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과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는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성적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다. 강 의원은 이날 "정치생명을 걸고 사실을 끝까지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남소연
제1회 대회 때도 심사위원을 했던 경험자의 솔직한 토로이긴 하지만, 명색이 토론회 심사위원인데 토론 내용보다 미모를 본다는 조언이 민망하다. 문제는 그 다음 발언이다. 강 의원은 이 자리에서 장래희망이 아나운서인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서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고 말했단다.
강 의원은 "참석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동료 여성의원의 미모를 품평했다는 다른 언론의 후속보도를 종합하면, 개연성이 큰, 부적절한 성희롱이다. 또 남자 아나운서는 실력으로 뽑지만 여자 아나운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니 명백한 성차별이다. 전국의 아나운서들이 떨쳐 일어날 일이다. 게다가 '○○여대 이상'이라고 선을 그었으니 학력 차별이다. 전국의 '○○여대 이하' 학력자들한테는 몹시 기분 나쁠 일이다.
성희롱을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성적 언동을 통해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으로 고용환경을 악화시키고,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법률적으로만 해석하면, 그 자리에 동석한 여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법적 처벌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육법전서를 끼고 사는 법조인이기에 앞서, '국민 정서법'을 존중해야 할 정치인이다.
강용석이 누구인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법시험(33회)도 합격했으니 요즘 젊은이들이 강조하는 '스펙'으로 따지면 한나라당에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소장파 정치인이다. 그가 청년위원장에 재임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마저 든다. 필자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한나라당은 아무래도 성희롱과 폭탄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다. 왜냐고? 한나라당에는 폭탄주의 '원조'와 성희롱의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대표 지낸 박희태 국회의장은 폭탄주 '원조' 박희태 국회의장은 폭탄주의 '원조'나 '중시조'로 통한다. 지금은 국회의장이 당직을 이탈해야 하는 국회법 규정에 따라 당적을 잠시 비워두고 있지만 그는 민정당 시절부터 당적을 가진 오리지널 한나라당맨이다. 한나라당 대표도 지냈다.
여러 설이 있지만 맥주잔에 양주 '뇌관'을 담은 형태의 폭탄주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것은 5공 시절인 1983년 당시 박희태 춘천지검 검사장이 춘천지역의 검찰과 군, 언론사 관계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선보였을 때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그는 1988년 부산 고검장을 끝으로 정계에 입문해 이번에는 정치권에 폭탄주를 전파하게 된다. 오죽했으면 국회의장 취임 직후, 1988년 정계에 입문한 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술'이라고 답했을까 싶다.
- 정치인생 22년째입니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술이죠. 고래 경(鯨)에 술 음(飮), 이 두 글자로 설명하면 되겠습니까. 참 많이 마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마신 술의 양만 5대양은 될 거라고도 하더군요. 22년간 국회 사람들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죠. 요즘은 와인이 유행하는 것 같던데 저는 아직도 소주가 좋습니다. 소주랑 맥주랑 섞은 폭탄주도 좋죠. 김진표 전 의원이 저한테 폭탄주를 배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한국경제>, 6월 10일)다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도 "폭탄주 문화의 원조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도 폭탄주를 즐겨 마시느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박 의장도 "아내랑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해 줄이고 있다"면서도 "지금까지 한 번도 술 먹고 병나거나 실수한 적이 없죠"라고 답변해 여전히 폭탄주 애호가임을 과시했다.
폭탄주의 '민폐'와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그러나 그가 전파한 폭탄주 문화는 그가 몸담았던 검찰은 물론 민정당과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숱하게 많은 '민폐'를 끼쳤다. 일부 계층에서만 유행한 폭탄주 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한 1986년 '국방위 회식 사건'(실제로는 폭탄주에 취한 군 수뇌부가 정치인들을 두들겨 팬 집단 난투극)과 1999년 6월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5공 정권의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우습게 만든 국방위 회식 사건의 경우,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이 국회에 출석해 사과하고, 당사자는 예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검찰 출입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폭탄주 낮술 발언으로, 내정됐던 대전고검장 자리에는 하루도 앉아보지 못하고 옷을 벗은 진 검사장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왜 폭탄주를 마시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양주가 너무 독해서"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2004년 9월에는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골프를 친 뒤 폭탄주를 마시다가 60대 경비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2005년 6월에는 역시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 대구 출신 의원들 및 상공인들과 골프를 친 후 폭탄주를 돌리다가 대구상공회의소 회장과 말싸움이 벌어져 술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든 '맥주병 투척 사건'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