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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가슴에 뭔가 집혀. 이렇게 가슴을 만지면, 가슴을 만지면 집히는 디, 이것이 많이 아프네 젊은이.”

가슴에 만져진다는 것이 무엇일까? 깊디깊은 주름진 손으로 할아버지는 당신의 옷 깃 사이로 손을 넣고는 가슴을 움켜쥐며 아프다 하셨다. 한 평생 가난을 업보처럼 살아 온 당신이었지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느니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한 많은 세월을 뒤로 하고 눈을 감으면 그만이지만, 이 가난을 자식에게, 그리고 손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지금 당신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마음이 아프다 하셨다.

일흔 여덟 김성산 할아버지. 하루 세 끼 죽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아버지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내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먹고 살 길을 찾아 전북 무주에서 군산으로 이사를 왔다. 가난한 살림에 학교 근처는 가 보지도 못했다. 배운 것도 없고 타지에 와서 농사 부쳐 먹을 땅 한 평 없었으니 김 할아버지가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게 품팔이 뿐이었다.

ⓒ 장희용

하루 품삯 쌀 2되 지게 품팔이로 생계, 하지만 화재로 모든 것 잃어

“그 때 하루 품삯이 쌀 2되였어. 애들 넷에 할머니하고 여섯 식구가 하루 먹기도 부족했지. 그나마 비가 오거나 날이 궂으면 그조차 못했어. 굶었지 뭐. 그래도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없어서 죽어라고 일 했어. 그런데 한 22년쯤 됐지 아마, 방 1칸 달린 초가집이 화재로 다 타버렸어. 모든 걸 다 잃었지.”

“뼈가 으스러지도록 지게를 지고 또 졌는디, 새끼들 봐서 차마 죽을 수 없어 여기 할멈하고 참 오지게 일 했는디, 하루아침에 그리 되고 나니 하늘이 원망스럽더먼. 그래도 어쩌겄어 새끼들 굶겨 죽일 수는 없잖여. 그래서 또 일혔지. 그런데 이게 무슨 업보인지 이번에 또 불이 나서 집이 다 타 버렸어. 젊은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을 겪는지 모르겄네.”

가난이 죄라면 죄겠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려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 김 할아버지, 처음 화재가 난 후 살 곳을 잃고 막막했던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 또 다시 가난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수소문 끝에 모 문중의 사당을 관리해주는 대가로 문중에서 제공한 집에서 거주할 수 있었고, 아들 김용석(43)씨와 소작(남의 땅을 대신 농사짓는 것)을 하면서 일흔 여덟의 나이에도 그 힘든 농사일을 지금까지 계속해야만 했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뼈가 으스러지게 일만 했지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가난은 무슨 질긴 인연이 있는지 할아버지를 계속 따라다녔다. 군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구타와 기합을 받은 탓에 허리를 못 쓰다 싶을 정도였던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수록 그 통증이 심해졌지만 살아야겠기에 아프다는 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병원 문턱 한번 넘어보지 못하고 그저 허리 숙여 소작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 장희용

▲ 할아버지는 말 하는 내내 빚 독촉장이 들어 있던 봉투를 손에서 쥐었다 폈다 하셨다. 할아버지는 할 수 있다면 속 시원히 저것을 찢어버리고 싶었으리라.
ⓒ 장희용

두 번째 화재와 감당 못 할 빚, 그리고 가압류

하지만 하늘은 또 다시 할아버지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을 주었다. 지난 1월 2일 또 다시 살고 있던 집에 화재가 나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가난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단순히 가난의 시절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그냥 집만 잃었어도 그나마 내 가슴이 덜 허겄어. 빚이 수천만원이 넘는구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도시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땅을 내가 소작 지었지. 없는 사람이 할 게 남의 소작 짓는 거밖에 뭐 있겄어. 그래서 소작을 많이 했지. 닥치는 대로 했어.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기려면 많이 짓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소작하는 게 많아지다 보니 도저히 사람 힘으로는 안 되더구먼. 그래서 할 수 없이 비싼 농기계를 구입했지. 지금 와서는 빚을 내서 농기계 구입한 것이 후회되지만 그 당시에는 먹고 살려는 생각에 빚을 내서라도 기계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그 때만 해도 열심히 일하면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남의 농사를 짓다 보니 남는 게 별반 있어야지. 소출의 절반은 땅 주인 주고, 갈수록 농약 값이니 비료니 농사짓는데 돈은 더 많이 들어가고, 쌀값은 떨어지고, 밭도 남의 밭농사를 지었는디 죽어라 지으면 채소 값이 뚝뚝 떨어지고. 농사라는 게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겨. 그러다보니 이렇게 몹쓸 빚만 남았구먼.”

