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진희.
유성호
- 사극 <동이>를 제치고 월화극 1등에 올랐던 <자이언트>. 이 드라마에서 여성사업가 황정연 역을 맡으셨는데요. 현재 극 후반부를 달리고 있는데, 잘 맞는 옷 같은 느낌인가요?"한때 1등을 한 적이 있지요 하하. 제가 맡은 황정연 역할은 이미 입은 옷인데 저한테 안 맞았던 옷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웃음) 물론 분명히 새로 입은 옷이긴 했어요. 기존의 취향을 따지자면 청바지에 티셔츠? 잘 갖춰 입어야 조끼? 이 정도였다면, 황정연이라는 배역은 완전히 다른 옷을 입었던 것 같아요. 캐주얼에서 정장으로 바꿔 입은 것 같은 느낌? 느슨하고 편안한 옷에서 살짝 각이 진 옷? 그런 느낌이에요."
- 이 작품에서 황정연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살아낸 것과 다름없는데, 박진희표 연기에 어떤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됐다, 한 고비를 넘겼다, 뭐 이런 평가가 가능할까요?"꼭 그렇진 않아요. 스스로 제 연기의 한 고비를 넘었다고 판단하는 작품은 <친정엄마>라는 영화예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멜로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주 슬픈 이별도 해보고, 또 전쟁도 겪을 수 있는데,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감정은 뭘까 생각해봤어요.
각자의 고통과 행복은 아주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의 슬픔과 고통이 더 크다, 크기를 잴 순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 그 사람이 가장 극한의 감정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내 연기가 좀 발전한다면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 역할을 꼭 해 봐야지 했었는데 그 작품이 제겐 <친정엄마>였죠. 박흥식 감독님의 <인어공주>를 참 좋아해요. 모녀이야기 이런 것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이 두 가지를 충족시켜준 작품이기도 하지요."
- <자이언트>가 4주 분량 정도 남았다고 들었어요. 끝나면 새 작품 들어가나요? 어떤..."템플 스테이 들어갑니다. 하하하. 2년간 정말 메뚜기처럼 살았어요. 배우는 워낙 팔랑거리는 귀를 가졌고 좋은 작품을 보면 흥분돼서 이 역할을 꼭 잘 해내고 말리라 이렇게 생각하는 동물적 근성을 갖고 있지만, 현재로선 연말을 잘 보내고 신정 즈음에 템플 스테이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심신수련까지는 아니지만 내 자신을 정화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나를 찾는 시간? 자아를 찾는 시간? 마련하고 싶어요."
- 불자세요?"무교예요. 종교 없습니다. 전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 다 좋아해요."
- 박진희씨가 어느 절에 갔다, 이러면 떼로 팬들이 몰려들지 않을까요?"네? 하하. 아닐 걸요? 어딜 가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그런 배우는 아니에요. 저 같은 배우에게 달려들기엔 다들 사는 게 너무 바쁘지 않나요? 하하. 제가 아이돌도 아니고, 언니! 누나! 이런 팬 없어요."
- 여배우 하면 통상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요."물론 그렇게 팬들이 몰려드는 여배우도 있겠지요. 전 아니란 거예요. 그리고 뭐랄까, 여배우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여배우는 이럴 것이다, 뭐 이런 편견 같은 거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아는 여배우들은 모였다 하면 그렇게 소주만 마셔대고, 백숙 먹으러 가면 닭 껍질만 먹어대고, 막걸리만 먹고... 하하하. 동네 '포차'에서 모이자는 둥 별로 여배우니 뭐 이런 인식이 없어요."
- 모두 다 그렇게 털털한가요?"물론! 아닌 분들도 계시겠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거예요. 와인, 샴페인 다 좋아하는데 만날 와인, 샴페인 마실 순 없잖아요. 만날 소주 마시다가 그중 한 번은 와인도 마셔주고, 샴페인도 먹어주고 뭐 그런단 얘기지요. 사람 사는 거 다 마찬가지란 얘기예요.
