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심은 다알리아가 꽃피우다.학교에서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워 꽃이 피기까지 6개월이 흘렀습니다.
변창기
공장에서 학교로... 계속되는 '비정규직' 인생가족 생계를 위해 벌어먹고 살려고 이 일 저 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아는 분의 소개로 초등학교 시설관리 노동자, 이른바 '소사'로 들어가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당제였습니다. 하루 5만3000원 정도 되었습니다. 오후 5시가 되면 퇴근하는 일과였지만 저는 1시간 정도 더 일찍 출근했습니다.
"좀 일찍 출근해서 운동장 쓰레기 좀 주워주세요."저는 학교를 한번 돌아보고 놀랐습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저도 자식이 둘이다보니 운동장서 뛰어노는 학생들이 남달라 보였고 '내 자식이 뛰어놀 운동장을 깨끗하게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6개월 계약직이지만 제가 있을 동안은 '쓰레기 없는 학교'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학교에선 "일주일에 한두 번만 주워달라"고 주문했지만 저는 매일 아침이면 쓰레기 봉투 하나 들고 운동장 곳곳을 다니며 남김 없이 쓰레기를 주워 담았습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학교 시설관리입니다. 본래는 교육청에서 시설관리 공무원을 학교로 보내주어야 하지만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보내주지 않아 학교장 직권으로 비정규직을 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오기 전까지는 정규직 시설관리 공무원이 제가 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운동장 쓰레기를 줍고 나면 인쇄실에서 문서를 인쇄하는 일을 합니다. 또, 행정실에서 시키는 일도 하고 각 학급 선생님들이 해달라는 일도 합니다. 화단과 화분 관리도 합니다. 이 일 저 일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버립니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입니다. 학생들이 급식을 먹는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습니다. 제 일당에 밥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루 일당을 한 달간 모아 월급으로 주는데, 그 일당에서 밥값만큼 공제 합니다. 4대 보험도 적용됩니다. 비정규직이라 일당 외에 아무런 수당이 없습니다. 월급은 150만 원 정도 되는데 4대 보험과 밥값을 공제하고 나면 130만 원 안팎 정도 되더군요.
지난 4월 초부터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10월 초에 6개월 계약이 끝났습니다. 계약을 연장해서 6개월 더 일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일자리 구해야 할지 전전긍긍 하고 있을 때, 계속 일해도 된다고 행정실장이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내년 4월 초까지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달 월급 130만 원...그래도 공장보다 낫습니다공장에 다닐 때는 한곳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라인 작업이다 보니 쉬는 시간 외엔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습니다. 공장 안은 언제나 기름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검은색과 회색 빛 속에서 하루 종일 보냈습니다. 하루 종일 쇠붙이를 만지다 보니 마음마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혼자만 일해서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 정규직이라 가까이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차별과 차이 속에서 지내는 게 힘들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했었습니다. 그렇게 10여 년 일하다 보니 머릿속까지 회색과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몸엔 골병 증세가 생겼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담도 결리고.
6개월 넘긴 학교 일은 제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회색과 검은색밖에 안 떠 올랐는데 학교서 일하다 보니 초록색과 형형색색 무지개 색이 떠오릅니다. 화단 일을 하면서 꽃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고요. 봄에 다알리아 씨앗을 구해 시범 삼아 심어보았는데 새싹이 돋아오르고 커져서 예쁜 다알리아꽃이 피는 걸 보고 많이 행복해하기도 했습니다.
공장 안에서 일할 때는 몰랐던 자연을 가까이 하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요즘은 가을인지라 피어났던 꽃이 지고 시들어버린 꽃나무를 처리하느라 힘들지만 그래도 재밌습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책상이랑 의자랑 들고 와서 고쳐달라 하는 것도 재밌습니다. 인쇄 작업도 힘들지만 재밌습니다. 아침마다 쓰레기 줍는 일도 가끔은 힘들지만 쓰레기 없는 운동장서 학생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꼭 내 자식이 뛰어노는 것 같아 흐뭇해집니다.
"변 주사 온 뒤로 학교가 깨끗해졌어요. 다른 학교 교장이 우리 학교 방문해 돌아보고 학교가 많이 깨끗하다는 칭찬을 해서 기분 좋아요. 다 변 주사가 일을 잘해주었기 때문입니다."교장 선생님이 저를 불러 그런 말을 하면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고생 많다며 좀 쉬면서 하라고 선생님들이 한마디씩 던질 때 기분이 좋습니다. 가끔 작은 빵 하나지만 고맙다며 주는 선물을 받을 때 흐뭇합니다. 지난 한가위 때 여러 선생님들이 선물을 주셨습니다. 양말이었지만 마음이 담긴 그 선물은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주는 10만 원 넘는 선물보다 저를 더 행복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