할아버지의 말처럼 다 살려고 한 짓인데, 이상하게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여기에 사회 생활하는 데 다소 부족함이 있는 아들이 연이어 교통사고를 내면서 적지 않은 돈이 또한 빚으로 남았다. 이렇게 쌓인 빚이 6500만원이 넘는다. 조금씩 갚아나갔지만 한 해 이자를 내기에도 부족했으니 10년 동안 빚은 자연히 더 늘어났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빚도 빚이지만 당장 더 큰 걱정은 빚을 갚지 않을 경우 유일한 재산인 농기계가 가압류 된다는 것이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12일까지 빚을 갚으라는, 빚을 갚지 않을 경우 재산 등을 일체 압류하겠다는 최후 독촉장이 와 있었다. 집이 불에 타 버린 지금, 그리고 남의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재산은 농기계인데, 이 농기계를 압류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아예 농사조차 짓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더욱이 아들인 김용석씨의 경우 사회적응력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다소 떨어져 다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그나마 할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다행인 상황이다 보니 빚으로 인해 기계가 압류 조치되고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될 경우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생계 자체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

노부부가 더 아픈 건 ‘정신지체ㆍ발달장애’ 손자, 돈 없어 치료조차 못하는 것

할아버지는 막막하기만한 현실 때문인지 말문을 채 잇지 못한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화재가 어떻게 났냐고 물어보았다. 돌아 온 답변은 손자가 불을 냈다는 것이다. 의아해 하자 할아버지는 “내가 그것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네”하신다. 당신이 지은 죄가 하늘까지 닿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며 또 다시 눈시울을 붉히신다.

할아버지 손자인 광민이는 여느 평범한 아이들과는 달리 정신지체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정신지체를 앓는 광민이가 온전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불을 낸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가슴이 더 아프다 하신 거였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살림에 제대로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하는 손자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조차 불을 내는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태어난 손자가 가슴에 더 큰 응어리로 자리한 것이다. 그런 손자를 원수 같은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조차 못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픈 것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며, 죄다 당신의 업보라며 당신을 자책하는 할아버지. 손자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이 흐르지 않는 눈을 훔치신다. 일흔 여덟, 그 기나긴 가난과 모진 세월 속에 가슴으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말랐으면 이제는 눈물조차 나오질 않을까! 하지만 할아버지는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얼마나 아플까? 가난이 아프고, 그 가난이 쉼 없이 당신을 목 조르고, 평범하지 못한 아들 때문에 아프고, 또 평범하지 못한 손자 때문에 아프고.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할아버지로서 이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 다 짊어지고 살아온 세월이, 그리고 지금 오갈 데 없는 현실과 남은 건 빚뿐인 오늘이 어찌 아프지 않다 하겠는가? 가난의 대물림, 그리고 평범하지 못한 자식과 손자들의 모습 앞에 일흔 여덟 할아버지의 마른 눈물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필리핀 엄마 코밀랑씨 “광민이에게, 그리고 우리 집에 희망 있겠죠?”

▲ 필리핀이 고향인 코밀랑 레베카니노씨. 아들 광민이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얼굴에 눈시울이 불거진다.
ⓒ 장희용
할아버지의 말씀 중간 중간에 “아버님 힘내세요.” “아버님 너무 걱정 마세요”하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잃지 않던 광민이 어머니가 광민이 이야기가 나오자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얼굴이 금세 어두워진다. 이런 며느리를 할아버지는 ‘착한 며느리’라고 하신다.

코밀랑 레베카니노씨(35). 광민이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광민이 아빠인 김용석씨와 결혼해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 코밀랑씨는 광민이가 지금이라도 체계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많이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그렇게 해 주지 못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광민이한테 미안하다고 한다.