가끔 제 트위터에 이런 멘션이 올라와요. 연예인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네요. 아니,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은 거지 뭐 그렇게 다르겠어요? 물론 너무너무 좋은 빌라에 사는 사람과 지하 단칸방에 사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순 없겠지요. 그러나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처럼 그렇다는 거예요. 연예인이 4끼 먹고 살진 않거든요. 하하."
태양광 지붕 아래서 닭 2마리 키우는 여배우- 에코 셀러브리티라는 별칭을 갖고 계세요. 본업인 연기 이외에 환경문제에도 관심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별호인데요. 집에서 요즘도 닭 키우세요? "그럼요, 두 마리. 제가 늦게 들어갈 때가 많으니까 엄마가 현관 불을 켜 두시는데요. 그 빛이 상당히 흐릿해요. 제가 그 흐릿한 불빛 아래서 닭들이 싸놓은 변을 밟지 않으려고 상당히 애를 쓰며 집 계단을 올라가곤 합니다. 그런데요, 우리 집 닭들이 도대체 뭘 먹는지, 이건 닭의 변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너무 커~ 하하."
- 계란은 안 사드시겠네요?"아우 그럼요. 하루에 2알씩 낳아요. 엄마 말씀이 집에서 기른 닭이 낳은 계란과 마트에서 파는 계란은 천지차이래요."
- MBC 다큐멘터리 <북극곰을 위한 일주일>에도 출연하셨잖아요. 살 만했나요? "개인적으로는 정말 살 만했어요. 저한테 맞는 생활이었어요. 이런 삶이 맞지 않다면, 아마 피곤해서 못 살 거예요. 여름이면 닭똥 냄새 심하죠. 저거 잡아먹으면 한칼이면 될 텐데... 그런 생각 안 하겠어요? 되게 싫을 수 있지요. 그렇지만 전 매일매일 우리 집 닭들이 예쁜 알을 낳고, 그런 게 너무 신기하고, 가까이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고, 그런 자연에 고맙고. 그런 편이에요.
슬로푸드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들 말로만 하는데요. 그땐 정말 실천하는 거였거든요. 콩나물무침을 해먹으려면 일단 1주일은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웃음) 마트에 가면 당장 살 수 있지만, 일단 콩나물 콩을 사다가 물을 붓고 1주일 기른 다음에야 콩나물무침을 해먹을 수 있는 거지요. 하하.
아주 거시적으로는 요즘의 농산물 시스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농산물까지 대기업의 상품이 돼서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현실이니까요. 뭐든 기업화하니 자급자족이 안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 지역민들이 나고 기른 곡물 등 농산물을 먹을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뭐든지 대량으로, 전 세계 어디서든 배와 비행기로 실어 나르는 현실이니까요. 국내산, 국산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박약해지고 있지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또 이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현대사회는 너무 빠르게 돌아가니까요. 빨리빨리 밥 사먹고 일해야지, 언제 2시간 걸려 밥 해먹고 앉았나요? 점심시간은 1시간인데 밥하는 데 2시간 걸리면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지요. 하하."
- 어떻게 밥을 하기에 2시간이 걸려요?"불을 지피는 데 일단 30분이 걸려요. 장작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밥솥을 올리죠. 태양열로 계란프라이를 하고, 국 끓이고 그럼 그렇게 걸리죠. 한 끼에 2시간이니까 세 끼 먹으려면 6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하하.
제가 아토피가 있어서 한약을 지어먹었는데요. 약 짓고 대개 1주일 이내에 택배로 보내주잖아요. 그런데 화석연료 안 쓰고 살려니 이 약을 달여야 했어요. 3일에 한 번씩 약을 달여야 했으니까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시간들이죠.
현대인 가운데 이렇게 살 수 있는 분들이 아마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가는 삶을 살자? 원치 않을 거예요. 대문만 열고 밖으로 나가면 5천원짜리 밥이 수두룩한데 누가 2시간씩 밥하는 데 시간을 쏟으며 살겠어요. 그렇지만 제겐 그렇게 느리게 사는 삶이 맞았다는 거죠."
"우리 인간적으로 일회용 컵은 쓰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