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초원 지나 '여행자들의 고비'에 이르다

[몽골 고비를 가다②] '줄친 고비1 캠프'에서의 둘째 날

등록 2007.08.15 12:49수정 2007.08.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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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아침은 유난히 부지런했다. 캠프 요원들이 배웅을 나와 자동차 바퀴에 우유를 뿌려 주었다. 여행의 무사 안녕을 비는 뜻이란다.

'이크덴달라이' 솜이라는 조금은 번화한 마을에 이르렀다. 우리의 읍 정도에 해당하는 '솜'은 고비에서 만나게 되는 큰 마을이다. 그곳에서 자동차 기름도 넣고, 못이 박힌 자동차 바퀴도 갈아 끼웠다.


오토바이 탄 몽골사람들
오토바이 탄 몽골사람들이형덕
주유소에는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으러 왔다. 평원을 달리는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을 심심찮게 마주쳤다. 이제 이곳에도 말을 팔아 오토바이를 사는 세상에 이르렀다.

마을에서 나이 어린 소녀들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아이들 뒤에는 좀더 나이 먹은 여자와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양털로 만든 인형들이 때가 꾀죄죄한 채 내밀려졌다. 삼천 원이라는 한국어 발음도 정확하다.

뒤에 선 언니라는 여자가 아이를 자기 우리 쪽으로 밀어댔다. 소녀의 눈망울은 초원의 별처럼 맑았다. 사탕을 주고, 볼펜을 주고, 마음이 약한 누군가가 낙타 인형 하나를 팔아 주었다. 나중에 그 행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아이를 향한 동정심이 행여 지난 날 우리에게 던져지던 초콜릿이나 츄잉껌이 아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별로 팔지 못했지만 생글거리며 "바이, 바이"를 외치는 소녀의 표정은 티 없이 맑기만 했다.

러시아제 승합차 '푸르공'
러시아제 승합차 '푸르공'이형덕
이크덴달라이 마을을 떠나 낮12시경에 작은 마을에 이르렀다. 거기서 처음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다. 홉스굴부터 고비를 남북으로 종주하는 15일 여정이라는 그분은 자신이 타고 온 '푸르공'이라는 러시아제 승합차 칭찬부터 했다. 맹꽁이처럼 생겼지만 차안이 넓고 차체가 높아 물이건, 산이건 못 가는 데가 없다고 한다.

물웅덩이를 지나는 차
물웅덩이를 지나는 차이형덕
이후 평탄한 초원을 가로지르며 차는 쾌속 질주를 했다. 그리고 오후 2시 경, 처음으로 물에 잠긴 길을 만났다. 고비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운전자들은 행여 자동차 바퀴가 빠지는 수렁을 만날까 싶어 다른 차들이 다닌 길로 다녔다.

며칠 전에 비가 내려, 다니던 길이 물에 잠긴 것이다. 누런 황토물이니 바닥을 알 수가 없어 머뭇거리다가 용감한 한국인 한 명이 걸어 들어가 깊이를 몸으로 헤아려 준 뒤에 드디어 차들이 한 대씩 물구덩이를 건넜다.


물 길러 온 여자들
물 길러 온 여자들이형덕
부근에는 가시가 많은 덤불류의 '단'이라는 풀이 '덥축'이라는 무덤처럼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을 뿐, 진흙벌판이었다. 그런 중에도 낙타를 기르는 게르 한 채가 홀로 그 벌판을 지키고 있었다.

자동차 그늘에 기대어 라면을 끓여 요기를 하는 중에 얼굴을 천으로 휘감은 여자 둘이 우물로 물을 길러 왔다. 몽골에서는 양떼를 보면 누구든 물을 길어 주어야 한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에게야 어떠할까. 친절한 한국인이 그 여자들에게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주었다. 울란바타르의 대학에 다니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여자들은 얼굴이 탈까봐 눈만 내놓은 채 천으로 가린 것이라 했다.