광민이는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지났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어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받기가 어려운 상태다.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려면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을 감당할 수가 없다.

“당장 살 집도, 먹을 쌀도 없는데 광민이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지금 정상 아이들과 장애 아이들이 함께 지내는 열린터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 이것도 열린터 어린이집 원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가능한 일이에요. 지금은 이게 광민이한테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전부예요. 어떻게든 집을 마련하고 빚도 갚고 나면 그 때는 우리 광민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씩씩하게 클 수 있도록 해 줘야죠. 우리 광민이 교육 받으면 많이 괜찮아질 거라고 했어요. 그런 기대와 희망은 품고 살지만... 우리 식구와 그리고 광민이한테 그런 날이 올까요?”

자식에 대한 아픔 때문일까, 코밀랑씨는 못내 고개를 들지 못한다. 우리 식구와 광민이한테 그런 날이 올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산다며 웃음 짓는 코밀랑씨,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웃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많이 힘드냐는, 고향에 가고 싶지 않느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픈 자식 치료 한번 제대로 못해주는 부모 마음, 10년이 넘게 고향 한 번 가보지 못하는 그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김용석씨(사진 우)와 군산나운복지관 배인재 부장. 현재 군산나운종합복지관과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임시 거처와 생필품 등을 지원 받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임시적이다. 현 거처는 현재 고아들을 위한 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다소 시일을 연장할 수 있겠지만) 한 달 후에는 집을 비워줘야 한다.
ⓒ 장희용

“아내 고향도 보내 주고 싶고 광민이도 치료 받게 해 주고 싶어요”

머나먼 타국에서 자신만을 믿고 한국으로 시집 온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그 또한 자식에 대한 아픔 때문일까, 아내의 울음에 남편인 김용석씨가 농사일에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손만 만지면서 아내와 아들 광민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어떻게든 아내 고향에 한 번 가려고 했는데, 이번 일(화재)로 못 갔어요. 꼭 한번 데려가야 하는 데, 아내가 말은 안하지만 고향 많이 가고 싶을 거예요. 그런대도 늘 빚에 허덕이고 이런 일까지 생겼으니 엄두를 내지 못하네요. 가야죠. 언젠가는 아내 고향에도 가고, 광민이도 저처럼 못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치료받게 하고 가르쳐야죠.”

그리고는 그는 도와달라고 했다. 일흔 여덟 내 아버지와 3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이제는 일어서서 걷기도 힘든 내 어머니, 그리고 내 아내, 아픈 내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지금 이곳(임시 거처)에서 나가면 잘 곳도 없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농사밖에 모르는데, 농기계를 압류하면 무엇을 해서 먹고 사냐면서 그는 도와달라고 했다.

자신은 배우지도 못했고 남들처럼 상황판단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며, 그건 자신도 알고 있다며, 이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다며, 그래서 이렇게 무조건 도와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그는 도와달라고 했다.

순서가 엇갈리는 말, 그리고 다소 어수룩한 말투에 그가 분명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그의 말투였을 뿐, 그의 마음만은 결코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그런 사람들을 속이고, 또한 이용하고 시련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일어서려는 데 그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던 할머니가 “평생 가난하게 살았어도 지금처럼 막막한 적이 없었슈. 도와주유”하신다. 할아버지보다 더 주름이 많다는 것을 그때서야 보았다. 나오지 않는 마른 눈물을 훔치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눈시울이 자꾸만 생각난다. 뒤돌아서서 오는데 아주 살짝 눈물 비슷한 것이 눈가에 스친다. 이런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고 하나 보다.

나는 내 눈물을 손으로 닦아 낼 수 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눈물은 결코 당신들 스스로 닦아 낼 수 없는 눈물이다. 그래서 나는 글 마지막을 이렇게 쓴다.

‘누가 이 노부부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 장희용

덧붙이는 글 | 할아버지는 죽기 생전에 아픈 손자가 치료받는 것을 보고 성하지 못한 자식이 살 수 있는 집, 그리고 조금이나마 빚이라도 덜어주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가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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