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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2차 본협상이 10일 시작했다. 정부는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그려 보이고 있다. 반면 각계각층의 한미FTA 저지 목소리는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뒤틀린 것일까. 한미FTA는 꼭 필요한가. 한미FTA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가. 아직 늦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한미FTA, 그 내용과 문제점을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따져본다. 먼저 절차의 문제를 따져본다. <편집자주>
▲ 12일 오후 '한미FTA 저지 제2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네거리 진출을 시도하다 경찰에 저지당하자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 속에서 대한민국이 길을 잃고 있다. 지난 12일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2차 협상도 진행되고 있다. 효과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분분하게 말이 많다. 국민들로서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국가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커다란 일이라는데, 정작 2차협상이 진행되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임은 모두, 잘못된 내용과 시기 그리고 방법을 들고 나온 정부에 있다.

한미FTA를 논하면서 쇄국 대 개방으로 논쟁을 끌고가는 이들이 있다. 제2의 쇄국은 경제를 망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미 WTO 체제 내에 들어 있는 우리 경제에 '개방'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문제는 그 시기와 내용과 방법에 있을 뿐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이다. 휘몰아치는 개방의 파고에서 자국의 경제와 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모색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민은 나날이 국경이 허물어지는 이 시기에 과연 우리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가를 알고 싶다. 그리고 개방화 시대, 자국의 산업보호와 국민보호를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고 싶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FTA를 들고 나왔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미국과의 FTA. 국민들은 겁이 난다. 정부는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과연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본 적 없는 국민에게 무엇으로 안심하라는 말인가?

FTA의 효과에 대해 납득할 만한 자료를 내놓아라

도대체 이 협상을 왜 시작했는가? 나라 팔아 먹으려는 매국노가 있겠느냐, 정부를 믿으라고 대통령이 이야기했지만, FTA 관련 자료들은 믿기 힘든 것들이 태반이다.

대외경제연구원의 연구보고서는 몇 달만에 파급효과가 부풀려져(GDP 1.99%에서 7.75% 증대) 논란을 불러왔다. 얼마 전 권영길 의원(민주노동당)은 오히려 GDP가 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아 국민들은 더욱 혼란스럽다.

뿐만 아니라 현 관세율의 차이(한국 평균 40%, 미국 평균 10%, 자동차의 경우 한국 8%, 미국 2.5%)를 고려할 때, 수출 증대의 실익을 기대하기 쉽지 않고 대미무역수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서비스, 농업, 제조업 등 부문별 영향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영업자와 근로소득자 등 계층별로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매우 미흡하다.

안그래도 두려운 국민은 앞이 깜깜할 뿐이다. 이처럼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에 분노를 느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모두 단순한 반미감정으로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비난하는 일부 정치세력들의 발언 앞에서는 더욱 할 말을 잃는다.

그렇게 자신있는 협상이라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협상이라면 이미 수백 권의 보고서가 나왔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방위적인 효과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면서 설득해야 한다. 자신들이 나라를 팔아 먹지 않는다고 공언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부 측 입장일 뿐이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부만 믿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정말 그렇게 자신있다면, 지금이라도 수많은 경제전문가와 인력들을 모집해 국민을 설득할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세 치 혀만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자, 직무유기이다.

지금 국민 앞에 놓여진 보고서는 멕시코를 비롯해 미국과 자유무역을 한 나라들이 처한 참담한 현실뿐이다.

비공개, 비공개, 비공개... 뭘로 어떻게 판단하나

▲ 한미FTA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12일 장대비를 맞으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청와대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협정문을 3년간 비공개로 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FTA가 우리 사회에 미칠 파급 효과에 대한 합리적 예측조차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17개 분야의 협상이 말해주듯 분야별 협상내용에 따라 한미FTA가 미치는 파급효과는 부문별로 매우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정부가 협상문 자체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협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한미FTA가 미칠 파급효과를 합리적으로 예측,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밀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인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뭘 알아야 입장을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정부가 시한이 없다고 국민들을 몰아치고, 한국의 국제 신인도가 떨어진다고 협박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일시에 찬성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90%가 넘는 국민이 협상속도를 늦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결과는 국민들이 진정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국민은 판단을 내릴 시기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협상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무조건 쇄국이라고 하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국민을 매도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국회가 정해놓은 시한에 쫓기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하여 우리가 당당히 요구하고, 지킬 것에 대하여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국익과 실익에 반한 결과가 예상될 경우 당당히 협상 중단을 선언할 수도 있어야 한다.

