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세운동기념탑장태욱
이윽고 3월 21일이 되자 조천리 미밋동산에 14인의 동지와 더불어, 조천 마을 주민들과 인근의 신흥, 함덕, 신촌 등지 서당생 150여명이 모여들었다. 14인의 동지 중 김필권은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창호지에 혈서로 '대한독립만세'를 써서 들고 조천주재소 서쪽에서 미밋동산으로 이동하며 만세를 불렀다. 이에 시위군중의 규모가 커져서 그 수가 500명에 이르게 되었다.
시위대는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은 다음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김장환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시가행진은 미밋동산에서 조천 비석거리를 지나 제주시내를 향해 진행되다가 출동한 경찰에 부딪쳐 13명이 연행되고 해산되었다.
3월 22일에는 백응선, 박두규, 김필원이 주도하여 200여명이 조천에 모여 전날 연행된 자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2차 시위를 펼쳤다. 그리고 3월 23일에는 백응선, 김두배, 이문천이 중심이 되어 3차 시위를 펼쳤는데, 조천에서 시작할 때 100명이었던 시위대는 함덕에 이르러서는 군중들이 가세하여 800명이 되었다.
3월 24일은 조천 장날이었다. 이날 김연배의 주도로 열린 4차 시위에는 1500여명의 군중이 참여,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날 시위에서 만세운동의 주동자 14명 전원을 포함하여 29명이 검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