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어렵다고? (3)

집안에서 초등논술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나

등록 2007.08.20 12:17수정 2007.08.2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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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앞에서 육조(六祖)적 논술이라는 개념과 그에 대한 방법론인 관찰, 사유, 표현, 이 세 가지 요소를 강요받았다. 강요라면 너무 그런가? 그럼 제안했다고 치자. 첫 번째, 관찰(독서)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아이들이 보고 듣고 말하고 관계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포함한 개념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경험하게 되는 세계는 너무나 천차만별이고 대중잡을 수도 없는 성질이므로 논의에서 제외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책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어쨌든 부모의 입장에서야 애들이 알아서 고전적인 명작들을 읽어주길 바라겠지만 어디 그게 부모 마음 가는 대로 돼주는 일이던가? 장애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TV, 인터넷, 게임기, 그리고 교육을 가장한 만화책 등, 상대해야 할 적들은 하나같이 만만찮은 것들이다.

요즘 애들은 왜 또 그렇게 뭉그적거리며 빈둥거리는지. 앙칼진 딸애와 의뭉스런 아들은 끊임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매번 나의 인내심의 바닥을 확인하려 들고, 가끔 아주 가끔 선심 쓰듯 한 번 사는 재미를 준다.

아이가 스스로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세상이 말하는 “좋은 책”을 알아서 집어들어 준다면야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혹시나 하던 감정은 역시 그렇구나! 로 끝나기가 쉽다. 신문 서평에는 애들을 위한 책 소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아동문학상은 왜 그리 많은 것인지.

내 아이의 기호(嗜好)와 부모의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이다. 그 다음은 뻔하다. 좋은 책을 강요하는 부모와 아예 책 자체를 거부하는 아이, 뭐 대충 이런 구도가 나오지 않겠는가? 이렇게 어느 집에나 동시다발, 대동소이한 갈등구조가 그려진다.

그런데 좋은 책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그건 애당초 애들과 합의한 사항이 아니다. 나는 여태껏 갈데콧 같은 아동문학상 심사위원들 중 아이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좋은 책이라는 판단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기준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부드러운 뇌를 믿는 편이다. 진화과정에서 획득한 유전자만으로도 아이들은 믿을 만한 존재임이 확실하다. 따라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폭식(?)에 가까운, 종류를 가리지 않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본능을 믿어야 한다.

다음이 사유(思惟)라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기” 정도일 텐데, 내가 본능적으로 현학적인 관계로 사유라는 거창한 표현을 쓴 것뿐이고 둘은 완전히 같은 말이다.


우선 명제 하나를 생각해보자. 사유란, 생각하기란 일종의 지식의 소화과정 같은 것이다.

위의 명제를 설명하기 전에 짤막한 토막상식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뇌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생각과 지식의 소화과정(사유)이라는 말이 이해가 될 것으로 믿는다.(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말기를 바란다. 뇌 구조를, 작동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나 당신을 위해서나 매우 유익하다. 당신 어깨 위에 매달고 다니는 무거운 기계가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솔직히 나는 뇌(腦)과학, 이쪽이 거의 모든 분야의 학문을 다 먹어치워 버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영국의 수학자이며, 암호전문가였던 앨런 튜링(튜링테스트를 창안한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신이 이공계 출신이면 최초로 이진법 형태의 연산기계장치를 제안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고, 인문계열이라면 아마 동성애자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이나 폰 노이만 같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두 사람이 기획단계에서 제공한 획기적인 공헌으로 출발한 컴퓨터는 이제 의도적으로 인간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기 시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신이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자신을 닮은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것은 또 얼마나 기막힌 대칭인가?)

예를 들어보자. 인간이나 컴퓨터나 공히 무엇을 기억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처리방식이 다르다. 컴퓨터는 이름(파일)으로 저장되고 이름으로만 호출된다. 그러나 사람은 내용으로 저장되고 내용으로 처리되며 내용으로 호출된다.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서로 전혀 다른 차원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가령, 컴퓨터에 육조혜능을 쳐 넣으면 그 이름이 들어간 파일들만을 뽑아서 보여준다.

