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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사가들은 지금 이 시기를 길고 긴 반동의 터널로 들어가는 초입으로 기록할 것인가?' 지난 5.31 지방선거 직후 열린 한 토론회에서 진보학자가 던진 질문입니다. 이렇듯 진보민주진영 곳곳에서 허탈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진보민주진영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따갑게 느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가 넘쳐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은 여전한 데, 보수진영에서 던진 '개혁피로증'이라는 반론은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있습니다. 우리시대, 민주주의와 진보의 희망은 있는 것일까요. <오마이뉴스>는 진보민주진영의 고민과 전망, 새로운 사회의 대안에 대한 담론을 모으기 위해 심층 기획 글을 내보냅니다. 다음은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보내온 글입니다. <편집자주>
▲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 루크 스카이워커.

'희망'이라는 단어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묵직할 수도 있고, 또 아주 가벼울 수도 있다. 내가 접했던 가장 '희망스러운' 표현은 아무래도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의 부제인 '새로운 희망(A New Hope)'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1977년,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땅콩장수 출신이라고 소개되던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였던 시절이고, 언제나 TV에서는 굳건한 우리들의 '아버지'였던 박정희가 나라를 지키던 시절이다.

과연 나에게도 스타워즈의 첫 에피소드인 4편이 '새로운 희망'이었을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년 5월에 마지막 편이 종결을 지으면서, 나도 그 희망을 따라서 "포스가 그대와 함께 있기를" 혹은 "I'm your Father!"와 같은 대사들을 줄줄 외우면서 살았던 스타워즈 세대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미국이나 유럽의 열광적인 스타워즈 맹신자들처럼 열심히 스타워즈를 보면서 새로운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화영화 <심슨>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I'm your Father" 혹은 마크 마이어스의 <오스틴 파워 2>에 나오는 다스베이더에 대한 오마쥬를 보면 괜히 가슴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 루크 스카이워커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영화 <스타워즈>의 묘미는 영웅이 된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의 신화를 먼저 보고, 어떻게 그와 판박이 같은 아버지인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린 시절부터 영웅이 되어가는가, 그리고 그가 결국 악의 제국의 섭정자인 '다스베이더'로 변화게 되는가를 비교하면서 생각해보는, 4-5-6편 그리고 1-2-3편의 댓구 구조에 있을 것 같다. 이 중층구조는 두 번째 개봉된,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5편에 해당하는 '제국의 역습'에서 다스베이더가 루크에게 "내가 너의 아버지다"라고 하는 하나의 대사에 농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5편이 상대적으로 흥행이 부진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예술성만큼은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배우들도 이 장면을 찍기 전까지는 이 스토리를 몰랐을 정도로 비밀을 유지했고, 마지막 대본을 받을 때에도 대본이 잘못 되었을 것이라고 의심했을 것이다.

아무리 미국 헐리우드식 전개라고 하더라도 악의 화신 '다스베이더'와 우리의 '새로운 희망' 그리고 전 우주의 마지막 희망인 루크 스카이워커가 부자관계라니…. 게다가 자신이 아버지라고 정체를 밝힌 다스베이더는 가차 없이 아들의 팔을 베어버렸다. 이 비밀을 알기 위해 스타워즈 세대는 5편이 개봉된 1980년부터 물경 25년을 기다리게 되었다. 물론 소설을 통해서 이미 얘기를 알 수 있었지만, 어떻게 다정하고 천진한 어린 소년 아나킨이 다스베이더가 되었는지는 2005년에야 공화국의 마지막 전투를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화산재에 온몸이 망가져 죽어가던 아니킨 스카이워커의 몸에 “죽음의 투구”가 씌워지던 순간, 나는 눈물이 찔끔 났고, 이미 익숙한 “다스베이터의 테마곡”을 들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2. 2006년, 현재...

세상에는 우연 같지만 우연 같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다. 거의 30년이라는 한 세대만큼을 끌어오던 스타워즈 에피소드가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베이더로 탄생하고, 공화국은 제국으로 변해가고, 다스베이더는 악의 황제의 충실한 오른팔이 된, 그 마지막 음산한 장면이 공개된 것은 2005년 5월의 일이다. 현실이 영화와 많이 다를까?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희망돼지'라는 이름을 가진 노란 형광색을 하고 속의 동전의 비추어 보이는 조그만 저금통이 하나 있다. 바로 지금의 대통령이던 노무현 후보에게 사람들이 모아준 그 저금통의 이름이 '희망돼지'였다. 2002년 겨울, 나와 같이 어른이 되어도 도통 만화와 만화영화 그리고 SF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또라이'들이 그 희망돼지에 500원짜리 동전을 집어넣으면서 희망을 위해 시린 손을 부여잡고 겨울 거리에 서 있었다.

