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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Zeitgeist(시대정신)' 포럼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장 마리 콜롬바니 르몽드 사장(오른쪽 끝) 조너선 지트레인 하바드대 교수(왼쪽 끝), 메타 블로그 사이트인 식스 어파트의 수석 부사장 르 러 뮤어와 토론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홍은택

또다시 런던에 갔다. 구글이 22~23일 이틀 동안 주최한 'Zeitgeist(시대정신)'이라는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3월 2일 런던에서 열린 온라인발행인협회(OPA)의 세계포럼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내가 초청받은 것은 아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를 초청했는데 나도 가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따라갔다. 주최 측에서는 성가셨겠지만 오 대표와 함께 끼워 넣으니까 할 수 없이 부른 것 같다.

오 대표에게는 분명한 역할이 있다. 시민저널리즘에 관한 주제 발표. 그럼 나는? 시킨 것도 아닌데 오래 다져와 이제는 본능처럼 굳어진 처세술로 자연 수행비서의 자세를 취했다.

그림자 수행? 동행?

21일 낮 인천공항에서 만날 때도 미리 가서 발권 카운트에서 줄을 서 있다가 오 대표가 시간 맞춰 오면 바로 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비행기표를 보니 내 표가 창가였지만 오 대표가 창가에 앉아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같이 가는 11시간 동안에도 오 대표가 먼저 물어보면 답하지만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는, 그림자와 같은 수행이 시작됐다. 오 대표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혹시 오 대표가 먼저 깨어났다가 물어볼 말이라도 있을지 모르니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자더라도 혹시 오 대표가 화장실 갈 때 긴 내 발이 걸릴까봐 무릎을 굽히고 잤다(이 정도 자세면 이건희 회장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오 대표는 하염없이 잔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가 18일 사내 게시판에 띄운 주간일정은 이랬다.

18일(목) 저녁-도쿄
19일(금) 저녁-서울
20일(토) 오마이블로거 당그니 출판기념식
21일부터 25일 런던 출장 (홍은택 국장과 동행)


'동행?' 고마운 말이다. 예전, 박철언씨가 3당합당으로 한솥밥을 먹게 된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모스크바에 갔을 때 수행이 아니라 동행이었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치환해보면 그때 김영삼 대표의 위치에 있는 오 대표가 '동행'이라고 한다. 위에 있는 자의 여유다.

근데 동행으로 여기는 듯도 했다. 딱히 뭐 시키는 게 없다. 차츰 그가 한 마디 하면 두세 마디 하고 있는 내가 느껴진다. 그냥 내가 알아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좀 비굴하게 보여도 비굴한 게 삐딱해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 그게 한국 직장인들에게는 처세의 제일 원칙이다. 나는 오 대표를 잘 모른다. 같은 회사를 다니지만 너무 바빠서 차분히 얘기할 기회가 없다. 모를수록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게 낫다.

구글은 왜 오마이뉴스를 불렀나

▲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보수당의 젊은 당수 데이비드 카메론이 22일 23일 구글이 이틀간 주최한 'Zeitgeist(시대정신)' 포럼의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홍은택
이번 여행에서는 런던 시내는 구경도 못했다. 21일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주최 측에서 보낸 차를 타고 30분을 달려 교외에 있는 더 그로브(The Grove) 호텔로 간 뒤, 23일까지 사흘 동안 줄창 호텔에 갇혀 있다가 왔다. 오 대표는 "마치 인질로 잡혀있다 나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일반에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주제 발표자들과 토론자 외에 참석자 350여명 전원이 구글의 초대장이 있어야 참석할 수 있었다. 미디어와 인터넷, 텔레콤, 광고, 심지어 제조업에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고 있는 기업들의 간부들만이 참석했다.

이런 이너서클과 전혀 관계가 없는 <오마이뉴스> 대표를 초대한 이유는 구글이라는 기업의 성격과 관련 있다. 구글은 가장 비상업적인 방법으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기업이다. 조만간 마이크로소프트를 추월할 것라는 성급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용자들에게 가장 사용하기 편리한 검색엔진을 만들어놓는 게 그들의 우선순위였다.