그러나 당신의 검색창에 당신 아이의 이름을 쳐(?) 넣어보라. 당신의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당신과 아이가 기억하는 모든 시간, 느낌, 사건들을 모조리 보여줄 것이다.(순식간에 잠자던 시공간이 얼떨결에 일어나 당신에게 불려나온다. 영문도 모른 채.)

아이와 직접적으로 상관없거나 심지어는 이제는 아이의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는, 예를 들자면 3살 때 어린이집 원장선생의 얼굴이나, 젖먹이 때 아이에게 말을 걸던 낯선 노인의 얼굴, 또 당시의 날씨, 주위에 누가 있었는지, 분위기가 어떠했는지까지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이다.

이건 인간과 컴퓨터 사이에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추론(推論)하는 것이다. 단순히 컴퓨터의 연산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접근방식 자체가 인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건 당신이 잠든 사이에 당신의 뇌 안에서 단편적으로 입력된 기억들이, 지들끼리 내용으로 소통, 재편성 작업을 마친 결과물인 것이다. 그 와중에 꿈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밤에 꿈을 꾼다. 예전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만이 꿈의 영역에 존재하는 유일한 가이드였다. 꿈의 해석도 그에 안내에 의해서만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사람의 꿈은 기억들끼리 소통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내용적으로 서로 관련지으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필요 없는 내용들은 삭제되는 식으로, 자는 동안 우리들의 뇌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밤을 새며(?) 엄청난 편집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꿈이란 그런 편집과정에서 조각난 그림끼리의 연결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설파한 검열이 아니라는 말이다.(<통섭>/에드워드 윌슨/최재천 번역)

자, 제자리로 돌아가자. 이제 앞에서 말한 “생각하기란 일종의 소화과정”이라는 명제와 연결이 되는가? 안된다면 다시 예를 하나 들기로 하자. 이번에는 질문이다.

왜 아이들은 밤에 자다가 돌연 깨어나서 울곤 하는 것일까?

우리가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어렸을 때에는 꿈이 많았다. 하늘을 새처럼 날기, 절벽에서 떨어지기(무한 반복으로, 아주 길게, 참으로 끔찍했다), 뱀에게 물리기, 뱀에게 감기거나 혹은 뱀 꽁지 밟기. 종목도 참으로 다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새벽에 꿈에서 깨어, 갑자기 죽는다는 것이 무서워 혼자 어둔 방에서 울어본 적이 없는가? 나는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지금은 꿈을 꾸어 본 기억이 흐릿하다. 왜 그럴까? 아이 적에 그 많던 꿈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어른과 아이에게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런 차이를 방금 전에 나눈 이야기로 끌어와 보자.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이들이 꿈이 많은 것은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은 것이고, 그만큼 편집 작업이 많다는 이야기. 그래서 꿈이, REM 상태에서 기억들끼리 소통하는 그 와중에 꿈이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위의 가설이 맞는다면, 아이들은 밤에 잠을 자면서 엄청나게 정보처리를 하고 있으며, 그럴 능력이 되는 시기이고 이런 것은 사람이 음식물을 먹고 난 뒤 시간에 따라 소화에 관련된 장기(臟器)들이 과정에 따라 작업을 착착 진행시키는, 그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사유를 지식의 소화과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결론을 내자면 독서는 먹는 것과 같고 사유는 소화과정과 같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어떤 것(보고, 듣고, 읽는 모든 것, 주로 정신적인 것이겠지만)도 다 소화가 가능하고, 과정이 있어야 하고, 표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초등 기간에 폭식에 가까운 독서와 부모와 주고받는 한두 마디의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건 행운이다. 책 내용을 가지고 나누는 대화에는 논술 구성요소 3가지가 다 들어있게 된다. 대화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있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찰(독서), 사유, 표현이라는 3가지의 구성요소가 동시에 발현되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논술은 부모가 아이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전인적 교육형태의 완성형이 되며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형태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가정논술교육의 결정판이 아니겠는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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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아들이며 누구들의 아빠. 학생이면서 가르치는 사람. 걷다가 생각하고 다시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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