정말이지…, 비록 열광적이지는 않아도 스타워즈 세대였던 나는 이회창 후보는 다스베이더이고, 노무현은 루크 스카이워커라는 아주 요상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 꿈이 깨어지는데 6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새만금 때문이었다. 그래도 희망돼지의 꿈을 송두리째 버리지는 못하고, 애틋함을 가지고 있었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려보면, 스타워즈 파이널인 에피소드 3이 개봉되고 있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대연정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한 편에서는 그래도 그 속에 뭔가 '고운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사람과 이제 "저 사람에게 희망은 없다"고 얘기하던 두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시계를 반년 앞으로 당기면, 2006년 1월, 노무현의 희망돼지가 '마지막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한미FTA가 우리 앞에 있고, '3차 파병연장'이 논의되고 있고, 또 노무현 사단이 낙하산으로 공기업을 비롯한 각종 자리에 '적재적소 임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총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순진한 나는 노무현에게서 이제 루크 스카이워커의 숨결보다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얼굴에 씌어진 '검은 투구'가 더 많이 느껴지고, 이제 그의 목소리에서 다스베이더의 숨결이 더 느껴진다.

나의 판타지 속에서 나는 지금 스타워즈 에피소드 3과 에피소드 4의 그 중간 어디를 헤매는 셈이다. 아닌가? '강력한 제국'을 외치는 다스베이더와 노무현의 '비전 2030'이 문학적으로는 그리 달라보이지 않고, 다스베이더의 신무기 '데스 스타'와 한미FTA가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아나킨을 루크로 오해했다는 바보 같은 생각 속에서, 자꾸 '도대체 누가 루크 스카이워커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또 하나의 바보 같은 생각이다.

▲ 사진은 지난 2002년 12월 15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당사에서 열린 희망돼지 수거의 날 행사에 참석해 허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호

3. 루크 스카이워커를 찾아 헤매지 말지어다

이제 내 나이 마흔, 스타워즈의 판타지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 아나킨이든 루크든, 시대의 메타포어에 불과하지만, 자꾸 현실의 나는 누가 루크 스카이워커인가를 찾으려고 눈이 간다. 영화 여섯 편에 30년을 행복하게 보냈던 내가 사람들의 말에 혹하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이명박이라고 그러는 사람이 있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이명박은 스타일로 보면 다스베이더보다 오히려 제국의 황제 스타일인데, 난 그런 제국이 아니라 소박한 공화국에서 살고 싶다.

고건이라고 그러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하는 고건은 새만금을 비롯해서 총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 있을 때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했고, 손에 조금도 물을 묻히기 싫어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팔이 잘려나갈 정도로 무모하게 다스베이더에게 덤벼들었는데, 고건은 영 이런 분위기 아니다.

손학규라는 사람도 있다. 택도 없는 소리이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짜 배신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근혜? 나의 해골이 복잡해진다.

기타 등등…. 대통령 중심제에 익숙해진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누가 '우리 시대의 루크 스카이워커'인가 눈을 돌리게 된다. '새로운 희망'이라는 에피소드 4의 제목이 여전히 나에게는 저주인 셈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사회 구조에서는 누구든 루크 스카이워커 혹은 포청천 아니면 '박정희'임을 자처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다스베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

너무 평범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야말로 '내 안의 다스베이더'인 셈이다. 민주주의 한다고 잘난 척하고, 토론하겠다고 큰 소리 치다가, 결국 "답은 한미FTA이다"라고 변해버린 속내를 드러낸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고, 내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4. 스타워즈의 경제학

영화 <스타워즈>는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 우주방위계획의 가장 든든한 보증자가 되고, 이로 인해서 결국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게 된다. 레이건은 국회 연설에서 수차례에 걸쳐 말했다.

"포스가 그대와 함께 있기를…."

