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5일 서울 은평을 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장상 후보가 정세균 대표, 손학규·정동영 상임고문, 박지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남소연
본질은 차기 총선 공천권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민주당은 현재 '책임론', '쇄신'과 '연대'를 둘러싸고 시끄럽다. 당권에서 소외된 비주류는 '쇄신연대'라는 연합군을 구성해 재보궐선거에 패배한 당권파를 압박하고, 당권파는 "쇄신은 평소에 하는 것이지 전당대회를 앞두고 급조해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방어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쇄신 논쟁이지만 본질은 차기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이다.
민주당의 세력 판도는 크게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중립파로 3분된다. 주류는 정세균 대표를 정점으로 그의 뒤를 받치는 이른바 486 세력이 주축이다. 비주류는 당권에서 배제된 정동영-천정배-추미애 등 반정(反丁) 연합군이 주축이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쇄신연대'에는 가담했지만, 출범식에서 조짐을 보인 '파벌정치'와 '세몰이'에는 반대한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민주희망쇄신연대'라는 이름의 반정 연합군은 지난 7월 4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에서 3000명이 모인 가운데 출범식을 하고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선 바 있다. ▲당의 정체성 확립 ▲민생정책의 개발과 실천 ▲당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전면적 시스템 개편 등을 결의한 그럴싸한 출범 명분에도 불구하고, '3천 결사'의 세 과시는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전형적인 퇴행정치다. 대중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결사는 아무리 그 수가 많아도 변화의 동력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당권파의 대응도 협량(狹量)하기 짝이 없다. 재보선 승리가 최고의 선이라는 승리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비주류의 요구를 못 들은 척해왔으나 재보선에 패배한 지금은 비주류의 요구를 외면할 구실이 없다. 6.2지방선거 패배 직후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것과는 딴판이다.
최대한 버티는 지도부와, 지도부를 흔들어 과실을 따먹으려는 비주류의 당권 다툼으로 비치는 현재의 민주당은 주류든 비주류든, 국민은 안중에 없고 계파의 이익과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당사자들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국민들 보기에는 그렇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그들만의 리그'로 감동 줄 수 있을까그나마 꽉 막힌 경색의 숨통을 틔우는 세력은 중립파이다. 중립파는 원내외에서 주요 당직을 맡고 있으면서 당권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 그리고 정 대표와 가까우면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운신의 폭을 넓혀온 손학규 전 대표 등이 주축이다. 손 전 대표 역시 당권 도전을 앞두고 있다.
각각은 차별성을 내세우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정세균 대표나 정동영 의원은 물론, 손학규 전 대표도 한두 번씩 당대표나 당의장을 맡았던 사람들이다. 정동영-손학규 2인은 대권후보 경선에도 나섰다. 당 대표와 대선 후보까지 지낸 정치 지도자들이 아직도 당권을 밑천 삼아 뭔가를 도모하려는 것은 민주당이 쇄신해야 할 구시대적 정치행태다.
혹여 대권 4수 끝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3전4기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러 번 당권과 대권 후보를 하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지금은 김 전 대통령이 치열한 민주화투쟁의 구심점으로 민주당의 오너십을 가졌던 과거 반독재 민주화투쟁 시대와 다르다. 음지에서 고생하느라 변변한 공직을 맡지 못했던 안희정 전 최고위원이 도지사에 당선된 것도 시대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세대교체는 변화를 두렵게 한다. 주류가 한번 잡은 당권을 놓지 않으려 하거나, 비주류가 또다시 당권을 잡으려고 집착하는 것은 권력에서 한번 물러서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직업으로서 정치의 가장 좋은 점은 정년이 없다는 것이다. 버리면 얼마든지 기회는 온다.
그러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어쩌면 손학규가 그 모델이다.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권에서 물러나 아예 춘천에서 닭을 쳤지만, 최근 대의원 여론조사에서 보듯 그는 당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장 지지율이 높은 유력 후보다. 그로서는 버렸기 때문에 기회가 다시 온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빅3'(정세균 정동영 손학규)만 경쟁하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그들만의 리그'로는 감동을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