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의 기적'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17일자 동아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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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거짓이 된 '임실의 기적' '임실의 기적'이라 했던가?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
'봐라. 학원도 변변찮은 시골학교에서 노력만으로 충분히 도시 학교보다 잘 할 수 있다.'교육당국과 보수언론은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난리를 쳤다. '남 탓보다는 자기 노력이 중요'하다는, 가뜩이나 심화되어 있는 교육 양극화를 덮을 수 있는 아주 좋은 호재가 아닌가? 그것이 임실의 기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환경, 대도시도 나름대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학력 미달 학생이 많은 학교, 지역은 교장, 교감 등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예산 지원과 연계한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한축이 무너져 내렸다. 임실의 기적은 조작된 것이며 조작은 곳곳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조작은 비단 한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지금의 구조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이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사과를 하고 교육감들이 줄줄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 같이 이야기한다. 시행과정이 철저하지 못했다고. 다음부터는 철저히 하겠다고. 일제고사를 통해 줄 세우기를 안하겠다, 그만두겠다가 아니라 점수 관리를 철저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학력 미달 학생=학교 낙오자'를 만들어버린 죄책감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대통령이 원하는 인재는 슈퍼맨? 대통령도 교육관계자의 의견과 다르지 않았다. 23일 대통령은 "분명한 것은 학력평가 자료를 가져야 맞춤형 교육 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일제고사 강행을 거듭 천명했다.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될 것이고 아이들은 3월초 또 한 번 일제고사를 치르게 될 것이다. 2008년도보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철저한 시험 감독, 엄정한 채점 방식, 한층 더 보강된 집계방식 정도일 것이다.
아니다. 진짜 바뀌는 것은 학교 간 경쟁이 되어버린 일제고사를 잘 보기 위해 교장은 교사를, 교사는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세울 구조가 공고해진다는 거다.
학교의 평균을 까먹는 아이는 공공의 적으로 낙오자가 되고, 교장과 교사는 아이들의 성적으로 대접받고 승진하는 교육구조. 이런 교육 구조에서 대통령이 말하는 창의력과 폭넓은 사고력을 가진 학생을 양성하는 교육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23일 라디오 연설에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시험만 잘 푸는 그런 학생이 아니다. 창의력과 폭넓은 사고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적인 능력과 함께 다른 학생들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 튼튼한 체력,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을 갖춘 그런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만약 대통령이 말하는 이런 덕목들이 학생들이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면, 그래서 교육 관료들이 이런 아이들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하고 점수화하여 평가하려 한다면 그건 학교가 아니라 슈퍼맨 양성소가 아닐까?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F4 같은 이상적인 학생(능력·실력·인물 모든 것을 두루 갖춘)을 육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나는 부모로서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그런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해 아이를 닦달할 마음은 더더욱 없다.
새 친구들 얼굴 알기 전에 일제고사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