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문화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바세나르협약은 사회협약의 가장 중요한 모델이 됐다. 사진은 암스테르담의 뮤지엄 광장에 있는 조형물 'I amsterdam'.
조명신
빔 콕 전 총리는 네덜란드 건설부문 노조운동을 시작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통합 전 노총 위원장이던 1982년 노사의 양보를 이끌어내 '바세나르협약'을 성공시켰다. 특히 당시 노조 일부에서는 그를 두고 "노동자를 팔아먹은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협약 내용에 임금삭감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빔 콕 전 총리는 당시 크리스 반 빈 경영자연합(VNO-NCW) 회장이 거주하고 있는 자택으로 찾아가 며칠 간 협상을 벌였다. 그리고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단축'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협약을 이끌어냈다. 이 바세나르협약은 이후 네덜란드 사회협약의 가장 중요한 모델이 됐다. '제도화된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동재단과 사회경제위원회가 60여 년 동안 존속될 수 있었던 것도 '바세나르협약의 성공'에 있었다.
엘코 타스마 노총 선임 정책위원은 "바세나르협약이 체결되기 전에 노동재단이나 사회경제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 시스템이 있었지만 그 협약이 성공하고 나서 사회적 대화가 더 좋아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세나르협약은 노사정 3자가 모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어떻게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와 관련된 상징이 되었다."
바세나르협약이 이루어진 바세나르는 헤이그 인근의 작은 도시다. 인구 2만 5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이곳은 외교관이나 다국적 임원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바세나르협약의 한축이었던 크리스 반 빈 경영자연합 회장의 자택도 이곳에 있었다. 특히 바세나르는 '공산권 전력무기 수출금지체제'가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바세나르협약을 체결한 이후 빔 콕 전 총리는 통합 네덜란드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됐고, 1986년에는 정치권에도 진출해 네덜란드 노동당(PvdA, 중도좌파)의 지도자였던 요프 던 아윌 (Joop den Uyl)의 후임으로 노동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후 부총리 겸 재무장관(1989년)을 거쳐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총리직을 연임했다. 현재는 대기업 경영자문은 물론이고 NGO 후원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으며 국가 종신고문격인 명예장관으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새만금 홍보 전도사'를 맡고 있다. 지난해 간척지에 건설 중인 네덜란드 알메르시를 방문한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차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만금 특별자문관'으로 위촉된 것.
빔 콕 전 총리는 여러모로 룰라(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철강노조위원장을 거쳐 연방하원의원에 진출했고, 브라질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 노동운동 지도자가 국가를 경영하는 최고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노조 일각의 비판 속에서도 국민의 지지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두 지도자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바세나르협약의 성공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