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안 마을원래 가려던 엘레판틴 섬에 가지 못하고 나일강 서안으로 갔다. 누비안 마을이 뭐 별건가. 누비안들이 살면 누비안 마을이지.공사중인 마을의 어느 곳.
박경
무서운 아이들작고 소박한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아까 그 녀석들이 또 진을 치고 있었다. 도망치듯 우리 가족은 강가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녀석들은 다람쥐처럼 잽싸게 따라 붙었다. 그만 돌아가라고 팔을 휘저었으나 막무가내다. 남편과 딸은 벌써 저만치 달아났다.
나는 엉거주춤, 아이들에게 뭐라도 주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길게 가랑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카메라를 가리킨다. 사진을 찍어달란 얘긴가? 그 정도 서비스는 내가 해 주지. 사진 찍히고 싶어하는 걸 보니 애들은 애들이구나, 싶어 한 장 찍고 돌아서는데, "포토 머니" 날카롭게 울린다.
돌아보니, 아이들의 눈빛과 목소리는 완전히 달라졌다. 졸졸졸 꽁무니를 따라오며 구걸하던 아이들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듯 노골적이고 공격적이다. 아니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기세로 나를 빙 둘러싼다.
나는 서둘러 동전을 하나씩 나눠 주곤 돌아서려는데 녀석들이 앞을 가로막고 선다. 안 받은 녀석도 있다고 하소연이다. 대여섯 명이나 되는 녀석들, 나이도 달라 키도 들쑥날쑥, 한꺼번에 손을 내미는데, 받고 또 받는 녀석도 있는데, 그걸 다 일일이 줄 세워 확인하지 못한 불찰이다. 굴침스럽게 들러붙는 녀석들이다.
앗 뜨거라, 내 뺄 수밖에. 덤불을 헤치고 도망치는데, 녀석들은 더 위협적으로 따라붙었다. 덜컥 무서웠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들이니까 더욱.
빨리 강가에 이르기를 기도하며 힘껏 달렸다. 소리를 악악대며 쫓아오는 녀석들은 더 이상 다람쥐가 아니다. 녀석들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한 절대 포기하지 않을 듯이 필사적으로 나를 따라왔다. 외딴 마을에서, 낯선 사람이 찾아들기를 기다리며 석 달 열흘이나 굶주린 짐승처럼 그렇게 그악스럽게. 어린아이들이라고 너무 만만하게 본 걸까.
드디어 아흐마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는데, 녀석들은 배가 정박한 모래강변까지 쫓아왔다. 멀리서부터 보고 있던 아흐마드는 배에서 내려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아흐마드가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치자, 그 순간 아이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나일강 위에 떨어지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저 녀석들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조금 전 그들은 절대 아이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처럼 악착스럽고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아흐마드의 한마디에 와르르 넘어가는 걸 보니, 애들이 맞긴 맞다. 녀석들은 천진한 모습을 되찾았다. 녀석들은 금세 순순해져서 저들이 달려온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내가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구나, 가끔씩 찾아드는 무책임한 여행자들이 그 아이들을 그렇게 길들였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쓸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