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집에서 일하는 필자의 모습
신혜진
결혼 뒤 2010년 6월에 신랑이 태양광 반도체 회사의 하청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하게 됐다. 1년에 두 번 비정규직들 가운데 정규직 직원을 채용한다고 했다. 신랑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지난가을, 네 번째 타는 월급이 제 날짜에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 자금이 안 돌고 있다는 까닭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윗사람들이 하는 조만간에 준다는 말만 믿고 묵묵히 일했지만 신랑은 그렇지 않았다. 직접 사무실을 찾아가서 월급을 언제 줄 건지 날짜를 밝히라고 했다. 약속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또 날짜를 어겼다. 신랑은 총대를 메고 다시 한 번 찾아가서 약속을 받아냈다. 결국 열흘 뒤에 입금이 됐다.
그 뒤로 올해 1월 정규직 채용 공지가 떴다. 신랑 이름은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마디로 신랑이 너무 '나댔기' 때문일 거라는 말들을 했다. 동료들에겐 좋지만 윗사람들 눈에는 거슬렸나 보다. 아직 노조가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나댈 수밖에 없었다. 주임이 사원한테 일 시키기가 불편할 정도라 하니 신랑이 많이 딱딱하게 한 것 같기도 하다. 신랑은 열심히 한 대가가 이런 거냐며 술을 많이 마셨다.
하지만 친한 상사의 설득에 계속 일을 하게 됐다. 더 이상 윗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일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또 정규직 채용 공지가 떴다. 남편은 정규직이 됐다. 나는 엄청 기뻤지만 신랑은 기쁜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정규직이 되지 못해 실망한 몇몇 동료들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동료들을 보내고 일을 해야만 했다. 남편은 그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비정규직 78명이 전부 잘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회사가 수익률을 70% 이상 올려야 무난히 운영이 된다치면 9월에는 69%밖에 못 얻었기 때문이란다. 그 1%가 비정규직 78명의 월급이라고 했다. 그 돈을 주고 나면 적자가 난다는 까닭으로 한 번에 그 많은 인원이 잘리게 됐다.
마지막 배려로 일이 많은 10월 7일까지 근무를 해주면 모두에게 150만 원씩을 준다고 했단다. 참 대단한 배려 해주네. 하루아침에 잘린 사람에게도, 회사에 남은 사람에게도 너무 비참한 현실인 것 같다. 신랑은 그 뒤로 회사에서 일하는 낙이 없다고 한다. 힘들어도 같이 웃고 떠들며 서로한테 힘을 주던 동료들을 하루아침에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에 너무 힘겨워 했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남편이 정직원이 되고 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바 시절에 농담 삼아 시급 안 올려주면 데모할 거라고 했던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번 일로 인해 그냥 보고 지나치던 비정규직에 관한 뉴스를 다시 관심 깊게 보게 됐다.
비정규직 팔자는 사장 만나기 나름인가나는 올해 2월, 예전에 일하던 '마음 좋은 사장님'이 있는 피자집에 다시 들어갔다. 남편이 첫 번째 정규직 채용에서 탈락한 직후였다. 사실 나는 일을 쉬고 있던 1년 반 동안 짬짬이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일하던 피자집 사장님한테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한 번씩 얘기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정규직이었지만 이번에 들어갈 때는 알바로 들어갔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평일에만 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별 불만 없이 피자메이커 일을 하고 있다. 나처럼 알바로 일하는 여동생들은 시급이 너무 적은 게 아니냐며 투정을 부린다. 그럴 만도 하다. 나이도 어린 녀석들이 편히 앉아 있을 시간도 없이 내내 서서 피자를 만들려니 힘들 것이다. "야,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사장님이 안 올려주겠냐. 한가할 때 눈치 보지 말고 팍팍 쉬어! 어디 힘들어? 안마해줄까?"라며 웃음으로 위로한다.
피자집은 주말에 더 바쁜데도 사장님이 나는 평일에만 근무할 수 있게 해줘서 매우 황송하다. 어쩌면 너무 욕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문득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기 일에 만족하며 살기 위해서는 '운 좋게' 사장님을 잘 만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지, 새삼 답답한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추운 겨울이 온다. 피자 빵을 넓게 펴려면 옥수수 가루가 필요한데, 옥수수 가루는 피부를 건조하게 만든다. 이제 곧 내 양손은 피부가 건조해져서 갈라지고 피가 나겠지. 하지만 아파도 참으며 일해야 한다. 사장님이 사준 핸드크림을 열심히 바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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