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가면을 쓴채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반대하며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보자. 국제중, 특목고, '스카이'(SKY) 대학교로 이어지는 학벌획득의 과정이 이미 셋업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생존 기득권 확보를 위한 가장 무난한 코스이며, 이 코스 선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부모의 경제력임은 현재의 모든 지표가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공교육이 이것저것 끌어들여 발버둥 쳐봐도, 무한경쟁에 의한 선발제도라는 틀 내에서는 해답이 없다.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한 고가의 사교육은 꾸준히 생성되고 진화한다. 결국 서민이 등골 휘어지게 자식 학원비를 대어본들 사교육시장만 살찌우고 아이들만 잡을 뿐이다.
그런데, 게임의 룰과 목적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대안실천이 그나마 일부라도 시도되고 있는 학교현장에 일제고사라는 몬스터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것이 학교와 지역교육청의 명예와 책임자의 커리어를 좌우한단다. 어떻게 되겠는가. 뻔하다.
이 몬스터는 교육과정 자체를 규정해 버리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인문계고를 보라. 몇 십년째 대입교육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가. 가장 지적탐구력이 왕성할 시기의 청소년들이 대학이라는 목표만 보고 지낸 지 오래인 대한민국이다.
이제 한국의 학교는 초등학교 때부터 문제풀이와 서열획득을 위한 교육에 폭 파묻혀야 한다. 그래야 '반 평균' 깎아먹는 놈이란 소리 안 듣고, 너 땜에 승진 못했다는 말 안 듣고, 너희 학교 땜에 망신당했단 소리 안 듣는다. 이것은 개인의 초연함이나 내공으로 극복되기 어려운 문제다. 적어도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책임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어떨까. 일면식도 없는 국가라는 최고 권위기관으로부터 자신의 등급을 판정받고 통보받는다. 어린 시절의 자존감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확립되는가는 개인의 생애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사람은 자기 자존감이 형성된 기준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웃을 보고 삶의 행로를 결정한다.
이 시험을 억지로 강요할 이유 없다 굳이 초등학교에까지 일제고사를 무리하게 시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교육을 전공한 사람들이므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수업을 받고, 친구들과 경쟁하여 등급을 받으며, 내 서열을 올려줄 선생님을 선호하고, 반 평균을 올려주는 아이를 예뻐하는 선생님을 지켜보며, 부모님과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조바심 내며 매년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는 것에 몸과 마음이 적응되어 가는 동안 키도 크고 머리도 큰다.
일제고사는 표면적 교육과정을 파행화하는 문제점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아이들이 체험할 잠재적 교육과정을 망가뜨리는 데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간 일상을 통과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사람이 만든 시스템을 절대시하고, 불공정한 경쟁을 절대원리로 수용하고, 성공과 승자를 신화화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패배자에 대한 경멸로 바뀔 것이다.
연대해야 할 수많은 이웃들을 스스로 궁상맞게 여겨 모래알 같은 섬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기득구조를 전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내면화하게 만드는 것. 나는 이게 무섭다. 세상은 이토록 넓고, 아이들의 여린 시선이 가 닿음으로써 따스하게 생동할 만물이 천지에 있는데, 몸과 영혼이 함께 자라는 보드라운 시기에 냉혹한 세상이치를 때 이르게 체득하고 미리미리 늙어갈 아이들을 보게 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