경제적으로 영화 <스타워즈>는 레이건의 군비 경쟁과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사실은 이보다는 복잡한 경제적 은유를 가지고 있다. 제다이의 기사들은 아뜰리에와 워크숍을 통한 도제 시스템을 상징하고, 스타워즈 에피스도 1과 2에 나온 로봇군단은 소품종 다량생산에 의한 포디즘 체계를, 그리고 결국 도제 집단이 제다이의 기사들과 로봇군단을 물리치고 우주의 패권을 가지게 되는 복제인간 '클론의 부대'는 동일하지만 개별 군인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포스트 포디즘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돌아온 제다이 기사'에 의하여 우주 제국을 무너뜨리고 다시 공화정으로 복귀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희망, 그리고 포스트 포디즘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포스트 포디즘 그 뒤에 무엇이 있는가? 그걸 지금 아는 사람에게는 노벨경제학상이 찬란하게 수여될 것이다.

5. 노무현 경제의 복기

▲ 2004년 8월 당시 정부와 여당의 주요 경제정책라인. 재경부 장관 출신의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왼쪽에서 세번째), 이헌재 경제부총리(가운데), 김광림 재경부차관, 행자부 장관 출신의 이근식 열린우리당 의원. 모두 관료 출신들이다.
ⓒ 권우성

노무현 대통령이 넘겨받은 시기는 특히 제2차 국제분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한국의 포디즘이 사실상 종료하고 탈포드주의로 전환되는 길을 미처 찾지 못하고, 박정희식 중공업의 대공장 시절과 IT로 대변되는 '신경제' 사이에서 방황하던 시기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천의 경제특구와 기업도시에 걸쳐 있던 한 발은 대규모 작업장 시절로 복귀에 대한 노스탈지아이며, 삼성 사장을 데리고 왔던 과학정책은 IT와 황우석 사태의 BT에 또 한 발을 딛고 있었다. 생산양식의 관점으로는 그야말로 포디즘과 탈포디즘을 동시에 추구했고, 결국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정책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돈 되는 것은 뭐든지 다 하려고 했던 셈이다.

이런 동시다발형 '2만불 정책'이 실패한 것은 이미 포디즘 단계를 지난 한국에 80년대식의 대규모 작업장이 파주의 LG 필립스처럼 제한적인 조건 외에는 일반화되기 어려워 외국 기업은 그런 식으로 우리나라에는 오지 않고, 그렇다고 허리를 받쳐주는 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술네트워크에 대한 동반없이 한 번에 기술 점핑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또 다른 제약조건이 있었다. 경제의 눈으로만 보면 돈 되는 것은 뭐든지 해보려고 시도했던 한 대통령의 실패의 비극이 노무현 집권 3년간 눈 앞에 펼쳐졌다.

감히 내가 노무현이 '슬픈 다스베이더'로 변질될 수밖에 없던 슬픈 패착 두 가지를 집으라고 한다면 이헌재의 '한국형 뉴딜'과 '비정규직 일반화'의 두 가지를 고를 것 같다.

노무현은 철저하게 이헌재류에게 속았고, 건설부양으로 집권 초기에 이미 부동산에서 토지로 유동자본이 옮겨갈 조건이 형성된 상황에서 노무현 시기에 건전한 투자와 생산적 시도라는 것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후에 아무리 보유세를 새롭게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노무현 대통령에 건설자본과 투기자본에 발을 깊게 담그고 있고, 일반 서민까지 투기붐이 '재테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야말로 케인즈가 살아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건전한 생산자본'으로 투기자본화 되어버린 국내 자본을 되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이런 거시경제적 틀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철저하게 노동유연성을 통한 생산성 향상의 과거 도식을 너무 믿었다. 미안하지만 탈포드주의 시대의 '국부적 혁신'은 생산공정 내에서 벌어지는 숙련공의 직접 혁신을 통해서 벌어지는데, 이미 생산 노하우의 속살을 비정규직화된 아웃 소싱으로 내어버린,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 예견된 상태에서 의도하지 않은 기술혁신이나 조업혁신이 발생할 것이라는 정부의 '혁신=개혁'이라는 순진한 믿음은 애당초 작동할 수 없다.

신경제의 한 축일 뿐인 IT에서의 노동유연성과 혁신의 관계가 제조업에서의 혁신의 관계가 같을 수가 없으며, 이미 우리나라 경제에서 숙련노동자는 노후화되어가고 있고, 젊은 노동력은 비정규직으로 몰려 소위 ‘내재화된 인적자본’으로서의 숙련노동자로 갈 길이 아예 박탈당한 상태이다.

