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어렵다고? (2)

복기(復棋)해 보기와 육조(六祖)적 논술

등록 2007.08.10 17:39수정 2007.08.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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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스케치북
문제의 스케치북이진영
와이프가 고소를 금치 못하였던 나의 참담한 패배에서는 분명 논술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논리가 있었고, 논쟁이 있었고, 그전에 글쓰기가 있었다. 이제 복기(復棋)를 시작해보자.

첫 번째, 딸은 나를 쭈-욱 관찰해왔었음이 드러났다. 책을, 세상을, 모든 관계들을 심지어는 부모들까지, 애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관찰의 대상이 된다. 이건 관찰인 동시에 학습이고 스스로 생각을 일깨우는 논술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아빠의 단점에 관한 생각을 계속해왔다. 중국문학사에 있어서 비평의 시작을 언제로 보냐 하면 작품에 대한 기준이 생긴 시점을 말한다. 비평이란 좋고 나쁨에 대한 기준이 생겼다는 말이다.

딸이 아빠는 나쁘다, 혹은 단점이라고 말했을 때에는 이미 머릿속에 좋은 아빠라는 기준이 생겨났으며, 나는 딸아이의 그것에 위반되었으므로 아빠는 나쁘다 혹은 단점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기준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는 말일 것이다. 이건 말하자면 사유(思惟)라는 것이다.

세 번째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이것이 표현이다. 여기서 형식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표현하고 싶어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내용이다.

딸애는 논리적으로 논술을 한 셈이다. 본능적으로, 거들먹거리는 아빠의 도전에 대해 토인비적인 응전으로 분투하여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그리고 희망을 드러낸 것이다.

딸은 태어나서 쭈-욱이라는 약간 과장된 표현(이것 역시 딸애가 본능적으로 획득한 싸움의 기술에 속할 것이다. 약간 저급한 기술이긴 하지만)으로 그동안 자신이 아빠를 면밀히 관찰해왔음을 당당히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이러이러하니 아빠는 나쁘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근거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한, 혹은 필요성을 정확히 꿰뚫는 본능적 자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나는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면 와이프?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그런 추론은 별로 현실적이지 못하다. 둘이서 주로 하는 대화는 드라마를 보며 서로 키득 이는 게 전부이다. 그렇다면 아들? 아들은 현재 말도 제대로 떼지 못하였다. 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녀석이 누나를 가르쳤다고는 볼 수 없다.) 순전히 혼자 말싸움 도중에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말임이 틀림없다.

자신의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고 기회(?)가 되자 망설임 없이 글로 표현하였고, 주로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통해 앞뒤를 맞추었으므로, 말하자면 논증하였으며 일견 타당하였으므로 가슴 아프지만 나는 석패한 것이다.


논술은 원래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논술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첫 번째 글,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와의 논쟁을 예를 들어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맹세코 나는 딸아이에게 아무런 작위(作爲)를 가한 적이 없다. 단지 집 곳곳에 책을 깔아주고 가끔 주말에 도서관에 데리고 다닌 것뿐이다. 그렇다면 논술은 본능적이라는 나의 주장에는 별 무리가 없는 것, 아닌가?

이제 정리해보자. 물론 나의 기준이다. 논술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고 논술의 구성요소는 3가지, 즉 관찰, 사유, 표현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들이 나왔다. 매우 중요하다. 본능이라는 개념에서 육조(六祖)적 논술이라는 것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고 구성요소 3가지에서 방법론이 등장하므로 이 개념은 꼭 인정해주길 바란다.

말하자면 육조(六祖)적 논술이라는 것은 이름이고 구성요소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앞으로 자못 현학적인 풍모가 넘치는 단어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모두 나의 유식을 드러내고자 하는 행동에 불과하므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길 바란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육조라는 스님이 있었다. 법명은 혜능이다. 위로는 위대한 스승(五祖)이 있었고, 그 밑에 수제자인 마조선사가 굳건히 2인자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혜능은 그저 마당을 쓸고 밥을 짓는 수많은 제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혜능이 마당을 쓸고 있다. 갑자기 일진광풍이 요란하게 일어났다. 절간의 위엄을 드러내는 높이 솟은 당간이 갑작스런 바람에 휘청이고 깃발이 찢어질 듯 위태로웠다.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들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 우려 섞인 표정으로 깃발을 올려다본다. 물론 스승도 나왔다.

"엄청난 바람이군."
"쓰러지면 큰일인데."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누군가가 외쳤다.

"가만, 저건 깃발의 마음인가? 아니면 바람의 마음인가?"

누군가 화두를 던졌고 (놀라운 정진의 정신이 아닌가? 당간이 당장 넘어갈 위기에서도 마음 공부할 엄두를 내었으니, 그야말로 날선 정신이 아닌가?) 마당은 곧 웅성거리는 법석이 되었다. 아마 스승 역시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바람이다, 아니다, 깃발이다. 주장이 분분한데 일말의 동요도 없이 마당을 쓸던 혜능이 중얼거렸다.

"그저, 마음일 따름이지."

그 누구도 마당을 쓸며 하찮았던 혜능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는데 귀 밝은 스승만이 그 소리를 들었고, 그는 스승 오조(五祖)를 이어 육조(六祖)가 되었다.

육조의 생각을 잘 드러내 주는 일화가 또 하나 있다. 마조가 돌인지 쇠인지 거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갈고 닦아 거울처럼 반짝이는 물건, 즉 그런 마음을 만들겠다고 오조에게 자랑스럽게 말하였을 때 혜능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전해진다.

"마음이 본디 청청하거늘. 굳이 뭘 닦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육조적 논술이라는 것이 무엇의 은유인지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다. 불심(佛心)이라는 것은 원래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불심이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 이것이 육조의 마음이다.

그러니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니고 오로지 당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고, 그러니 닦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비약이다. 고전 물리학에 불확실성의 원리를 더하면 양자역학이 나온다고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양자역학적인 발언인 것이다.)

논술이야말로 그렇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본능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본능 안에는 불심도 있고 논술능력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논술에 적당한 DNA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내 생각인 것이다. 딸애가 그랬고 육조가 그랬듯이.

'교육'이라는 영어(education)의 어원은 끌어낸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들었다. 무엇을 끌어낸다는 말인가? 아이에게 존재하는 무엇이겠지. 무엇일까?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타고난 불심을 이끌어내고 논술능력을 이끌어내자는 말이다. 이끌어낸다는 말과 본능, 절묘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나의 논술관(論述觀)을 스스로 이름하기를 육조(六祖)적 논술이라 하였고, 이제 이에 대해 동의할 의사가 있다면 이제 구성요소로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어가 보자. 다음에는 집에서 부모가 애들을 어떻게 다뤄줘야 하는가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
#논술 #딸 #육조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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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아들이며 누구들의 아빠. 학생이면서 가르치는 사람. 걷다가 생각하고 다시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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