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오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보복폭행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남대문경찰서에 소환된 직후 경찰들이 경찰서 주변을 에워싸며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먼저 '임의 동행 거부'입니다.
김승연 회장의 사례는 서두에 언급한 저희 아버지와 비교하면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출두요구서도 없이 '임의동행'으로 끌려가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재벌그룹 회장은 출두요구서를 몇 차례 발부받고서, 그것도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자기를 변호해 줄 검사 출신 변호사를 셋이나 대동하고 나타났습니다.
불쌍한 우리 아버지는 경찰이 돌아가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줄 알고 계셨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신체의 자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영장이 없는 상태이고 현행범도 아닌 바에야, 수사에는 협조한다 하더라도 잠을 집에 와서 잘 권리는 분명히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고물상을 하시는 아버지도, 명색이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자식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묵비권', 즉 '진술 거부권' 행사입니다.
김승연 회장은 어지간한 것은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니 김 회장의 차남은 자신의 휴대폰 전화번호도 모르고, 심지어 그날 같이 있었던 친한 친구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쯤 되면 사람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만에 하나, 혐의가 무죄일 경우 김승연 회장과 차남이 여론몰이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승연 회장, 인권 누린 것엔 불만 없습니다만
제 아버지는 스스로 변호한답시고 그날 있었던 일을 죄다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버려져 있는 고철덩어리를 주워 담은 것을 이야기했더니 경찰은 그걸 트집 잡았습니다. 돈이 되는 물건인데 함부로 주워 담았으니 '점유이탈물 횡령죄'에 해당된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니 자백하면 이 죄는 눈감아주겠다고 아버지를 회유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다른 것은 몰라도 정직을 신조로 삼아오신 분이라 "그것이 죄가 된다면 달게 받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사실 남이 필요 없어서 버린 물건이라 애초에 죄가 될 성질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낭패스런 경찰의 얼굴 표정이 지금도 상상이 갈 정도입니다.
2003년 8월 한총련 학생들이 미8군 영평종합사격훈련장 안에서 성조기를 불태우며 불법시위를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 한총련 학생들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자 <조선일보>는 이를 상당히 못마땅해 하는 칼럼을 실은 바 있습니다. 아마도 <조선일보>는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항을 잘 모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입니다. '진술거부권'과 '임의동행 거부'가 소극적인 자기 보호라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적극적인 자기 보호입니다.
김승연 회장은 진술하면서 하나하나 변호사의 눈치를 봤다고 합니다. 특히 가장 형벌이 큰 청계산 사건의 경우 끝까지 변호사를 쳐다보며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합니다. 김 회장의 변호사는 자신이 받는 연봉 이상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을 것입니다.
제 아버지야 애초에 돈이 없으니 변호사 도움을 받을 형편도 안 되었지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만한 사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례는 허다할 것입니다.
북한 노동당 입당 문제로 구속된 송두율 교수의 경우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 입회를 거부당한 일이 있습니다. 대법원 결정으로 우여곡절 끝에 변호인 입회가 성사되긴 했지만, 이번 김승연 회장의 경우엔 아주 자연스럽게 변호인 입회가 허용되었습니다. 선례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재벌 회장이 특급 대우를 받았다는 의심을 지우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