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이 녀석이 평화학교에서 오던 날. 아쉬워 하는 아이들.
송성영
고흥 새 터를 찾아 헤매다가 김민해 목사님을 만나 그 기운이 편안해 평화학교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따로 거처가 없었던 김 목사님과 함께 교실 바닥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날 이른 아침,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설 무렵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교직원들이 죄다 교문 없는 교실 앞으로 몰려나가더군요. 뭔 일이랴, 싶어 저만치 뒷구멍에서 지켜봤습니다.
일반 학교였다면 똑 고른 용모 맞추기나 선생들도 소지하고 있는 소지품을 압수하는 따위의 특별 단속기간을 상상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평화 학교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인사 잘하라며 훈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꾸벅 꾸벅 인사를 하며 받들어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교장선생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쉬엄쉬엄 빗자루 질 하다 말고 나온 어중간한 폼으로 한 옆댕이에 쪼그려 앉아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들을 억압하는 학교가 아닌 받들어 모시는 그런 학교에서 생활했던 녀석이었으니, 녀석이 떠나올 때 아이들의 서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학교가 당시 수업 시간이었는지 쉬는 시간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들 주차공간으로 우르르 몰려 나와 오랜 환송식을 가졌습니다.
개 환송식이 뭐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반달이를 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짠할 정도였습니다. 평화학교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고 아쉬워 어쩔줄 모르고 그랬지요. 반달이 녀석과 함께 자란 또 다른 삽살개 녀석도 멀뚱멀뚱 반달이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렇게 그 무렵 곰순이처럼 털색이 검은 곰순이 새끼 두 마리를 평화학교에 데려다 주고 거기서 살고 있던 삽살개 두 마리 중에 한 놈인 반달이를 데려 왔던 것입니다.
평화학교 아이들의 '왜 정든 반달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되죠?'라는 물음에 교장 선생님은 '개도 다 크면 장가를 가야 한다'며 설득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평화 학교 아이들이 반달이와의 이별을 통해 좀 더 몸과 마음이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수없이 많은 정든 것들과 이별을 하며 성장하니까요.
6개월에 덩치가 산 만했던 우리집 '데릴사위'우리 식구야 충남 공주에서 새 터를 찾아 자발적으로 이사를 왔지만 녀석은 '데릴사위'라는 명목으로 전남 순천에서 전남 고흥으로 강제 이주 당한 녀석이었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식구 역시 녀석과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호남고속철도 공사 때문에 새 터를 찾아 헤맨 끝에 이주했으니, 엄밀히 따져보자면 강제 이주 당한 꼴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새터 선택은 우리의 몫이었지만 녀석에게는 그런 선택권 조차 없었던 것이지요.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새터는 누가 보아도 충분히 만족할 만했습니다. 새터에는 맘껏 뛰어 놀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거든요.
반달이 녀석은 그 이름과는 달리 앞에서도 말했지만 털이 듬성듬성 빠진 하이에나처럼 볼썽 사납게 생겨먹은 놈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6개월에 불과한 녀석이었지만 그 덩치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보통 성견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