검색엔진은 좋지만 수익모델이 없어서 자본금을 까먹고 있을 때 남들이 배너 광고를 붙이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사용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고 상업적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했다. 후에 빌 그로스가 고투닷컴(Goto.com)에서 선보인 검색광고의 수익모델을 차용함으로써 비약적인 성장을 했지만, 여전히 상업적으로 비치는 것은 꺼린다.

구글의 미션은 '사악한 짓을 하지 말자(Don’t be evil)'다. 사실 이 말을 가장 잘 지키려면 아무짓도 안 하면 된다. 하지만 돈을 벌면서도 나쁜 짓을 안 하려니 조금 부대끼는 것도 같다. 중국에 진출할 때 당국의 검열을 수용하면서 구글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것도 스스로 설정한 엄격한 기준 탓이기도 하다.

구글은 또 미 연방정부보다 또 어떤 국제기구보다 개인적인 정보를 가장 많이 수집하고 있는 빅 브라더다. 사용자들이 검색창에 쳐넣는 하루 수억 개의 검색어들은 우리 시대의 문화인류학적 기록이다. 구글이 이 정보를 손에 쥐고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글은 그런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관리하지 않을 수 없다.

구글은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참여로 성장한 기업이다. <오마이뉴스>가 주도하고 있는 시민저널리즘은 사용자들의 참여를 인터넷을 통해 증폭시킴으로써 사회적 변혁까지 초래하고 있는 개념이라서 구글의 주목을 받은 것 같다.

회의가 열린 더 그로브는 300에이커의 장원에 18세기 지어진 대저택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호텔로 세계적 수준의 골프장이 있다. 올해 9월 월드 골프 챔피언십대회가 이곳에서 열리는데 타이거 우즈도 와서 드라이버를 휘두를 예정이라고 한다. 회의 내내 우리에게 푸른 초원은 액자 속에 있는 그림과 다를 바 없었다. 내내 '빡세게' 회의만 했다.

회의장에는 역시 세상에 근심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젊고 잘생기고 능력도 있어 보이는 사람들로 우글우글했다. 인도를 제외하고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온 사람은 오 대표와 나 말고 중국 여자 한 명 밖에 없다. 발표자들 중에서는 오 대표가 유일하다.

<로이터>와 <르몽드>, 시민저널리즘을 말하다

개막 연설을 요즘 영국에서 토니 블레어 이후의 차세대 지도자로 뜨고 있는 40세의 젊은 정치인, 데이비드 카메론 보수당 당수가 했다. 그는 국내총생산(GDP)보다 GWB(General Well-being)을 강조했다. 보수 정치인이 물질적인 성장보다는 삶의 질을 내세워 신선하게 들렸다. 그는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추구(a desire of capitalism with commitment)'를 방향으로 제시했다.

행복은 돈을 많이 버는 데서가 아니라 친구와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에서 찾아온다고 부연하면서 중도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는 보수당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토니 블레어 노동당 당수가 중도노선인 제3의 길로 집권한 데 대한 보수당 쪽 대항논리 같아 보였다.

이번 포럼은 비보도를 전제로 진행됐는데 카메론 당수의 연설과 구글의 최고경영책임자인 에릭 슈미트,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의 토론만큼은 보도가 허용됐다. 수행비서 외에 내가 스스로 설정한 임무는 사진사다. 니콘 D70 카메라를 꺼내 몇 장 찍고 나서 '나 열심히 하고 있죠?' 하는 표정으로 옆에 있는 오 대표를 쳐다보니, 자리에 일어서 있고 '신병기'를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형 비디오 카메라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분' 있다더니…. 김이 새서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보니 오 대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다. 이틀째인 23일 시민저널리즘을 의제로 한 전체회의에서 그는 톰 글루서 <로이터> 사장, 장 마리 콜롬바니 <르몽드> 사장과 나란히 주제발표를 했다. 이 순서의 사회자는 옥스포드와 하버드 두 대학에서 동시에 가르치고 있는 조너선 지트레인 교수였다.

지트레인 교수는 글루서 사장에게 "<오마이뉴스>가 경쟁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이 커져서 세계적으로 시민저널리즘을 구현할 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질문이다. <로이터> 통신의 인터넷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글루서 사장은 "세상에는 다양한 뉴스 전달자들이 있기 때문에 공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즈니스모델로서의 성공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기는 이르다"고 답을 유보했다.

