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국 문경시장이 이재오 의원을 맞이하러 '자발적'으로 문경 진입로인 영풍교까지 나왔다.
박상규
이 의원측 안내에 따라 오후 장정을 시작했다. 낮 12시 30분. 1시간 가까이 달려 영풍교를 넘어 문경에 들어서니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 신현국 문경시장을 비롯해 시청 직원들이다. 카메라를 멘 사람도 보였다. 이들은 이 곳에서 40분 넘게 기다렸단다.
한 때 낙동강 대구청장을 지낸 이력을 가진 분이라 안면이 있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일행을 기다렸다. 친환경 문경시를 주창하시던 시장님은 이제 경부운하에 대해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라 했다.
30분쯤 시간이 흐르고, 너무 늦어진다 싶어 전화를 했다. 그런데 또 길이 엇갈렸다. 문경 토박이인 시장님과 함께 예상한 길은 자전거 행렬의 진로가 아니었다. 노선조차 모르는 것을 보니 어제 성주 군수처럼 이 최고위원 일행도 모르게 '자발적'으로 나온 것 같았다.
시장님은 우리가 이 의원의 위치를 알려주자마자 급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되돌아갈 엄두를 못 내고, 목적지로 직접 가기로 했다. 대신 영풍교 주변의 환경에 대해 조사도 하고, 민심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부운하 공약에 따르면, 낙동강을 따라 오른 배는 영강을 통해 백두대간을 넘는데, 영풍교는 낙동강이 영강과 합류하는 지점 바로 상류다.
"난 이명박 팬... 뭐가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배 다니면 좋아지지 않겠나" 우선 한 음식점에서 근무하는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경부운하요. 난 몬 들어 봤는데. 그거 한다고 해도 금방 되겠어요? 낙동강 수질보전 한다고 강변 땅 사주다더니만, 아직 소식 없는데. 우린 2005년부터 기다리고 있구마. 그 돈 있으면, 우리부터 보상 좀 해줬으면 좋겠네."
다음 영풍교 밑에서 세월을 낚던 분들의 목소리도 청취했다.
"경부운하가 바로 밑으로 지나가는가? 난 몰라. 난 외지사람이라. 대구에서 왔거든. 나야 뭐 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건 몬 들었는데. 대구 사람이고 그런 거 워디 다 아나?"
이어 벌초하고 내려오는 가족들을 만났다.
"경부운하 알죠. 들어 봤어요. 우린 이명박씨 팬이라요. 근데 뭐가 좋아질진 잘 몰라요. 우린 또 서울이랑 부산이랑 외지에서 와 나서. 하지만 운하 만들어 놓고, 배 왔다 갔다 하면 좋아지지 않겠어요."
아하, 이게 민심인 듯싶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제1공약을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분들이 많고, 들어 봤어야 그냥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 정도다. 그러니 운하의 타당성이 어쩌고 논란하는 사람이야 얼마나 되겠나. 정치적 이해득실로만 따지면, 경부운하에 대한 검증은 재껴두고 홍보만 하는 것도 타당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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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 들녘의 김병기 타령 ⓒ 박상규
[2신 : 24일 오후 1시 45분] 염형철 처장의 눈에 비친 '황당한' 두 기자 오전 9시 10분. 낙동고개 휴게소에 들렀다. 기사를 올리고, 어수선한 오전 상황에서 한숨 돌리기 위해서다.
뒤늦게 이재오 의원이 구미 해평습지에 들른다고 했다는 말을 김병기 기자가 전한다. 잘됐다. 그렇다면 나중 출발한 우리가 그들을 추월한 셈이니, 잠시 짬을 내 여러 가지를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30여분이 흘렀을까? 이 의원 일행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다. 기사를 체크하고 답변까지 하는 동안에도 이재오 의원은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했더니, 웬걸 벌써 지나쳤다. 해평습지를 들르지 않았거나, 너무 진지하게 일하고 있었던 우리가 지나치는 행렬을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확인하니 해평습지를 지나쳤단다.)
왜 그들은 오지 않을까? 그런데... 벌여둔 일을 마무리 하느라 시간이 계속 간다. 그 사이 이 의원측 이두호 비서가 친절하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효갈리를 지나고 있습니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어느새 거리는 15km까지 벌어졌다. 40여분정도 달려야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도 점심 때 가서야 만날 수 있을듯하다.
오전 10시 50분. 나지막한 강창교를 지난다. 교량 높이는 3m 남짓, 비만 오면 잠기는 잠수교다. 오늘만 낙동강을 다섯 번째 건넌다. 다리를 건너는 경운기, 추석을 앞두고 낫을 들고 묘를 벌초하는 아저씨. 그 옆을 지나는 두 기자, 평화롭고 정겹다.
이곳에 운하가 생기면? 얕은 다리들은 물속에 잠기거나, 혹은 다리 뿌리가 파헤쳐져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9m가 넘는 물 속에 기초를 두고, 물 위로도 15m 이상 솟아 있는 초대형 교량들이 새로 들어서야 할 판이다.
오전 11시 30분. 예천군 풍양면에서 왼쪽으로 낙동강을 끼고 북진하고 있다. 갈대 우거진 강변, 잘 발달된 모래톱, 강 가운데엔 하중도가 아름답다. 다양한 요소들이 잘 짜 맞춰진 이곳은 얼핏 봐도 건강하고 풍부한 생태계를 짐작케 한다.
이재오 의원과 우리, 그 큰 견해의 차 어제 비슷한 광경을 봤던 이재오 의원은 자신의 탐방 둘째 날 서신에 이렇게 썼다.
"강변 둔치는 별 쓸모가 없어보였다. 적어도 남지까지는 일정한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준설해야 하고, 강 가운데 퇴적된 성 같은 늪지대는 뱃길을 열기위해서는 없애는 것이 좋겠다."
이 의원은 다양성을 무질서로 이해하는 모양이다. 하천의 모래밭이 수질을 개선하고, 강바닥의 모래들이 홍수를 만난 물고기와 수서곤충들의 피난처가 되어 장마가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환경을 복원하는 근거임을 모르는 소리다. 그래서 한국생태학회 배연재 부회장은 9m 깊이의 운하로 물줄기를 단순화하면 수서곤충의 절반가량이 사라질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천 생태계의 밑바닥을 이루는 수서곤충의 감소는 곧 어류를 포함해 하천생태계 전체를 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다. 오늘은 물고기가, 내일은 새가, 그리고 다음 날에 인간에게 불행이 닥칠 수 있다는 기자의 생각과 새들과 물고기를 쫓아내는 것을 발전이라고 믿는 이재오 의원 사이엔 벌어진 거리만큼 차이가 크다.
또 이재오 의원의 눈에는 낙동강 바닥에 쌓여있는 황금빛 골재가 보이지만, 우리의 눈에는 식수가 보인다. 4년간 경부운하 공사를 위해 553km 전 구간에 걸쳐 골재채취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무슨 물을 먹고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