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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사가들은 지금 이 시기를 길고 긴 반동의 터널로 들어가는 초입으로 기록할 것인가?' 지난 5.31 지방선거 직후 열린 한 토론회에서 진보학자가 던진 질문입니다. 이렇듯 진보민주진영 곳곳에서 허탈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진보민주진영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따갑게 느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가 넘쳐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은 여전한 데, 보수진영에서 던진 '개혁피로증'이라는 반론은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있습니다. 우리시대, 민주주의와 진보의 희망은 있는 것일까요. <오마이뉴스>는 진보민주진영의 고민과 전망, 새로운 사회의 대안에 대한 담론을 모으기 위해 심층 기획 글을 내보냅니다. <편집자주>
▲ 문민정부는 군사정권과 야합한 3당합당에서 시작되었다. 김영삼은 90년 3당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문민정부를 자임했다. 사진은 지난 200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킨 김대중은 구군부의 김종필과 연합했으며 참여정부는 현대 재벌가의 정몽준과 연합하여 집권하였다. 사진은 지난 2003년 4월 22일 청와대에서 만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 청와대 제공

1. 새로움은 창조의 원천

역성혁명의 경로를 방벌과 선위로 규정한 맹자는 하나라 걸왕을 폐하고 은나라를 건국한 탕왕을 방벌의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했다. 걸왕을 축출한 탕왕은 신하들 앞에서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 관한 자신의 구상과 결심을 밝혔다.

탕왕의 고사는 맹자의 진심장편에 "어느날 새로워진다면, 이를 통해서 나날이 새로워지고, 그리하여 더욱더 새로워질 것이다"라는 말로 정리되어 있다. 탕왕은 자신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하여 아침마다 얼굴을 씻는 세숫대야에 아홉 자를 새겨 매일 매일 다짐하고 실천했다(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고대 중국역사에서 은나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반면, 한국현대사는 타율적 해방과 강대국의 개입이라는 검은 먹구름 속에서 우울하게 출발했다.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 적대적인 남북대립과 군사독재, 이로 인한 온갖 악폐는 우울한 출발의 결과였다.

그러나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솟아나는 법. 우리는 가난과 독재의 절망 속에서도 4월혁명, 부마항쟁, 서울의 봄, 광주항쟁, 6월항쟁이라는 고난과 모색의 행군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다.

2. 민주화의 환상에 묻힌 절망의 그림자

그리하여 6월항쟁 이후 90년대와 2000년대의 약 20년은 민주화의 장미빛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환상이 깨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우리는 좁은 시야로 역사의 일면만을 보았다는 자과감에 빠져들었다. 자괴감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70~80년대의 민주화 담론으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확신했지만 90년대 이후의 현실은 우리의 확신에 파열구를 냈다. 민주화로 포장된 현실정치는 반복적으로 국민들을 기만했으며 민주화는 군사독재에서 재벌독재로 변질되었다.

민주화의 상징처럼 간주되었던 역대 민간정부가 도덕성을 상실하고 개혁에 실패한 무능한 정부로 비판받는 사이에 재벌은 6월항쟁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으며, 권력도 없고 군인도 없는 탈권위의 한국에서 재벌공화국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재벌공화국의 등장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균형추를 기울여 민주주의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이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증유의 IMF사태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현대와 LG의 깃발은 세계속에 휘날리고 있으며, 그 바탕 위에서 한국경제는 세계 10위권을 넘보고 있다.

그 결과 현실민주주의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담론은 동력을 상실했고 개혁의 지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혁피로증후군이 압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화와 개혁을 추진한 세력은 무능한 실패자로 낙인찍히면서 수구보수세력이 민주세력을 대체하는 자리바꿈이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은 현대정치사에서 해방정국의 분단으로의 좌절, 4월혁명의 5·16군사쿠데타로의 좌절, 서울의 봄의 5·17군사쿠데타로의 좌절, 6월항쟁의 노태우 집권으로의 좌절에 버금가는 새로운 좌절의 징후로서, 6월항쟁의 생명력의 퇴조에 따른 역사적 반동화를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민간정부와 민주세력의 책임

민간정부는 이 상황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군사정권 이후 최초의 민간정부인 문민정부는 군사정권과 야합한 3당합당에서 시작되었다. 김영삼은 90년 3당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문민정부를 자임했다.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킨 김대중은 구군부의 김종필과 연합했으며 참여정부는 현대 재벌가의 정몽준과 연합하여 집권하였다. 결국, 모든 민간정부가 군사정권 혹은 재벌에 의존하여 탄생한 셈이다.

개혁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 때문에 역대 민간정부는 출범 시점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집권과정의 문제점은 국정운영에서 드러났고, 예외없이 정책방향의 혼선과 개혁의 좌절로 나타났다. 개혁대상인 수구보수세력과 결탁하여 개혁을 추진한 정권의 모순성이 드러난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잘못된 수단을 선택한 결과 잘못된 수단이 목적 실현 자체를 방해한 것이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말기에 나타난 권력의 난맥상이나 문민정부가 자초한 IMF사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참여정부에서 나타난 대통령 탄핵 이후의 취약한 국정운영은 민간정부의 정당성은 물론 민주화의 정당성까지 훼손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역대 민간정부는 국정운영 과정에서 국민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함으로써 지지도 하락을 자초하고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단절시켜버렸다.

