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실 앞에 쌓인 쌀가마니와 현수막
임승수
마침 농민회 사무실 앞에는 시쳇말로 닭장차가 보이는 것 아닌가. 엄청나게 추운 날씨에 전경들 몇몇이 방패를 들고 주변에 서 있었다. 오호라. 저것 때문이구나. 사무실 건물 앞에는 겹겹이 쌓아놓은 쌀가마니들이 농민들의 꽉 막힌 가슴인양 무뚝뚝하게 놓여있다. 그 앞에는 '남쪽에는 쌀값안정, 북쪽에는 식량해결, 정부는 대북쌀지원 재개하라!'고 인쇄된 현수막이 덩그러니 달려있다. 어휴. 무거운 발걸음 곱하기 2가 되어 버렸다.
"결국 농업엔 희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상당히 해맑은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희망'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내뱉는 이 사람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국장을 맡고 있는 30대 초반의 곽길자씨. 남자화장실에서 여자 만난 느낌이랄까? 농민회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서 제 페이스를 찾는 데는 대략 3초 정도 걸린 것 같다.
"농업은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공상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알약 하나 먹으면 배 안 고픈 사회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농업은 필수이고 기본입니다. 석유가 없어서 차가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이 그럭저럭 살 수는 있지만 먹을 것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물론 맞는 말이다. 농업이 없으면 인류는 모두 굶어 죽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산품을 수출해서 번 돈으로 식량을 수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꼭 이 대한민국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농업 정책은 사실상 '농업포기' 정책이나 다름없었다. 세계화와 선진화를 외치며 농업을 포기하고 있는 정부에게 곽길자씨는 이렇게 일갈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제발 농업에도 적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 같은 소위 선진국들은 농업에서 엄청난 보호무역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농업 보조금도 엄청나게 주고 있고요. 특히 미국은 작년에 농업 관련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보호무역이 더 강화됐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말로는 선진화를 외치면서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의 농업정책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한때 세계최대 쌀 수출국이었는데 농업을 포기한 10년 사이에 모든 기반이 다 무너졌습니다. 소말리아도 예전에는 식량을 자급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농업을 포기한 지금은 기아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이 농업을 지키는 것입니다. 정부는 왜 선진국 따라하자고 하면서 후진국 따라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안타깝습니다."글로벌 스탠더드, 농업에는 왜 적용 안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