나무 그늘 밑의 소들
나무 그늘 밑의 소들이형덕
다시 이어지는 광활한 평원을 바라보다 깜박 잠이 들었다. 차가 멈추는 바람에 눈을 떠 보니 난데없는 천국 풍경이 나타났다. 오후 5시경, 우단사부라는 곳에 이르렀다. 길고 서늘한 그늘을 지닌 바위산 밑에 이른 것이다. 그늘이라면 자동차건, 동료의 그림자건 사정없이 파고들던 터에 그런 큰 그늘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차를 놓고 무작정 걷자니 큰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나무 밑에는 소들이 여유롭게 누워 있었다. 그 풍경이 흡사 성경에 나오는 시내 산을 방불케 했다. 어느 나무 그늘에 잠시 앉아 있으려니 돌마님이 주의를 주었다. 더운 날씨에 갑자기 나무 그늘에 들어가 몸을 식히면 몸살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고 했다. 게다가 이 바위산에는 늑대들이 많다고 했다.

고원지대
고원지대이형덕
그곳을 지나면서 평원은 점차 바위들이 많은 구릉지대로 들어섰다. 제법 습기가 많은 바위산에는 청회색의 지피식물들이 잔잔히 깔려 있었다. 돌마님의 말로는 허브류의 식물들이라 했다. 파셀리처럼 생긴 풀에서는 독특한 향이 났다. 차에서 내려 걷자면 온통 땅에서 향기가 났다. 향기로 가득 찬 땅.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는가.

집안에서 반대하는 세 사람의 남자를 사랑하는 세 여인이 변하여 되었다는 '세 여인의 산'이 멀리서 바라보였다. 사랑이나 어머니에 관한 지명설화들이 유난히 많다는 돌마님의 설명이었다.

차는 해발 2500미터의 고원지대를 달렸다. 멀리서 높게 보이던 산들이 바로 곁에서 부드러운 융단을 덮은 듯, 연두색의 능선을 이어나갔다. 하늘 호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 초원은 곁에 있었다. 이곳에서 밤을 지새운다면 별들은 거의 손에 와 잡힐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소들이 산능선을 넘어 워낭을 울리며 나타날 듯했다. 양치기 목동은 여름내 이 산에서 머물다가 가을과 함께 마을로 내려갈 것이다. 고원지대에는 물도 흔하고, 풀도 푸르렀지만 가축이나 게르를 만날 수 없었다. 외로움이 아름다운 것일까, 아름다움이 외로운 것일까.

막막한 고원길을 지나자니, 돌마님이 몽골에서는 외로움을 말할 때, "먼지도, 구름도, 새도 없는 곳"이라는 비유를 쓴다고 했다. 먼지도 없는 곳의 외로움. 고원을 달리며 만난 외로움이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끝없는 평원
끝없는 평원이형덕
고원에서 내려서자, 다시 먼지가 나는 길과 만났다. 그리고 그 길의 저 편에 오밀조밀한 마을이 보였다. 그 마을 뒤편에는 원경으로 알타이 산맥의 마지막 연봉들이 섬처럼 청록의 연무 위에 얹혀 있었다. 그것을 두고 저녁 안개니, 풀밭이니 의견이 분분했다. 가까이 가 보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길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 저녁 8시 45분경에야 목적지인 줄친 고비 1캠프장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정표라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데다 비에 길이 끊기고 이리저리 돌아가다 보면, 운전자들도 보름씩이나 길을 잃고 고비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다 한다. 몇 시간 넘긴 것이야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길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실감하는 하루였다.

캠프의 게르 내부
캠프의 게르 내부이형덕
'여행자들의 고비'라는 뜻의 '줄친 고비'는 알타이 산맥을 앞에 둔 초원지역의 마지막 남고비였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알타이 산을 넘어서기로 했지만 일정상 어려운 데다 그쪽의 길 상태를 미리 확인하지 못하여 부득이 이곳에서 우회하게 되었다. 내일은 약간 북쪽으로 올라가 줄친 고비 2 캠프로 향하게 된다. 오늘, 350km쯤 달려왔고, 내일도 300km를 가야 했다.

길은 어디에도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끝없이 이어진 고비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몽골 기마병을 닮은 운전사 '모기'가 있을 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리게 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사용된 몽골어의 한글 표기는 정확치 않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리게 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사용된 몽골어의 한글 표기는 정확치 않을 수 있습니다.
#몽골 #고비 #줄친 고비 #오토바이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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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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