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앞오마이뉴스 권우성
1983년뿐만 아니라 1990년에도 삼성생명은 자산재평가를 했다. 이번에는 재평가 이익 전부를 꿀꺽하지 못했다. 그 중 30%만 주주 몫으로 자본전입하고, 나머지 70%는 계약자에게 돌려주도록 재무부가 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70%를 다 나누어주지 않았다. 30%에 해당하는 878억원은 아직도 자본잉여금 항목에 버젓이 남아 있다.(교보생명은 1989년에 자산재평가를 했고, 그 이익 중 30%인 664억원이 내부유보액으로 남아 있다.)
이 내부유보액은 결손보전에 사용될 수 있고, 또 지급여력비율(은행의 BIS비율에 해당한다)을 산정하는데도 포함되었다. 자본과 비슷한 기능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는 내부유보액에 해당하는 만큼 신주를 공익재단에 배정하여 과거 계약자의 기여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만 그렇게 주장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1999년 공청회에서 나동민 위원장도 그렇게 주장했다. 확인해보라.
그런데 이번 상장자문위의 '최종안'은 내부유보액의 자본적 성격을 완전히 부정했다. 나아가 부채임에도, 원금만 돌려주면 될 뿐 이자는 한 푼도 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가 막힌다. 남의 돈을 가져다 자본처럼 이용하고서, 이제는 부채라며 그것도 원금만 돌려주겠단다.
상장자문위의 논거는 이렇다. 미국의 생보사들도 유배당 계약자 몫을 자본계정의 미할당잉여금 항목에 계상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맞다. 계약자 몫을 자본계정에다 두느냐 부채계정에다 두느냐는 회계기준이 돈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생보사 회계기준은 계약자 몫을 원래부터 자본계정에 두었지만, 우리나라는 부채계정(계약자배당준비금, 계약자이익배당준비금, 계약자배당안정화준비금 등)에 두었다. 오직 내부유보액만 자본계정에다 둔 것이다. 왜? 계약자에게 돌려주기 싫어서…. 그런데 이제 와서 원금만 돌려주겠다고?
[문제점③] 과거 배당의 적정성 여부
이번 상장자문위 '최종안'의 핵심이 여기다. 일반 국민은 물론 국회의원들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산할당모형이라는 분석방법을 통해 과거 계약자에 대한 배당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외국 유명 용역기관의 '검증'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외국 용역기관의 검토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보면(상장자문위가 제공한 국문번역본은 의도적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오역이 여럿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영문원본을 읽어보기를 권고한다), 비록 완고한 표현이나마 상장자문위 분석의 문제점을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돈 받고 쓴 용역보고서가 이 정도로 표현했다면, 이건 낙제점이다.
우선, 자산할당모형은 장기투자자산의 미실현 이익까지를 포괄하여 분석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임을 이 용역보고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상장자문위가 과거 배당의 적정성 여부를 분석(Case 1)할 때 사용한 자료에는 미실현 이익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국내 생보사는 장기투자자산의 핵심인 부동산과 계열사 주식을 매각한 적이 없다. 따라서 배당의 적정성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배당가능 이익 자체가 과소평가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상장자문위는 회사설립(삼성생명의 경우 1957년)부터 2005년 말까지의 자료를 한꺼번에 '뭉개서' 사용했다. 그런데 1980년 3500억원 수준이던 삼성생명의 자산은 지금 100조원이 되었다. 30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따라서 1957년부터 2005년까지의 자료를 몽땅 뭉개서 분석하면, 국제수준의 이익배분기준이 적용된 외환위기 이후 최근의 자료가 전체 분석결과를 결정해버리게 된다. 이러면 과거 배당이 부족했다는 결론이 나올 리가 없다.
나동민 위원장은 이 분석결과를 두고 노벨 경제학상 감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내가 학술저널의 심사위원이라면, 이런 논문은 당장 '거부감(reject)'이다.
역사 앞에서 겸손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