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서 23일 저녁 대응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현황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언행도 무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이 대통령이 보인 동선은 긴급 수석회의(오후 3시경 청와대 지하벙커)→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4시35분 청와대 지하벙커)→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8시50분 용산) 방문으로 긴박하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군과 국민에게 전한 지시(메시지)는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 ▲몇 배로 응징하라 ▲100번의 성명보다,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군의 의무다. 다시는 도발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 등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의 지시(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는 자신의 브리핑 내용을 스스로 뒤집는 모양새를 연출할 만큼 갈팡질팡했다. 청와대는 이런 혼선을 대통령의 말이 와전된 탓으로 돌리지만, '군인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군통수권자의 발언이 너무 유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메시지 관리'로 보인다. 그러나 '말폭탄'이 영토를 지켜주진 않는다.
국민은 휴전 이후 숱하게 반복된 북한의 군사도발과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았다. 국민들은 그 경험을 통해서 대통령의 단호한 지시(메시지)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것도 안다. 군사도발에 대한 즉각적 대응공격은 자위권과 정당방위로 합리화되지만, 실기한 뒤의 '몇 배 응징'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자의적 보복행위일 뿐이다.
군은 적이 도발한 거리만큼, 화력 종류나 위협 정도에 상응하는 공격을 가하는 '비례성의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무력집단이다. 예수님은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밀라고 했지만, 군은 적에게 맞은 만큼 되갚아주지 않으면 존립이 불가능한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가죽점퍼 차림으로 합참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군은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라. 책임은 정부가 진다. 여러분은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며 '죽음을 무릅쓴 군인의 길'을 강조한 것은 군통수권자의 책임과 의무일 수 있다.
'이미지와의 전쟁'과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의 이중성'그러나 이 대통령이 '태극기 휘날리는 가죽점퍼' 차림으로, 말이 아닌 행동을 군에 주문한다고 해서 그것이 천배, 만배의 응징보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부시가 이라크 전쟁에서 그랬듯이, 애국심에 호소하는 '이미지와의 전쟁'이거나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라이브 쇼'일 뿐이다.
북한이 단지 '적'이라면, 사실 이런 '쇼'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차라리 '적'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무찌르자 오랑캐' 노래처럼, 군이 박차고 나가서 무찌르면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아니고, 북한 역시 이라크가 아니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자 공존해야 할 통일-통합의 대상이다.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과 구조의 이중성'이다.
즉, 나라밖 세상은 탈냉전 시대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조류가 흐르는 상황의 이중성에 처해 있다. 또 남북관계와 통일은 민족의 문제이면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국(미, 일, 중, 러)의 이익이 달린 국제문제이기도 한 구조의 이중성에 놓여 있다.
더욱이, 되로 받고 말로 갚는 '비례성의 원칙'을 고수하기엔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 상황은 너무 '비대칭적'이다. 북쪽 땅은 굶어죽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목숨 걸고 탈북한 새터민의 눈에 비친 남쪽은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로 넘쳐난다. 그래서 잃을 것이 없는 북쪽에는 전쟁이 '이판새판'('이판사판'에 빗대어 '새판'을 짜자는 의미)일 수 있지만, 잃을 것이 너무 많은 남쪽에 전쟁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북한도 그 지점을 안다. 어쩌면 북한의 끊임없는 군사도발은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과 구조의 이중성과 남한의 '수'를 읽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즉, 자기들이 도발을 해도 잃을 것,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남한은 전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피스 키핑'(peace keeping)과 '피스 메이킹'(peace ma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