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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건 너무 창피하다
솔직히 이 건 너무 창피하다 ⓒ 홍어닷컴
홍어를 보고 자라고 홍어를 먹고 자라고 홍어를 갖고 놀았다. 우린 어렸을 적 '방패연'과 '홍어연'을 만들었다. '가오리연'은 만들지 않았다.

전라도 사람들은 대사집에 가서 돼지 작은 것 잡았다고 수군대지 않는다. 음식 여러 가지 장만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 '홍어채'를 얼마나 맛있게 했는가를 두고 수군대고 쑥덕이고 흉까지 본다. 심하면 대놓고 음식 날라오는 사람들을 두고 핀잔까지 준다. 아무 말 없으면 대체로 그건 잘 만든 거다.

'빙초산'(강산성을 띤 식초)을 너무 많이 넣어도 안되고 설탕을 과다 사용해도 말듣기 십상이다. 입안에 가득 차도록 큼지막 하게 두고두고 씹는 맛이 나려면 '오도독 오도독' 하는 뼈를 발라내서는 안된다.

나를 비롯한 홍어 매니아들은 서울에서 먹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추어탕이요, 또 하나는 오늘의 주인공 홍어다. 홍어찜이든, 홍어무침이든,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홍어회든 말이다. 더군다나 홍어탕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절대 먹지 않는다. 홍어는 홍어다워야 먹는다. 홍어 맛을 아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한 때 흑산도 일대는 홍어잡이 배로 넘쳐났다. 그러나 최근 20여년 사이 목포 앞바다에서 홍어를 잡는 사람 숫자가 급격히 줄어 이제는 배 한두 척에 딸린 사람도 서너명에 불과하단다. 1년에 열 마리 잡기도 힘들다는 3년 전 보도도 있었다. 돈 되는 일에 왜 사람들이 없을까? 환경파괴와 남획으로 바다에 더 이상 잡을 홍어가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 어물전에 나가면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지 않은 까닭에 다들 버젓이 '흑산도 홍어'라고 써놓고 팔았던 상인들이 많았다. 이런 눈속임 장사가 거짓이었다는 것이 판명이 난 셈이다. 1년에 10마리도 못 잡는데 어떻게 우리 앞에 흑산도 홍어가 자리잡고 있겠는가?

30년 전 내가 본 흑산도 홍어는 조금 보태서 집채 만 하다. 거무튀튀하고 물을 질질 흘리며 코를 쏟아내는 이 괴물 같은 홍어가 얼마나 큰지 상상해 보라. 실한 장정 한 사람이 지게에 혼자서 지다가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목격한 적이 더러 있다.

100여 kg이나 나가는 홍어 값은 20여년 전에 100만원을 줘도 쉽게 살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한 마리에 3∼4백만원 했다는 얘기가 대사 한번 치르고 나면 동네에 파다하게 돌았던 적도 있다.

너무 잘 발라도 맛 없다니까요
너무 잘 발라도 맛 없다니까요 ⓒ 홍어닷컴
홍어라는 천혜의 음식 자원을 가진 이 지역 사람들은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요즘이야 저 멀리 지구 반대편 칠레산 홍어가 주름잡고 있지만 일제 시대 이전에는 배편이 주요 운송수단이었던 까닭에 80년대 중반 영산강 하구에 둑을 막기 전까지도 이 통로를 이용해 홍어 음식이 주도되고 전파되었다.

홍어는 기온이 온화한 곳이라야 제 맛이 난다. 안동 '간고등어'가 소금을 듬뿍 뿌려 항아리에 넣어 둬 며칠이고 지나면 살짝 맛이 간 듯한 상태가 제일 맛이 있는 것처럼 홍어도 마찬가지다.

안동이 상대적으로 경북 내륙에 있어 산골에서 양반네들이 신선한 생선을 먹을 형편이 못되었다. 차선으로 선택한 현명한 방법이 소금간을 해두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던 때문이다. 두고두고 한 마리 씩 꺼내 먹는 그 맛과 홍어 맛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전라도 지역에서도 동부 산간지역과 전라북도 쪽은 홍어를 그렇게까지 선호하지 않고 환장하며 달려들지 않는다. 단지 호남선 종점인 목포에서 시작하여 나주 영산포를 거쳐 광주 송정리로 이어지는 반경이 홍어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홍어는 너른 평야를 끼고 있는 이 지역의 경제 생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농한기와 시집 장가가는 날에는 별 무리가 없었지만 노인들이 돌아가시는 게 날잡아서 돌아가시기나 하던가? 노인네들은 대체로 봄철이 되던가, 가을을 맞아 급격한 기온 변화가 있을 때 신체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시는 수가 많다.

이 때가 씨 뿌리고 가을걷이 하느라 일년 중 가장 바쁜 철이니 돼지 한 마리 잡아 푹 삶아 듬성듬성 썰어 놓고, 홍어채 만들어 내면 희고 붉은 음식의 색 조화를 주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대사 치르던 집에서 여름철에 평소 먹지 않던 두툼하고 큼지막한 돼지고기를 많이 먹게 되면 체하기 쉬우므로 삭히는데 좋은 새우젓과 시큼한 홍어채가 놓여진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나 만들기도 쉽다. 대체로 혼례를 치를 때는 미리 사다가 막걸리에 재서 항아리에 넣어두고 일주일 남짓을 기다리는 여유를 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을 당했을 때는 신작로가 뚫리진 않고 시골 5일장에 가기 위해 산길을 넘어 왕복 50∼60리를 바지게 지고 넘어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는 갔다오면 가까운 거리라도 대여섯 시간이 족히 걸리니 속전속결로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따라서 이 때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아직 덜 썩고 고열(高熱)이 나는 망웃(퇴비)자리에 비료부대나 항아리에 막걸리를 넣고 급하게 삭히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 서너 시간만 둬도 전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반은 썩은 듯한 암모니아의 역한 냄새가 나며 제 맛을 내니 이 보다 편한 게 있을까 싶다.

홍어가 익는 동안 아낙들은 무채와 미나리만 다듬어 놓고 다른 일을 볼 수 있고 장정 한 사람이 쇠스랑으로 꺼내오면 껍질을 툭 찢어 벗기고 꼬리뼈와 '홍어애'만 잘라내고 쑥쑥 썰어 양념하고 진한 식초만 치면 그냥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같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음식이다.

'골동반'이라 불리는 비빔밥이 궁중음식이라는 한 주장에 나는 별로 찬성하고 싶지 않다. 비빔밥은 김제 평야처럼 너른 들에서 민초들이 농사 일할 때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 오면 널찍한 그릇에 밥을 덜고 이것저것 집어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먹는 농사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참고로 비빔밥에 고추장과 참기름, 계란 후라이를 넣은 것은 지난 세기 말 쯤에나 시작된 도시 사람들에게 팔려고 내놓은 퓨전 요리라 할 수 있다. 전통비빔밥은 전주식 진저리콩나물이 들어 간 것과 안동지역에서 성행하는 '헛제삿밥'이 원조라는 게 정설이다

덧붙이는 글 | 며칠 이내에 홍어탕을 멋지게 한번 끓여서 이 곳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제 아버님도 제가 끓여드리면 잘 드셨습니다. 제 아내도 처음 먹고나서는 홍어탕 먹자고 합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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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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