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학년이 작년까지 배운 7차와 올해 배우는 개정교과서 내용을 비교한 것입니다. 4학년 내용이 3학년으로 내려와 학습양이나 부담이 더 많아졌습니다. 영어교육의 네 영역(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균형있게 한다는 명분입니다.
신은희
한희정 교사는 "2시간이라는 이유로 영어교과서가 어려워지고 양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사실 정보 묻고 답하기'라는 의사소통기능에서 작년까지는 "What's this? It's a pen.(1학기)"이나 "How many cows? I have two cows(2학기)"였다면 "What time is it? It's twelve"가 2학기에 새로 나왔다. 이 표현은 전에 4학년 때 나온 것이다. "Do you like __?"라는 문장에 들어갈 단어도 무궁무진하다. 2단원을 배울 때 아이가 가져온 학습지에 나온 단어(동물 이름)가 너무 어려워 사전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단어 수도 많이 늘었다. (7차) 450개 이내→(2007개정) 500이내→(2008개정) 520개로 되었다. 2006년 교육과정심의회를 할 때에는 500개 이내냐, 500개 이상이냐 갖고도 한참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제 3~6학년에 나오는 단어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굴절어, 파생어, 고유명사, 기수, 서수, 외래어 등은 학습해야 할 어휘수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내년부터 검인정교과서를 쓴다. 14종이나 되는 검정교과서를 통틀어보면 얼마나 많은 어휘를 알아야 할까?
지금 3학년을 가르치는 영어전담 교사 이야기로는 지난해(7차)에 비해 수업하기는 더 수월하다고 한다. 일단 주당 2시간으로 늘어나 내용을 복습할 시간이 늘었고 1단원마다 4차시씩 공부를 하면, 어지간하면 따라온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아 미리 알고 있는 학교 상황이다.
만약 우리 아이처럼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아이들끼리 모여 있으면, 교실 영어도 모르는 상태이고, 외국어를 무조건 따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아이들의 특성을 교사가 다 고려하면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담당 교사에게 물어보니 "그런 경우는 어렵죠"라고 한다. 오죽하면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사교육 안 받고 수업하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안 시키면 기죽고 고생한다고 꼭 시키라고 할까? 왜 엄마 때문에 아이가 고생을 해야 하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영어 전담 교사들에게 "이런 교육과정이라면 교과부가 또 시수가 부족하다고 시간 늘려야 한다고 하는 거 아닐까?"라고 하니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영어만 계속 늘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초등영어 13년, 사교육비 늘고 학습부담만 키워그것보다는 영어를 배우는 목적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 영어는 소통의 수단일 뿐이지 목적은 아니어야 한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는 "국가수준의 목표부터 세우고 외국어로 배우는 환경(EPL)에 맞는 교수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초등영어가 도입된 지 1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나 교수법이 없다. 3, 4학년 때는 게임하고 놀면서 파닉스(음철법)도 안 가르치다가 5학년 때 단어가 팍 늘어나 부진아 생기고, 6학년 가면 "저 영포(영어포기아)예요"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영어수업시수 늘리고 그간 하던 방법에서 근본적인 변화도 안 줬으면서 파닉스만 들어갔다고 6학년 때 에세이 쓰라고 한다. 이대로만 따라하면 영어를 잘 한다고? 어떤 영어를? 이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잘 한다고만 되어있다.
핀란드 교육과정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비고츠키를 연구하는 배희철(강원 지암분교) 교사는 "영어는 모국어를 잘 배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 언어는 비교대상이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모국어 학습이 어느 정도 완성된 청소년기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초등학교 3학년은 그래서 영어를 배우기에 너무 아까운 나이가 아닐까? 3학년은 1, 2학년에 배운 국어를 바탕으로 한글 어휘가 대폭 늘어나고 나와 세상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시기일 뿐 아니라, 존재에 대한 고민도 싹트는 시기다. 3학년에 오면 문자를 비로소 제대로 인식하여 책을 볼 때 빨려들 듯이 읽게 된단다. 또 3학년은 구체어 발달이 가장 폭발적인 시기라고 한다. 아이와 같은 학년을 가르치면서 학교와 집에서 아이들의 이런 성장을 누구보다 가깝게 지켜본 결과다.
그런데 모국어 교육의 꽃이 피기 시작할 때 다른 나라 언어인 영어를, 그것도 제대로 된 교수학습이론도 없는 영어를 가르치다보니, 모국어에 대한 고민은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아이의 생각과 말이 어떻게 커나가는지 전혀 돌아보기 어렵고 영어시간에 스트레스나 받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남는 시간은 테이프나 CD를 들으라고 닦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교육시장에 영어교육을 맡기고 아이의 영혼발달은 상관없이 무조건 영어를 잘하라고 닦달하게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영어를 보는 눈부터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