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10월의 마지막밤엔 노래와 웃음이 있었다
반작가
딸이 고3이다. 자기소개서를 쓰느라 바쁘다. 수시접수가 보름도 안 남았다. 9월 전국모의평가와 수능을 대비하여 공부 또한 게을리 할 수 없다. 딸의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를 봤다.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독서활동, 교과성적,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 각 학년별로 정렬되어 있다. 아이고, 많기도 해라. 참으로 열심히 살았구나 기특함과 짠함이 교차한다. 그러나 이제껏은 준비과정, 입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불안해하는 아이가 안쓰럽다. 나는 어땠더라?
30년이 다 되어 희미해진 기억들에 입김을 불어본다. 걸레로 닦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작은 먼지만 제거한 꼴이다. 시골 읍내의 작은 고등학교였지만, 선생님들의 열성이 대단했다. 학원이 없던 시절이라 모든 게 학교에서 해결되었다. 새벽 5시에 새벽자율학습을 했다. 지각하면 발바닥을 대나무 회초리로 맞았다.
저녁 담당 선생님은 손등을 때리셨다. 도시락을 두 개 싸 갖고 다니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살았다. 이것도 성에 안 찼던지 어느 날 수학 선생님이 나와 친구들을 불렀다. "너희들 합숙하면 어떻겠니?" 방을 하나 얻어서 같이 공부하면 학업에 더 상승효과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신 거다. 선생님께서 책임지고 돌보신다는 말씀에 부모님이 허락하셨다. 4명의 친구들이 함께 했다. 물론 새벽이랑 밤에 학교에 함께 다니니 안 무서워서 좋고 서로 깨워줘 발바닥 안 맞아서 좋았다. 공부는 얼마나 더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냥 재미있었다는 기억만 있다.
어느 날인가! 숙소에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요놈들 자나?"하시며 빵 봉지를 들이미셨다. 졸고 있는 건 아닌지, 방은 괜찮은지 꾀죄죄한 우리 얼굴과 방 주변을 둘러보고 일어나셨다. "저희가 배웅해 드릴게요." 누군 잠꼬대를 하고, 누군 이를 간다는 둥 이런 저런 우스갯소리를 하며 걸었다. 그만 들어가라는 선생님 말씀에 돌아서려다가 "오늘이 10월 마지막 밤이예요"라고 한 친구가 말했다. 그리고는 노래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 이용 <잊혀진 계절>
그 늦은 밤, 가로등 밑에서 노래를 불렀다. 조용필의 <친구여>가 나오자 점차 분위기가 고조되어 합창으로 변했다. 조심조심 부르던 노래가 점점 커져 외딴 골목을 가득 채우고 하늘로 퍼져가자 공부로 지쳐있던 마음들이 노래로 위로받고 함께 하는 사람들로 힘을 얻었다.
지금 입시는 그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렵고 복잡하다. 그러나 수험생이 느끼는 고단함과 불안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리라. 우리 딸을 비롯한 고3들이 이런 와중에도 위로와 힘을 얻어 끝까지 파이팅하고, 30년 후에 이 때를 추억하며 미소 짓게 되길 바래본다. 얘들아! 공부하다 지치면 좋아하는 노래 하나 듣고 가렴. 아니, 따라 부르면 더 좋고 혹시 춤까지 되면 춤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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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셋과 선생님 한 분... 이 노래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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