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오마이뉴스 남소연
"모든 걸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면 87년테제는 의미 없어"
- 당시 서노협 지도부였던 단병호·심상정·천영세 의원은 당시 배 의원의 고민을 경청하는 쪽이었나?
"그들은 나에게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며 한마디 질책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 그룹과는 토론하거나 논쟁하거나 싸워본 적이 없다."
- 그들이 비판을 안한 이유는 그들이 배 의원의 고민을 이해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당시 노동운동이 어려움을 겪었다. DJ가 들어서고 민주노총 내부에도 IMF를 맞아 임시집행부가 꾸려졌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구조조정에 직면하니까 경황이 없었다. 그들과는 신뢰가 있었다. 출세하려고 어용하려고 서노협을 결성하고 해고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불신은 없었다."
- 80년대나 90년대식 노동운동은 이제 끝났다고 보는가?
"노동운동이 끝난 게 아니다. 노동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시대의 방식은 이제 안통한다. 과거처럼 대립주의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투적 노동운동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그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자연히 폐기된다고 본다. 그것은 낡은 병기이고 낡은 방식이기 때문에 조합원도, 국민도 수용하지 않는다."
- 스스로 과거의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반성했다고 보는가?
"충분히 반성한 것은 아니지만, 문명의 전환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변화가 우리에게 와 있다는 것을 남보다 더 뼈저리게 느꼈다. 99년 지하철 노조위원장이 됐을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이 고용이었다. 이렇게 인력감축 요인이 도처에서 몰려들고 있는데 노조가 저항이나 반대만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냐, 고민이 많았다. 그때 소방서를 바라봤다. 소방서가 화재진압 외에 119 구조대 창설로 시스템에 변화를 주니까 4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지하철은 수송을 담당하기 위해 생긴 조직이다. 속도도 빨라지고 자동화도 이루어지는 등 인력감축 요인이 생겼다. 그랬을 때 인력감축요인을 반대한다고 해서 인력감축을 안 당할 것인가? 그럴 것이 아니라 시대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서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지 않느냐? 지하철 수송업무 하나만 할 게 아니라 택배나 탁아·육아, 올라운드 티켓 등 지하철을 타면서 도시민들이 부딪치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사회서비스로 확장하면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구상에는 지하철 운행시간 연장도 포함돼 있었다. 꼭 지하철이 12시에 끊겨야 하느냐? 새벽 2시에 한 대, 3시에 한 대 등으로 이어주면 국민생활도 돕고, 운행시간이 1시간 늘어난 만큼 인력도 500명이 필요하다. 국민의 편익도 늘리면서 고용도 창출할 수 있는 효율적인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지금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 하지만 그럴 경우 노동조건 후퇴를 많이 걱정한다.
"당시 지하철 운행시간을 연장한다고 했더니 조합원들이 거의 다 반대했다. 왜 반대했느냐? 노동조건이 악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근원적으로 작동돼온 불신과 피해의식의 발로다. 오히려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법적 노동시간은 줄어든다. 우리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노동조건 후퇴를 걱정하는데 그것은 기우이거나 한쪽 변화의 변화를 너무 가볍게 본 결과다. 노동운동 억압으로 인한 불신이 표출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87년체제를 넘어섰다. 이는 그 이전에는 독재적, 비민주적, 폭력적이었지만, 지금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는 걸 뜻한다. 이것의 긍정적 측면과 부족한 측면을 동시에 파악해서 이걸 사회나 기업 운영원리에 반영해야 바람직한 운동으로 나갈 수 있다. 그것은 무시하고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면서 신자유주의다, 하고 규정해버리면 87년 테제의 의미는 없다. 체육관 선거와 직선제는 엄청 다르다. 총칼로 쿠데타로 집권하는 것과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것은 엄청 다르다."
"빌 게이츠는 노동자인가? 자본가인가?"
-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과 서울노동조합협의회 의장 시절을 후회한 적 있나?
"그 당시에 내가 발딛고 서 있었던 공간이 지하철 노조였다. 노조의 단결권이 필요했던 시간과 공간 속에 내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노조운동은) 당연히 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 88년 최초의 지하철 파업도 불가피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또다시 그런 시대가 온다면 또 파업했을 것이다. 그때 파업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의 대립적 노사관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엔 (자본과 권력이) 노동을 억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노동자들은 전투적, 대립적 노동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화와 타협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당시에는 (대립적) 노동운동이 역사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하나의 운동이었다. 하지만 87년을 지나면서 불충분하지만 (제도 등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립적이고 파업일변도의 노사관계는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 과거에는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었다가 이제는 '기업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 아닌가?
"누가 주인이냐? 노동이 주인이면 프롤레타리아독재이고, 자본이 주인이면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은 노동과 자본 말고도 계급적으로 다양한 계층이 존재한다. 빌 게이츠가 자본가인가, 노동자인가?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87년 상황에서 했던 것이다. 그때 노동자는 주인인데도 그 주인이 가져야 할 권리 즉 투표나 노조결성 권리 등이 없어 그것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누가 주인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는 노동자가 자아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의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그 생산성의 증대가 노동자의 생활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중요하다. 즉 공동번영이 중요한 것이지 누가 주인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꽃이 주식회사인데 재벌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 종업원 지주제도 자꾸 실시되고 있지 않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이 맹아형태로 가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도 대립적 사고 속에서 누가 주인을 할 거냐를 생각할 게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회사와 국가, 가정이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로 화제를 바꿔야 한다."
- 과거에 꿈꾸었던 세상(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은 이제 포기한 것인가?
"아니다.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87년에 싸웠다. 다만 조건이 변해서 이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실질적 내용을 채우는 게 과제다. 현재 노동자의 양극화가 엄청 심각하다. 일하면서 행복을 찾을 수 있기 위해서는 안정적 일자리가 필요하다. 양극화로 주눅들지 않도록 하는 게 (지금의) 내 꿈이다. 절망하는 세상, 희망 없이 사는 세상은 (내 꿈이) 아니다. 떳떳하게 일하면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국가운영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게 아니라면 내가 정치를 할 의미가 없다."
- 배 의원이 꿈꾸는 '새로운 노동운동'이란 무엇인가?
"사회공존적 노사관계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과거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벗어나 사회 공존적 노사관계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코프라티즘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지만 유럽과 영미에서 그 정의가 달라서 그것만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 '사회공존적 노사관계'의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사물을 대립주의로 보는 게 아니고 협력적 관계, 네트워크로 보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니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과거의) 대립적 시각이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옛날처럼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주고 뺏는 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목표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내용을 채우는 게 필요하다. 이것이 기존 운동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이다.
옛날에는 노동자가 단결하고 투쟁력을 극대화할 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은 단결과 투쟁력을 배가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도처에 깔려 있다. 과학기술 발전, 상품의 국제적 이동, 자본의 이동 등등…. 단결력과 투쟁력은 스스로 고립시킬 수 있고, 자본 및 국가와 함께 공멸할 수 있다. 노동자는 그럴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개발해서 자본의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그 속에서 자아실현할 수 있는 조건의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노조위원장이 욕심 낼 자리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