민주세력 또한 이 상황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민주세력은 민간정부를 구성한 기성정치세력과의 관계 설정에서 오류를 범했다. 6월항쟁 이후 민주세력의 상층부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독자적 전망을 포기하고 기성정치세력이 주도하는 현실정치에 '초대받은 손님'으로 참여했다.

민주세력이 독자적 전망을 포기하고 지역주의적인 보수정치구조에 수동적으로 편입된 결과는 매우 혹독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는 양김 이후의 중장기적 발전 전망을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민주세력이 양김정치의 지역주의와 부패정치에 오염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정부의 실패와 양김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민주세력이 감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민주세력에 대한 비판과 저평가의 원인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물론, 정치적 참여파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 정치적 참여를 선택하지 않은 민주세력은 노동운동, 시민운동, 지역운동으로 분화 발전했다. 그러나 이들이 '초대받은 정치'와 구별되는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제시한 것은 아니며, 정치 이외의 영역에서 사회적 대안세력으로 굳건하게 뿌리내린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노동운동의 조합주의적 성격이나 시민운동과 지역운동의 한계는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중장기적 발전 전망을 상실한 사회운동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이다.

4. "빛이 없는 어둠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희망

▲ 8일 좋은정책포럼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민주정부의 위기와 진보 개혁 세력의 진로'에 관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의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는 이러한 현실을 자양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민주화는 퇴색되었고 진보의 방향은 실종되었다는 자포자기가 어렵지 않게 거론되는 상황이다. 수구정권의 등장이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자조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희망의 구호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것은 '장독을 깨뜨리고 모기를 잡는' 희망일 뿐이다.

민간정부에 실망하고, 민간정부에 참여한 민주세력에게 실망하고, 운동세력의 고답적인 논리에 실망한 상태에서 10년만의 권토중래를 노리는 수구세력의 반복되는 나팔소리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진보는커녕 민주화와 개혁조차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민주세력 자체가 새로운 전망을 제시할 집단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근거는 존재한다. 그것은 역설적 근거이다. 역사발전을 내적동인과 외적요인의 합작품이라고 할 때 희망 역시 여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정치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결여한 무능한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판단, 부패한 수구세력에게 권력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 천민적 재벌공화국이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는 판단이 희망의 출발점이다.

무능한 정치를 유능한 정치로 바꾸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신념,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부패한 수구세력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신념, 재벌공화국을 대체할 새로운 민주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신념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념을 실천할 사회적 역량을 조직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희망이 시작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두 가지 수정이 필요하다. 가장 근본적인 수정은 권력과 정치권에 대한 의존성을 탈피하는 것이다. 국정운영은 정부가 전담하고 정치는 정당이 전담한다는 편협한 정치인식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전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시민사회가 권력과 정치의 원천이라는 인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또 하나의 수정은 시민의식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시민들이 보수화되었다는 인식, 개혁을 기피한다는 인식, 경제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인식은 원인과 결과를 균형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인과론적 오류의 산물이다. 시민의식의 변화가 원인이 아니라 잘못된 정치가 원인이며 시민의식은 그 결과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5. 희망의 공론화 필요

그렇다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대체로 다음 네 가지의 사회적 조건을 배경으로 희망의 순례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구조화된 사회적 양극화와 한미FTA 등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사회적 모순구조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양극화와 한미FTA는 과거 독재에 항거했던 민주연합을 승계하는 새로운 사회연합의 형성을 예고하는 조건으로서, 이 전선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사회적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지역의 등장과 풀뿌리운동의 활성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도시화와 중앙집중화로 인한 지역의 소외와 빈곤에서 지역의 재발견이 시작되었다. 풀뿌리운동은 90년대의 시민운동을 사회적으로 확산할 차세대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앙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지역의 등장과 시민운동에 대한 풀뿌리운동의 활성화가 새로운 거점이 될 것이다.

셋째, 6월항쟁 이후 확장된 시민사회와 그 주역의 존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역들은 새로운 사회를 지향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이들은 지역주의와 반공주의에 의존하는 수구세력의 부패함과 무능함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간정부의 한계를 극복할 의지와 정책을 가지고 있다.

넷째, 기성정치세력의 구조적 한계가 희망의 토양이 되고 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참담한 실패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시사하는 예고편이다. 또한 참여정부가 '마지막 민간정부'이기를 갈망하면서도 대안의 제시없이 민간정부의 실패에 의존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수구세력에게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비관하는 민주적 비관주의와 수구세력의 집권을 용인하는 정치적 패배주의를 넘어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운동적 관점에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하는 인식의 대전환을 시작하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희망의 근거를 사회적 담론투쟁을 통해 공론화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한 사회적 연대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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