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홀 연기자 대기실에서 만난 개그맨 이수근씨는 "내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버지, 방송 열심히 하고 있는 아버지, 새로운 걸 위해 늘 도전하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유성호
태생적 소셜테이너가 있다. 어렵게 자랐거나, 그렇지 않았어도 남의 아픔과 어려움을 잘 헤아릴 줄 아는 사람.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 빤빤하게 생겼어도 마음은 양털마냥 부들부들한 사람. TV 토크쇼에 비춰진 코미디언 이수근(35)씨는 그런 사람이다.
외모가 출중한 것도, 그렇다고 키가 훤칠한 것도, 스펙이 엄청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대중에게 선사하는 웃음과 감동은 언제나 기대보다 크다. 그가 위대한 까닭이다. 언제 어디서나 까불대지만 늘 겸손하고, 위아래가 칼 같은 사람. 그래서 선배들이 그를 잘 챙기는 모양이다. 깍듯한 예의가 그를 돋보이게 하는 '아우라' 같았다.
톱클래스는 역시 바빴다. KBS 전국노래자랑 30주년 기념 무대에서 송해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MC 계보를 잇는 막내로 출연한 그는 곧바로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저녁시간이었지만 밥을 거른 채로.
3일 저녁 6시 40분, 서울 여의도 KBS홀 연기자 대기실은 무진장 복잡했고 정신없었다. 여당당 김영희, 동혁이형, 박영진, 박휘순 등 <개콘> 무대에 오를 개그맨들은 막바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분장도 한창이었다. 고 사이를, <오마이뉴스>가 딱 비집고 들어갔다.
"아우, 죄송해요. 촬영이 늦어져가지고."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넨다.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천불이 났지만, 빙긋 웃어주니 마음이 금세 풀린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한 이날부터 금연초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인터뷰 도중 계속 빨아댔다. 연기는 몽실몽실 피어났지만 냄새는 없었다. 마치 스피드퀴즈 문제를 내고 맞추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공간은 어수선했고, 사람들은 수시로 들락날락, 시간은 촉박했고, 말은 엄청 빨랐다. 휴~
뜬 후와 뜨기 전이 같은 사람, 개그맨 이수근 "구경만 할게, 구경만!"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게다. <개콘> '불청객들' 코너에서 달인 김병만과 옥동자 정종철씨가 하던 멘트였다. 어려운 가운데 이수근씨와의 대화를 집중하던 사이 9번 분장실 방문이 쓱 열렸다. 빼꼼 얼굴을 내민 이가 있었으니, 그는 달인 김병만씨였다. 다짜고짜 욕한다.
"이 새끼, 이거. 자, 이 자세는 이수근 위에 김병만 있다, 자 찍어주시고, 자, 이제 내려옵니다. 내려와서, 에, 뭐, 우리가 참 친한 친구라서 서로 참 막역하게 지냅니다. 네, 그럼요. 거센 욕, 지나친 욕, 다 우린 우정으로 생각하고. 네네, 바로바로 쳐주시고요. 진짜 쓰시나? 어? 정말 쓰시네? 기역에 아이, 그리고 새.. 아유 오늘은 여기까지만!"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더니, 둘이서 커플로 웃겨댔다. 6일 오후 3시와 저녁 7시30분 전남 여수 흥국체육관에서 펼쳐질 '이수근 김병만의 무식(MUSIC)한 콘서트'를 미리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두 사람, 방송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친숙해보였다. 격의없는 친구사이라는 게 느껴지는 욕들이 난무했다. 정겨웠다. 마치 고교시절 남학생들의 대화를 보는 것 같았다. 만일 이 장면을 여당당 김영희씨가 본다면,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그쟈?' 개탄하겠지만, 적어도 내겐 누룽지처럼 구수했다.
느닷없는 김병만씨의 등장에 화색이 돈 이수근씨는 두 사람의 무명시절을 회상하며 낄낄 대다가도 슬쩍 눈가가 촉촉히 젖기도 했다. 자고나니 스타가 돼 있더라는 유명 배우도 있지만, 꾸준하고 성실히 갈고 닦아 오늘의 자리에 오른 이도 있다. 바로 이수근씨다.
혹자는 연예인을 '뜬 후와 뜨기 전이 같은 사람, 뜬 후와 뜨기 전이 확 다른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수근씨는 100% 전자로 보였다.
그는 이날 강화군 공무원인 장인의 요청으로 그 지역 군민들을 위한 마을잔치에 갔다가 두부와 김치, 떡, 고기 등을 얻어왔다며 분장실에 풀어놓았다. 연습 중인 후배들을 위한 간식이었던 셈. 또 그는 양평에서 갖다준 쌀이라며 여러 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TV에서 보던대로 그는 훈훈했고 인간적이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2006년 <개그콘서트>에서 '고음불가'로 인기를 얻게 됐는데, 최근 싱글앨범을 내셨습니다. 제목이 헉(Huk)인데, 원제는 카사노바라고 들었습니다. 왜 바꾸셨나요."소녀시대가 최근 발표한 훗(Hoot)과 비슷하다, 뭐 이런 말들을 하시는데요. 제것이 먼저 나왔습니다. 하하. 소녀시대가 제걸 따라할 리는? 네, 없겠죠! 이 음반을 발표할 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듣기 편한 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들도 재밌게 따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카사노바를 어르신들께 설명하기도 참 애매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느니, 차라리 설명하기 쉽고 접하기도 쉬운 말로 바꾸는 게 낫겠다 싶어서 '헉!'으로 바꿨습니다. 이 음반의 타깃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주 광범위하죠? 하하."
"개그는 공감대가 중요하죠, 생활 속 일들에 관심 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