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내려와서이형덕
산 아래로 내려서며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나온 산마루의 지명을 돌마님께 물으니, 해득하기 어려운 몽골 발음으로 '구루반 싸이한(Gurvan Saikhan Mountain)'이라 한다. '세 개의 아름다움(Three beauties of the Gobi)'이라는 곳 가운데 하나라는데, 나중에 지도에서 찾아보니 나와 있지 않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정확한 경로를 일러 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산 아래는 며칠 전에 내린 물에 쓸려 돌밭길이 되었고, 드문드문 낙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은 급속도로 황량해지며, 저물어 가는 저녁 해에 멀찌감치 모래 언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홍고린 엘스(Hogoryn Els)'라는 사구 지역이었는데, 알타이 산자락을 눈앞에 두고 초원과 초원 사이에 누군가 부어놓은 듯한 모래 언덕이 무려 180㎞나 이어져 있다고 한다. 돌마님도 그것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내일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쪽의 사구를 오를 계획이다. 눈앞에 뵈는 사구를 끼고 북쪽으로 차가 달렸다. 금세 나타날 듯한 줄친 고비 2캠프장은 사방이 어두워진 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길이 험하여 어둠 속을 더듬으며 느린 속도로 달리는 차에서 바라보는 어둠 속의 초원은 더욱 막막했다. 서너 시간을 더 달린 뒤에 멀리서 까물거리는 불빛 하나가 보인다. 누구의 게르에서 흘러나온 불빛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었다.
몽골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리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황막한 초원에서 홀로 떨어져 생활하는 그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힘이 바로 외로움에서 오는 것이며, 서로서로 소중히 여기며 배려하게 되는 미덕을 이해하게 되었다.
차는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캠프장에 도착했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별은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내일 비가 오지 않을까 돌마님이 걱정했다.
뒤늦은 식사를 마친 후, 술을 나누노라니 전등이 꺼졌다. 태양열을 모아 발전기로 돌려 저녁 두어 시간만 불을 켜는 탓에 늦게 도착한 우리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어둠과 만나게 되었다. 간신히 게르로 돌아가 촛불을 켜고,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자니 천막 밖에서 울어대는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 유명한 고비의 모래 바람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안경 유리에도 긁힌 흔적이 남을 정도라는 바람이었다.
별들도 다 날려간 벌판에 서서 사람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어떠한 큰 소리도 바람에 날려가 바로 곁에서도 잘 들리지가 않았다. 술보다 바람에 취한 사람들은 가슴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속내 깊은 이야기들을 울음처럼 모랫바람 속에 쏟아내었다. 사람이 술보다 더 도수 높은 바람에 취하는 걸 처음 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리게 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사용된 몽골어의 한글 표기는 정확치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