이 두 가지 잘못 내딛은 발은 한국 사회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영어? 도대체 한국의 단위조업에서의 혁신과 경영합리화와 영어가 무슨 직접적 상관이 있겠는가? 말로만 지식경영이라고 했지, 사실은 줄 서기 경쟁에 불과한 80%의 대학진학률에 얽매인 소비자들은 사교육에 주택비 부담으로 현실적으로 구매력을 박탈당한 빈털털이가 된 셈이다.

숙련노동자로 가는 길을 박탈당한 20대는 더더욱 '자력구제'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애타게 사회적 일자리와 복지지원에 매달리게 되지만, 그들에게는 어떻게 표현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과 알바, 그리고 찔끔 뽑아주는 공무원과 교사의 몇 자리만이 소망처럼 남아있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성장률을 원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회에 펼쳐진 것은 지옥과도 같은 빈곤의 악순환에 불과했고,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불렀던 한국 경제의 야릇한 선순환마저 지난 3년간 완전히 사라졌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이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신체건강한 20대 청년들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걍팍해지고, 오갈 데 없는 40대의 마음이 허해진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에 아무 계산과 대책 없이 "개방만이 살 길이다"라고 대통령이 한미FTA라는 칼을 뽑아들은 게 2006년의 현실이다. '지옥행 특급열차'가 경적을 울리고, 1년만 이 기차를 몰고 "나는 은퇴하면 시골로 귀농하겠다"는 우리의 대통령은, 아무리 봐도 제국의 다스베이더 같아만 보인다. 정말이지, 요즘은 대통령이 무섭고, 앞으로 닥쳐올 우리나라의 미래가 무섭다.

6. 그래도 희망은!

▲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택강제철거를 앞두고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와 한미FTA협상 저지를 위한 전국행진단이 지난 9월 8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새로운 루크 스카이워커를 눈을 아무리 크게 뜨고 찾고, 또 "뭉치면 산다!"는 마음으로 "민주세력 대동단결!"을 외치고 있는 한 희망은 없다. 문제는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마 노무현 대통령이 흉악하게 마음을 먹었거나 변화를 전혀 싫어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왔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베이더로 변한 가장 큰 동기는 슬프게도 사랑 때문이다. 그것까지 너무 비슷하다. 그러나 경제는 미안하지만 선의와 진정성 혹은 개혁성향이나 기타 등등 그런 이상한 심리적 문제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나는 지금의 20대의 눈으로 경제를 보고, 지금 10대의 눈으로 교육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 지금 과연 무엇을 애타게 바라고 있는가? 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미국형 경제의 모델에서 찾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뒤집으면 답이 나올 수 있다. 국민들 그것도 다음 세대의 국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것들이 대한 해법이 사실상 국민경제가 더 튼튼해지고 강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지금 20대가 안정적인 삶과 소득 그리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숙련공 혹은 현장 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 속에 답이 있을 것 같다.

영어? 대학? 다 웃기는 말이다. 스위스의 대학진학률이 18%이지만 그들은 가장 안정적인 정규직 체계를 가지고 있고, 현실적인 완전고용에 가깝게 경제가 운용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50대 경제관료들을 물리고 지금 당장이라고 20대와 그리고 10대와의 대화를 시작하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형 뉴딜의 원형이라고 사기쳤던 그 진짜 뉴딜의 원래 이름은 '소외된 자들과의 새로운 거래'였고, 농민과 청년의 문제를 그들과 직접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6개월 동안 백악관에서 매일 같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었다.

1년 남짓 남았다고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음 세대와 대화를 시작하면 희망은 그 순간에 움트게 된다. 오류투성이의 말도 되지 않는 '비전 2030'이나 한미FTA는 잠깐 손에 내려놓고 그야말로 20대의 말을 듣기 시작할 때에 희망이 생겨난다. 이건 대선후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운하 판다고 전국을 돌아다니거나 수염 기르고 농민들 사이를 "FTA 필요하다"고 어슬렁거리는 속 보이는 쇼로 희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Young Skywalker, my new hope!" 그는 바로 우리의 다음 세대이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것이 해결될 틀이 시작되는 순간 새로운 희망이 생겨난다. 시대가 반동으로 향한다고? 아니다. 무능하면서도 교활한 사회 원로들의 배신 속에서 청년들이 희생자가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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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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