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씨가 쿠바 편을 쓴 책 <미국과 맞짱 뜬 나쁜 나라들> 표지
시대의창
'가장 정치적인 얘기를 가장 재미있게 풀어낸다.''걸판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이것은 걸판을 만들면서 세운 원칙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걸판이 다니는 곳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 용산 참사의 현장, 쌍용 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현장, 미디어 악법 반대 투쟁의 현장뿐만 아니라 공원, 역전, 회사 식당, 학교, 비닐하우스 등 상상 가능한 모든 곳이다. 엄숙하고 비장하고 가슴 막막한 투쟁의 현장에서, 어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웃음'을 전파하고 있는 걸판에게 그들이 추구하는 웃음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웃는 이유가, 보통 하는 짓이 웃겨서 웃을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모두가 공감하는 본질을 건드렸을 때 웃는 것 같습니다. 저희 공연을 보시는 분들은 그 무슨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고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겁이 나고 나약해지고 우물쭈물하게 되잖아요. 청소 일을 시작했는데, 잘릴 것 같아서 농성천막을 쳤단 말이에요. 그런데 나이도 50이 넘었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게 되죠. 그럴 때 우리는 '사실 이런(겁 많은) 사람 많아요.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함께 있잖아요. 조금 더 용기를 내 봅시다'라는 이야기를 웃음을 통해 전달합니다. 이런 웃음을 통해서 조금 더 용기를 내는 거죠."걸판의 웃음은 '용기'의 웃음이다. 어렵고 힘들고 길이 막혀서 좌절할 때,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용기를 일으키는 웃음 말이다. 노동자와 서민이 웃을 일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사람들의 웃음보를 들었다 놨다 하며 용기를 불어넣고 있는 걸판의 활동은 분명 소중하다. 하지만 소중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소위 배고픈 일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런 활동을 지속하게 만든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오세혁씨에게 물어 보았다.
"당진에서 여성의 날 행사를 했을 때의 일인데요. <열녀열전>이라는 여성 마당극을 공연했습니다.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내용이 나오는데요. 공연을 끝내고 대기실에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시면서 공연 잘 봤다고 커피 사 먹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희는 당황해서 사양을 했죠. 그런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아주머니는 말없이 만 원을 쥐어주시고 대기실 밖으로 뛰어나가셨어요. 걸판 대표님이 급히 아주머니를 따라서 나가셨죠. 돌아와서 대표님이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려주셨죠. '… 내가 노동자라 그래요.' 이렇게 말씀하셨다더군요. 그 아주머니는 청소 노동자이신데 그날 우리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으셔서 찾아오신 거였어요. 커피 한 잔이라도 사 주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대기실로 찾아오신 겁니다."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얘기를 다룬 <그와 그녀의 옷장>을 공연하면서 비정규직 투쟁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힘이 나고 보람이 느껴졌다고 한다. 이것이 오세혁씨가 힘들더라도 걸판 활동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다.
"사랑얘기나 부부갈등, 아니면 아동극만 해도 형편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수 있겠죠. 아니면 곧바로 대학로에 진출해서 코미디극을 할 수도 있겠고요. 자신은 있거든요. 사실 제안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우리가 걸판을 만든 목적이 분명히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