통상협상은 어디까지나 사업상 논의에 불과하지 정치적 고려대상이 아니다. '한미FTA가 중단되면 국제신인도에 타격을 받을 것이다'라는 불안감을 조장하는 상투적인 발상을 이제는 접어야 할 때이다. 협상 타결도, 협상의 보류나 중단도 모두 협상의 한 과정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제논리에 의거해 결정되어야 한다.

FTA 협상에서 협상을 중단했거나 협상이 결렬된 사례는 이미 무수히 많다. 한국-칠레 협상은 3차례 협상 후 사과, 배 등의 개방조건에 한국이 이의를 제기하여 1년 가까이 협상이 중단되다가 칠레의 양보로 타결되었다. 한미BIT(투자협정) 협상은 과도한 미국의 선결조건 요구로 추진 1년만에 중단되었으며, 한일FTA는 협상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농업개방 양보를 지나치게 요구한다고 일본 측이 중단을 선언했다. 스위스,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남미 35개국이 미국과의 FTA 협상 도중에 협상을 중단했다.

FTA 협상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고려가 우선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양국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국민적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FTA 체결은 고려될 수 없다.

국회는 무얼하고 있나?

국회는 통상절차법을 제정하고 이해관계 조정과 국익을 준수할 본연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 헌법 60조 1항에는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정신에 따르면 한미FTA 추진과정에서 행정부를 견제 및 감독하여 국익을 준수하는 것은 국회 본연의 권한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FTA 추진과정에서 국회의 역할은 전무한 상태이다.

통상교섭의 전권을 행사한 정부가 졸속적으로 한미FTA 추진을 선언하여 국민적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협상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더해지고 있다. 경실련은 이미 협상 시작부터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 감독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국익을 준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선거와 월드컵 속에서 국회는 조용하기만 했다.

이제 부터라도 국회는 조속히 통상절차법을 제정하고 정파를 초월하여 초당적 한미FTA 특위를 구성하여 통상절차에 대해 주도면밀한 검토를 해야 한다. 통상절차법 제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통상절차법이 제정되면 이번 협상에 대한 국회의 권한이 강화된다.

FTA 관련 연구자료와 협상내용이 국회에 제출 보고될 수 있고, 한편 한미FTA 협정 서명 전 국회비준 동의권을 행사하도록 만들 수 있다. 협상에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참여할 여지가 훨씬 많아지는 것이다. 실무협상권을 제외한 모든 사항에 대해 국회가 본연의 감시 및 견제 역할을 수행하고 행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대폭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통상절차법 제정 이전이라도 정파를 초월하여 초당적 한미FTA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경실련은 국회가 이미 제출된 통상절차법을 헌법 취지에 부합하는 실질적 내용으로 제정하는 한편, 정파를 초월하여 한미FTA 특위를 조속히 구성하여 협상 전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론분열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한미FTA에서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감독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국익을 준수하는 것은 국회에 주어진 고유한 권한이자 국민에 대한 의무이다.

협상내용과 마지노선 공개하라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협상내용이 비밀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방위적인 경제 영향력을 미치는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FTA는 국가의 군사적 기밀과 관련된 협상이 아니다. 여러나라가 모여서 하는 협상도 아니다. 여러나라가 모여 경제협상을 하는 경우에는 서로 서로의 패를 감추고 협상의 전략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미국과는 섬유를 개방하고 싶고, 중국과는 하고 싶지 않은 경우에 미국과 한국이 나눈 협상 내용은 중국과의 협상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비밀로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양자간의 협상에서 이런 식의 비밀협상이 '전략'이 될 필요는 없다(정부가 협상 내용을 국민에게 전혀 알리고 싶지 않은 이상).

따라서 협상 내용의 공개는 필수적이다. 협상상대국인 미국은 무역촉진법에 따라 행정부는 의회에 통상협상과 관련하여 반드시 '시기마다', '긴밀히', '협의'해야 하며 또 그 내용을 '완전히 통보' 하도록 해 의회의 접근권이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노선이 어디인가를 정부는 명확히 밝혀야 한다. 마지노선을 공표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마지노선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의지를 무기로 내세워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방화 시대 한미FTA는 언젠가 우리가 부딪혀야 할 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밀실행정, 부실한 준비, 견제와 감독이 없는 상황에서의 FTA는 누가봐도 명백한 무리수이다. 경실련은 정부가 이제라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협상의 보류도 협상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경실련 경제정책국 간사입니다. 미디어다음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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