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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1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그의 선거 공약대로 '학력신장방안'을 내놨다.
ⓒ 교육희망 안옥수
현재 우리나라 초중등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탈인가, 적게 해서 탈인가? 사교육이라도 받아서 학력을 더 높이려고 하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공부에 무관심한 게 문제인가? 7·80년대와 선진국에 견줘 학력이 더 떨어졌는가, 아니면 더 높아졌는가?

교육계에선 인성을 파괴할 정도로 치달은 초중등 학생들의 '과잉 학습', '학력제일주의'가 문제라는 게 일반 분석이다. 학습 스트레스로 한 해 자살하는 학생만 250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생뚱맞은 학력신장방안

'교사 답안지 대필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서울시교육청이 1월 31일 '학력저하가 심각하다'면서 학력신장방안을 내놨다. 공정택 교육감은 이날 오후 초등학교 교장연수에서 "지금 학력신장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그거 '선생' 아니라고 본다"면서 "어떤 역풍이 불더라도 학력신장을 서울시교육청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의욕을 내보였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서울지역 초등학생들은 학교별 일제고사를 봐야 한다. 96년 유인종 전 교육감이 '새물결운동'을 벌이면서 없앤 일제고사가 다시 부활된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자율 판단에 따라 시험형태 결정'이란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이미 서울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한 날 한 시에 보는 일제고사 일정까지 2005년 학교교육계획서에 올려놓은 상태다.

서울시교육청은 또 본청과 11개 지역 교육청 별로 학력신장위원회를 만드는 한편, 중고교 30개를 뽑아 학력신장 중점학교를 지정하고 한 해 2천만원을 지원한다. 학력신장에 기여한 교사에겐 승진과 해외유학 등 다양한 동기부여방안도 마련한다는 게 서울시교육청의 복안이다. 이렇게 가다간 때 아닌 '학력신장'이란 물결이 서울교육 전체를 휘어잡을 판이다.

하지만 교육계는 왜 이 시기에 학력신장이 서울시교육청 최우선 과제로 잡혀야 하는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기자회견과 초등 교장연수에서 '학생들의 학력저하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그 까닭을 밝히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어설픈 '학력저하'론

그럼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학력저하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들이 내세운 유일한 근거는 공 교육감이 이날 교장연수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2003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학생 절반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초학력 미달학생도 늘어난다. 중고생 10%가 기초학력 미달이다. …서울이 계속 뒤처지고 있다. 시도간 학급평가에서 왜 수도서울이 자꾸 처지나."

▲ 1월 31일 오후 서울 이화여고 류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초등교장연수에 참석한 교장들.
ⓒ 교육희망 안옥수
그가 이날 밝힌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조선>과 <동아> 등 일부 신문이 올해 1월 중순 보도한 내용에 바탕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보도내용은 '평가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엉뚱한 보도'라는 지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도 1일, "학업성취도 결과를 학력저하의 근거로 볼 수 없으며 이 결과를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 학생이 외국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기초학력 이상 성취학생 비율은 기존 보도와 달리 초등학교 98%, 중학교 95%, 고등학교 89%나 된다는 것이다.

서울시 학생들의 성적이 뒤처진다?

이날 공교육감이 강연에서 던진 '시도간 학교급별 평가에서 수도서울이 자꾸 뒤처지고 있다'는 발언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교육청 스스로 보도자료에서 학력의 개념이 단순 지식뿐만이 아니라 '창의력과 성취동기 등 정의적 능력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밝혀 놓고도 '평가 성적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날 공 교육감의 발언은 지난해 9월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보도자료를 내어 세상을 들끊게 한 '2001년 국가수준 교육 성취도 평가' 결과를 염두에 놓고 한 말이라고 1일 서울시교육청은 밝혔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저학력 학생비중은 10% 정도로 대구(3.7%)·대전(3.8%)보다도 성적이 낮은 중간 수준이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공교육감이 리드할 위치에 있는 서울 고등학생들의 학업성적이 중간 정도가 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 이 의원이 내놓은 분석 내용 또한 신뢰성 논란이 일었다. 이 당시 교육부는 "국가 수준 교육성취도 평가는 표집 목적과 기술상 학력을 따지기 위해 설계한 것이 전연 아니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절반 학생 수업 못 따라 간다'로 오도된 학업성취 결과
미국보다 미달 학생은 1/3, 우수학생은 3배나 많아


그럼 왜 학생 절반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보도에 이어 공 교육감의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일까.

우리나라 학업성취도평가는 미국의 NAEP(국가학업성취도평가)처럼 교육과정 목표 달성정도를 따지기 위해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4단계로 구분하여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보통학력 이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는 자의적 잣대를 갖고 보도를 했다는 게 교육부의 판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해당학년에서 이뤄야 할 최소필수학력을 '기초학력'으로 보고 기초학력 이상이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으로 본다"면서 "언론이 왜 '보통학력' 이상이 되어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초중고 각각 2%, 5%, 11% 수준. 이 수치는 세계적으로 무척 낮은 수준이다.

교육부가 분석한 'NAEP 과목별 성취수준 비율 결과'란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제8학년(우리나라 중3) 대상 2003년 수학 평가 결과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32%나 되는 반면 우수학력 수준은 5%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 중3은 수학과에서 기초학력 미달 수준이 11.5%, 우수학력 수준이 13.5%였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1/3로 적은 반면 우수학생은 2.7배나 많은 셈이다.

비슷한 형태의 시험을 본 한해 전 우리나라 2002학업성취도평가에 견줘서도 기초학력수준 미달학생이 초등학교는 0.86%, 고등학교는 1.24%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중학교는 0.26% 늘었다.

물론 초중고로 가면서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이런 추세 또한 미국과 다른 나라의 그것에 비해 무척 적은 편이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교과내용이 많아지면서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늘고 있는 것은 일반 추세라는 얘기다.

일제고사 사라진 96년 초4생들 '세계 최상위' 학력

지난해 국제비교평가 결과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세계 최상위권이란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분석한 피사(PISA) 2003결과만 봐도 2002년 시험 볼 당시 고1학생들은 문제해결력 세계 1등, 읽기 2등, 수학 3등, 과학 4등이었다. 종합순위로 따지면 전체 40개국 가운데 2등이었다.

상위권 5%의 학생도 문제해결력과 수학에서 3등, 과학 2등, 읽기 7등일 정도로 상위권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이 '하향평등화되었다'는 일부 언론의 분석이 '자학 교육관'에 바탕하고 있으며, 오히려 상향 평등화된 사실을 정확히 뒷받침한 바 있다.

그런데 이 피사 시험을 본 우리 학생들이 바로 이른바 초등학교 때 일제고사를 보지 않은 '새물결운동 세대'였다. 96년 일제고사가 폐지될 당시 이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공 교육감식 일제고사가 없었기 때문에 특기적성교육과 토론학습을 받을 수 있었던 초등학생들이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서울시교육청의 학력신장 '올인'엔 그 근거가 없다. '왜?'란 물음이 빠져 있다는 얘기다. 지난 해 취임한 공 교육감의 공약 말고, 도대체 어떤 절박한 근거가 있을까.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학력저하'란 근거는 왜곡된 일부 언론의 보도에 바탕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부도 인정하고 있듯 '왜?'란 물음이 왜곡된 학력신장방안이란 말이다.

▲ 교육부에서 밝힌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와 미국의 NAEP 자료.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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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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