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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16일 밤, 1급 뇌병변 장애인인 여섯 살 손자를 위해 맞춤 휠체어를 주문한 60대 할아버지가 휠체어 값 42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사연을 듣고 집을 찾았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1동에 살고 있는 남덕희(65) 할아버지 댁. 들어서자마자 휠체어에 누워 있는 올해 여섯 살 희수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는 수술한 흔적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지난 2003년 뇌병변으로 왼쪽 뇌를 제거한 희수는 오른쪽 다리와 팔을 허공에 대고 끊임없이 내저었다. 반신불수 장애아였다.

▲ 앞으로 10년, 20년(?) 언제까지 누워지내야할지 기약못하는 올해 여섯살 희수. 그런데 희수가 타고 있는 휠체어 가격이 420만원이라고 합니다. 겉보기엔 단순한 유모차 비슷하지만 독일서 특수 맞춤 제작된 이 휠체어에는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과 기술이 담겨 있었습니다.
ⓒ 윤태
남 할아버지는 뇌병변 장애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 지내야만 하는 손자 희수를 위해 지난 9월 의사의 보장구 처방전대로 한 업체에 특수 제작된 수동 맞춤 휠체어를 주문했다. 가격이 무척 비싸긴 했지만 손자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기에 할아버지는 고심 끝에 휠체어를 주문했다.

특히 이 휠체어는 독일 현지 공장에서 제작된 것으로 장애로 등허리가 상하좌우로 굽어 있는 희수의 몸을 잡을 수 있도록 특수 제작돼 있으며 희수가 앞으로 17세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폭과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등 기능성이 매우 뛰어난 제품. 실제로 만져본 희수의 등허리는 굴곡이 있을 정도로 심하게 휘어져 있었다.

국민기초수급생활대상자로 그동안 건강보험에서 보장구 등의 지원을 받아 오던 할아버지는 이 휠체어 값도 정부에서 지원이 나올 것으로 알고 신청을 했고 급한 대로 돈을 빌려 휠체어를 구입했다. 정부에서 지원이 나오면 바로 갚겠다고 한 것.

그러나 알고 보니 이 휠체어는 장애인 의료 보상 품목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희수 몸에 꼭 맞게 제작된 휠체어라 도로 무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일반 전동 휠체어의 경우 290만 원짜리도 건강보험에서 전액 보상받을 수 있지만 특수 제작된 희수의 휠체어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남 할아버지는 설명했다. 게다가 몸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전동휠체어는 무료로 준다고 해도 무용지물이었던 것.

5년째 희수를 혼자서 돌보다시피하고 있는 할머니(60)는 이렇게 말했다.

"이 휠체어 없을 때는 제가 앉혀서 밥 먹였어요. 그런데 자꾸 누워버리니까 밥을 먹일 수가 없더라구요. 일으켜 세워서 다시 먹이고… 이렇게 3년을 하니까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어요."

그렇다고 누워서 먹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반신마비 상태는 팔 다리뿐 아니라 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음식물을 밀어 넣어줘도 빠르게 반응을 하지 못하니 100ml 우유 먹이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할머니는 토로했다.

▲ 희수를 뉘일 때 사용했던 보장구. 만져보니 말랑말랑 한게 비닐같기도 하고 가죽같기도 합니다. 단순한 이 제품 가격도 58만원이나 한다고 합니다.
ⓒ 윤태
비단 반신불수 희수를 돌보는 어려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남 할아버지 부부는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희수 엄마 아빠는 5년 전 이혼과 동시에 지금은 연락마저 끊겨 생사 확인도 안 된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연락이 되면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가 성치 않은 아이를 돌보고 있겠느냐며 더 이상 아들과 며느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했다.

"희수 형(희우)도 올 겨울 지나면 중학교에 들어가는데 걱정입니다. 지금은 급식이니 뭐니 해서 대부분 무료로 나오지만 내년부터는 어떡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현재 할아버지는 국민기초수급생활대상자로 월 50만 정도의 보조금을 받으며 월세 3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희수 치료비 때문에 방세가 밀리면서 보증금도 다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여차하면 길거리로 나가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게다가 지난 96년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이후에 할아버지는 일절 경제 활동을 못하고 있고 몸이 허약한 할머니는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손자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한다.

"허리가 이렇다 보니, 어디 경비도 안 써 주더라구요. 생활이 너무 어렵다 보니 도둑질하는 재주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기 저기 안 알아본 데가 없어요. 그런데 아무 데도 도움 받을 데가 없더라구요."

도둑질까지 언급하며 하소연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시청에 다니며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소연했지만 돌아오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더러 "할아버지 사정은 딱한데, 그렇다고 제 돈 드려서 도와드릴 순 없는 일이잖아요"하며 안타까워하는 공무원도 있었다고.

나를 더욱 안타깝게 한 건 성치 않은 손자에 대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외길 사랑이었다. 2003년에 처음으로 희수가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졌을 때 한 대학병원에서 희수를 포기하라고 했다고 한다. 퇴원하면 생명 연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꺼져가는 생명을 그렇게 저버릴 수 없었다.

"얼마나 막막하던지 그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요. 병원에서 그러는데 아이에게 정주지 말고 마음 단단하게 먹으라고 하더라구요."

그해 희수는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의 도움으로 15시간에 달하는 뇌수술을 받고 왼쪽 뇌의 대부분을 제거했다. 이 때문에 오른쪽 몸은 완전 마비가 됐다. 또 이 병 때문에 뇌에 물이 차는 뇌수막염으로 늘 긴장을 해야 했다. 대변도 일주일에 한 번 관장으로 해결해야 하거나 아랫배를 살살 문질러 변을 내려 보낸 후 손으로 직접 빼줘야 하는 상황이다.

노부부는 병원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서 희수를 장애인 시설에 보낼 것을 여러 차례 권유받았다.

"시설에 보내려고 여러 군데 재활원, 단체 등을 찾아다녔지요. 그런데 시설 좋은 곳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기다려야 하더군요. 들어가도 문제입니다. 희수 같은 경우 끊임없이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시설에 보내면 그게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시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 장애인을 돌보는데, 아무래도 가족만큼 잘 돌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이번 사연을 제보한 부천시장애인복지관 허수진 복지사는 전화 인터뷰에서 "시설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대기하는 장애인은 너무 많아서 10년은 예사"라며 "희수처럼 중증 장애아동 같은 경우 가족은 힘들지만 시설에 보내지 않는 게 차라리 본인한테는 잘 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바람은 희수가 스스로 숟가락이라도 들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 것이란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인생 뭐 바랄 게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자립까지는 아니어도 밥은 스스로 먹을 수 있어야 어디 가든 살아남을 게 아니냐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일주일에 여섯 번 빠짐없이 재활치료를 다닌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어깨가 축 늘어져 보였다.

▲ 가족사진인데도 가족들의 얼굴엔 웃음이 없습니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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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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