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 일을 하는 모습
강무성
공무원을 꿈꾸던 나, '도배 노동자'가 됐다나는 학원을 졸업한 뒤, 서울 송파구 쪽에 있는 재건축 현장으로 취업이 됐다. 그곳은 대기업 S물산이 원청으로 되어 있었다. 소장이 나에게 J장식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는 안전모를 줬다. 나는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하청업체의 일용직 '근로자'로 계약이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오전 6시 40분까지 현장에 도착한다. 체조를 하고 원청 관리자의 훈계까지 듣고 나면 7시 20분 정도 된다. 여유롭게 모닝 커피를 즐긴 다음에, 7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하면 된다. 낮 12시까지 신나게 도배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도배를 하고 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건설 현장에서 보면 도배는 마무리 단계에 적용되는 노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장비를 사용하는 노동에 비하면 덜 힘들고 덜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또 실내에서 작업하는 것도 장점이다(그렇다고 여름에 에어컨 바람이 나오거나 겨울에 보일러를 돌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도배 학원을 졸업하고 현장에 나온 사람들 중 열에 여덟은 중간에 그만둔다. 그 까닭 중 하나가 '나름' 일이 고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아파트 각 세대를 돌며 하루 종일 도배를 해야 한다. 우마(발판) 위에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붙이고 떼고 자르는 것을 계속한다. 천장에 벽지를 붙일 때는 목과 허리를 뒤로 최대한 젖혀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전 원청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우리 팀 모든 사람들의 요추 4번, 5번이 퇴행성이라고 나왔다. 모두들 직업병이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던 것이 기억난다.
벽에 벽지를 붙일 때는 벽지의 3분의 2 정도를 기공이 우마에 올라가서 붙이고 내려온다. 그럼 나머지 3분의 1은 나 같은 초보들이 마무리한다. 기공이 먼저 붙이면서 치고 나가면 초보는 그 속도에 맞춰서 나머지 벽지를 붙여가야 한다. 그때 계속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나 무릎에 무리가 온다.
거기다가 작업 중간에 휴식 시간이나 새참 먹는 시간은 없다. 쉬고 싶을 때는 소장이나 반장 눈을 피해가면서 알아서 쉬면 된다. 물론 느긋하게 하면 편하겠지만 소장이나 반장은 시간과 속도가 곧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 없게 한다. 장식회사와 계약한 물량을 빨리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 다른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놈, 하기 싫으면 나가면 될 거 아냐"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인간답게'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도배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예전처럼 특정한 기술 없이 '막도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잘 붙이고 더 오래 붙어 있게 할 수 있도록 나름 섬세한 기술과 이론들이 필요해졌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도배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현장이나 지물에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돈 안 받고 일해줄 테니 도배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소장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 학원에다가 얼마나 갖다 바쳤어? 학원에 왜 가냐? 바로 현장으로 오면 기술 가르쳐줘~ 돈도 줘~ 얼마나 좋아? 학원은 그냥 직업소개소야."그만큼 체계적으로 기술을 습득하고 숙달할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은 곧, 기술을 쥐고 있는 소장이나 반장의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열에 여덟 중 또 일부를 차지한다. 나와 함께 일을 했던 조명감독 출신 형님도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매번 소장과 부딪히는 형님을 보고 소장이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한 놈이네. 하기 싫으면 나가면 될 거 아냐. 저 말고도 여기 올 놈들은 많다고…."하지만 불가피하게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안전사고 때문이다. 도배는 실내에서 작업하고 위험한 중장비들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도배지를 자를 때 사용하는 커터칼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커터칼을 부주의하게 사용하면 사고가 난다. 옆에서 작업하는 동료의 얼굴을 그을 수도 있고 커터칼날 조각이 눈에 들어가서 실명할 수도 있다.
나도 기공이 벽에다 부러뜨린 커터칼날 조각 때문에 눈을 다칠 뻔했다. 칼날 조각이 내 얼굴 왼쪽으로 스쳐지나간 것이다. 칼날 조각이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날라왔거나 내 얼굴이 왼쪽으로 조금 더 가 있었으면 왼쪽 눈을 다쳤을 수도 있다.
또 도배지를 붙일 때, 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드, 바인더, 아크졸 같은 접착제들도 사용한다. 시간에 쫓겨서 아파트 40세대의 벽을 본드로 급하게 칠한 적이 있는데, 그때 왼쪽 눈가에 본드가 많이 튄 적이 있다. 다행히도 현재 내 왼쪽 눈은 멀쩡하게 잘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