그리고 미이라를 관 속에 넣는다, 또 관에 넣는다, 또 관에 넣는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인형 속의 인형 속의 인형 속의 인형…처럼.
그러고 보니 박물관 2층은 죽음의 기운이 가득 흐르는 곳, 죽음의 기운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었다.
또 저절로 새어나오는 말, 이게 무덤이야 박물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