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재외동포법 농성 당시의 차월겸씨.
조호진
차도선 의병장의 손녀 차월겸(65·송파구 장지동)씨를 처음 만난 곳은 2003년 '재외동포법' 촉구 농성장에서였다. 장군 손녀는 어린 시절 앓은 병에 의해 불구가 된 꼽추(척추측만증) 장애인이었다.
그는 광복 55주년 해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으로 2000년 8월 11일 조국을 첫 방문했다. 그런데 체류기간 일주일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자 초청 기관인 '보훈처'가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통보했다. 이에 그는 "이 땅은 할아버지가 묻힌 땅이라 돌아갈 수 없다"며 그대로 눌러 앉았다.
결국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그는 "유공자의 후손이고 장애인이니 국적취득을 도와 달라!"고 법무부 출입국 관계자들에게 사정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다. 의지가지 할 일가친척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고,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임금을 떼이는 등의 천신만고 끝에 2004년 1월 국적을 취득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2007년 9월이었다. 불구인 그는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벌집' 지역인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살고 있었는데 '불법체류자'의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열악한 환경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연이어 나타난 '가짜 후손'들에게 시달리는 딱한 처지였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다급한 형편이었다.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를 그만둔 뒤 외국인노동자 인권/선교단체에서 일하게 된 필자는 '장군 손녀'의 딱한 처지를 알게되면서 '가짜 유족' 사건을 전담하며 취재하게 됐다.
첫 번째 '가짜 유족'은 차씨 종친회 사무총장이었고, 두 번째 '가짜 유족' 또한 종친회 간부였다. 1995년 차 의병장 유해봉환 안장식에 유족대표로 참석한 첫째 '가짜 유족'은 대전국립현충원에 세워진 차 의병장 비석에 자신을 손자로 등재시킨 것은 물론 의병장의 출생지를 자신의 본적지인 '충남 청양'으로 둔갑시켰다.
첫 번째 가짜 유족이 사망한 뒤 나타난 두 번째 '가짜 유족'은 족보까지 조작하는 수법을 통해 차 의병장의 비석을 자신의 증조할아버지의 것으로 변조하려고 시도했다. 차씨 종친회는 종친회 연명으로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가짜 유족'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두 번째 가짜 유족은 '종손 보증'을 서달라며 장군의 손녀를 괴롭혔고 여전히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보도 그후] '가짜 후손' 사건 진실규명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