높은 저널리즘 기준을 유지하고 있는 <르몽드>의 콜롬바니 사장은 <오마이뉴스>가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다, 그들은 저널리즘을 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어떻게 독자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 하는 점은 인터넷 언론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역시,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이어 오 대표의 차례. 오 대표는 지금까지 해외 언론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세 가지를 핵심적인 질문으로 간추렸다. 첫째,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가 어떻게 한국의 정치적 지형을 바꿀 수 있었는가. 둘째, 시민 기자와 블로거는 어떻게 다른가. 셋째, 팀 오라일리가 제시,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웹 2.0 개념과 <오마이뉴스>는 같은 것인가.

오 대표의 영어가 원어민처럼 유창한 것은 아니다. 나는 셔터를 누르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여러번 이 같은 회의에서 주제발표를 한 바 있는 오 대표는 관록있게 <오마이뉴스>의 역사와 운영 방법에 대한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으로 답변해나갔다.

뜻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은 청중의 호응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항의 시위를 역동적으로 보도한 화면이 나오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 순간 솔직히 좀 가슴이 찡했다. 대한민국 특산품 맞다.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오 대표 답변의 취지는 시민의 참여로 요약된다. 시민의 참여로 사회적 변화가 가능했고, 시민의 집중적인 참여야말로 개별적인 미디어인 블로거와 <오마이뉴스>의 차이를 낳고 있는 기준이라는 것. 웹 2.0은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에 의존하면서 이 콘텐츠를 데이터베이스하는 게 핵심인데,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참여를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웹 2.0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발표와 패널 토론이 끝나자 여러 사람들이 단상으로 몰려와서 오 대표에게 악수를 청했고 패널 토론에서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또박또박 대답하던 오 대표는 표정이 풀어지면서 사람들과 어울렸다. <르몽드>와 <로이터> 사장 모두 함께 협력할 방안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제의했다. '수행'한 보람이 느껴진다.

이번 포럼 전체를 통틀어서도 역시 사용자들의 참여를 어떻게 유도하고 조직화하느냐에 논의가 집중됐다. 그 점에서 <오마이뉴스>가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또다른 두 가지 논점들은 인터넷 플랫폼이 계속 PC로 갈 것인지 아니면 무선 단말기로 대체될 것인지와, 중국과 인도 중 누가 더 센 IT시장과 강국이 될 것인지였다.

포럼에서 다양한 주제로 한국과 삼성, LG, SKT와 같은 한국 기업이름이 자주 언급된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견제를 받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한국에서 귀가 간지러웠을 것이다.

합숙 훈련하듯 포럼에 참석하면서 여러 것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소득은 <오마이뉴스>에 대해 넘쳐나는 해외의 관심을 시민저널리즘을 세계화하는데 유용하게 전환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조너던 로젠버그 구글 수석 부사장과의 면담을 갖고 구글과의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를 끝냈더니 공항으로 출발할 시간이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오 대표가 "풀밭을 한 번 밟아보고 가죠"라고 해서 20분간 골프코스 주위를 산책한 뒤 귀국길에 올랐다.

깜박 자고 일어났더니

▲ 더 그로브 전경. 런던 교외에 있는 더 그로브 호텔은 300 에이커의 장원에 세워진 18세기 대저택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여기에 딸린 골프장에서는 9월에 월드 골드 챔피언십 대회가 열린다.
ⓒ 오마이뉴스 홍은택
다시 그가 창가에 앉았다. 내가 특별히 한 일은 없지만 긴장이 풀어지면서 기내에서 주는 와인을 연거푸 마셨더니 잠이 쏟아진다. '수행비서'의 임무도 자연스럽게 망각하고 먼저 잠이 들어버렸다. 깨어보니 그가 없다. 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고 있었다. 기내 좌석에 여유가 있어 세 자리가 빈 곳으로 옮겨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 대표는 내가 복도쪽을 차단하고 앉아서 내내 갑갑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행'인데 비켜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니면 아무 의식 없이 그냥 편한 대로 행동하고 있는데 나만 의식과잉인지도 모른다. 진실이 뭔지 물어볼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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