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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환
섬 일주 후 홍어 한 접시에 전복을 또 먹었다. 술 한 잔 걸치고 혼자서 돌아다녀도 누구하나 시비 거는 사람 없어 좋다. 숙박했던 흑산도 섬 소년 차를 빼앗아 '상라산' 전망대에서 홍도로 떨어지는 해를 찍고 내려왔다. 동행 PD는 이집 저집 식당에서 찍고, 홍어잡이 배까지 가는 배편을 구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니 각자 따로 움직였다.

오늘은 혼자 자는 걸 감수해야 한다. 동숙(同宿)하던 남자가 야간 근무조에 편성돼 어쩔 수 없다. 동행자는 체력의 한계를 느낀 때문인지 맥주 한 잔 마시고 가자는데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학교 선배에게 예의를 차리려고 군말 없이 따라 나선다.

이 섬에 와서 맥주 한 잔 걸치지 않으면 나중 후회가 될 듯 싶어 객기를 부려 두 잔씩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한 메모를 마치고 홍어 카페에 들러 몇 가지 보고를 하고 나니 꽤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 김규환
흑산도 도착 3일 째 아침.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홍어 경매를 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7시 반까지는 부두로 나가봐야 한다. 어제 동시에 7척이 출항했다. 서울과 광주, 목포 등 주요 소비처에서 주문이 쉴 새 없이 들어오지만 며칠간 홍어를 잡지 못해 홍어 맛보려면 나간 고깃배가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 성질 급한 선장 한 분이 50여마리 싣고 일시 귀항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익히 보아왔던 중매인 조합장님의 말에 의하면 필시 오늘 아침에 한 척은 들어온단다.

부시시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수협 앞 경매장으로 나갔다. 이미 중매인들은 각자 번호표가 붙여진 모자를 쓰고 한 손에 작은 칠판을 들고 있다.

ⓒ 김규환
7시 15분쯤 영진호가 들어와 정박했다. 어부들이 상자에 담아 고기를 내린다. 물 청소를 하느라 수협 관계자도 바쁘다. 이른 아침 열댓 명의 관광객들도 이런 흥겨운 풍경을 눈에 담느라 몰려들었다.

ⓒ 김규환
이 때 제일 바쁜 사람은 단연 중매인 조합장 신동온 회장(중매인 13번)이다. 어부들이 날라다 준 홍어를 갈고리로 툭 찍어 크기별로 분류한다. 암컷을 기준으로 제일 큰 1번선 8kg이상은 저울에 달지만 나머지는 신 회장의 눈썰미를 다들 믿는다. 2번선, 3번선, 4번선 까지는 7kg, 6kg, 5kg으로 각각 나눠 같은 무더기에 착착 쌓는다. 수놈과 그 아래치 4kg 이하는 '펄랭이' 취급을 당하여 맨 나중 차례를 기다린다. 10여분만에 분류작업이 끝났다. 이제는 신회장도 단지 중매인 중 한 명일 따름이다.

사회자 격인 축협 직원 경매사는 매번 사람이 바뀐다
사회자 격인 축협 직원 경매사는 매번 사람이 바뀐다 ⓒ 김규환
수협 경매사가 나오자 중매인들이 바짝 긴장한다. 경매사가 가운데 서서 오른손을 저어가며 "엇야~" "엇야~"를 외치면 경매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엇야~ 1번선 한 마리! 16번 58만원" 오늘은 16번이 최고가격을 써냈다.

"엇야~ 2번선 여섯 마리 43만원"
"13번 넷, 18번 둘"
"엇야~ 3번선 35만원, 36만원"

다음 자리로 옮아가

"자, 이거 한 마리"
"27번 7만 6천원"
"엇야~수놈 세 마리 15만 6천원"
"엇야~수놈 세 마리 15만원"
"펄랭이 2마리 7만 5천원"
"3마리 3만 5천원, 29번"
"이거 한 마리 3만원"

1번선 1번치 한마리 가격이 58만원
1번선 1번치 한마리 가격이 58만원 ⓒ 김규환
이렇게 간단한 말과 동작으로 경매가 끝났다. 경매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삽시간에 끝나 받아 적기에도 바쁘고 사진을 연속 찍어야 하므로 얼떨떨하다. 70여 마리가 경매사와 수협에 의해 다 팔려 나갔다. 차에 싣고 손수레에 실어 각자 집으로 가져가 포장을 해야 하니 썰물 빠지듯 돌아간다.

전주에서 오신 관광객 일행은 경매가 끝나자 마자 중매인에게 3kg 짜리 펄랭이를 5만원에 사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에게 대뜸 "이렇게 싸게 살 수도 있네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나눠 먹을랍니다. 꼭 커야 맛인가요. 흑산도 것만 먹어도 기분 좋습니다" 한다.

이 시멘트 바닥이 흑산 섬을 먹여 살리는 돈 바닥이다. 예전부터 그래서 육지 사람들과 섬 사람들은 경제 규모가 달랐다. 장보고가 동아시아를 주름잡았던 이유도 해상을 주물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매인이 몇 분인가 알아 맞춰 보세요.
중매인이 몇 분인가 알아 맞춰 보세요. ⓒ 김규환
신동온 중매인 회장

흑산도 수협 중매인 13번이며 중매인 조합장인 신동온(60세)씨는 29살 때부터 시작하여 중매인 생활이 30년째다. 회장직도 6년째 수행하고 있다.

신 회장은 "수협이 홍어 수급 현황에 따라 수매를 해서 물량 조절 기능만을 수행하면 될 걸 가지고 홍어장사까지 한다"며 못마땅해한다.

011-616-9122 신동온 회장께 문의하면 그날그날 시세와 물량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신 회장은 곧 여러 경매인들과 인터넷 사이트를 같이 준비할 계획이다. / 김규환
중매인도 두 부류로 나뉘는데 5,000만원의 담보 설정에 보증금이 500만원과 연대보증인 2명이 필요한 '지정중매인'과 1,0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자기 보증금 한도까지 구매할 수 있는 '매참중매인'이 있다. 거래대금 결제는 매달 7일이다. 수협도 중매인 중 한 명이라고 보면 된다. 중매인은 경매낙찰 가격에 5%의 수수료를 붙이고 15000원의 택배비를 부담하면 어느 도시고 다음날 도착하게 한다.

한 때는 최고 가격이 82만원까지 갔으나 요즘은 대체로 55만원에서 60만원 선에서 거래되지만 수컷과 4kg 이하 '펄랭이'는 3-5만원 선에 팔린다. 홍어 맛이 떨어지는 4월 중순부터 9월말까지 여름철에는 최고 가격도 25만원 선으로 곤두박질한다.

도시서민이 어떻게 홍어를 접할 수 있을까? 8kg 이상 60만원 가까이 하는 큰 것 한 마리보다 펄랭이나 4번 선 이하 두어 마리를 주문하면 진짜 흑산 홍어를 접할 수 있으니 용기를 내보자. 홍어를 비닐봉지에 싸 수분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여 스티로폼에 얼음을 채워 밀봉을 해서 택배를 하니 신선한 흑산 홍어를 다음날 집에서도 맛볼 수 있다.

즉석에서 한 마리 산 전주분들 맛있게 잡수세요
즉석에서 한 마리 산 전주분들 맛있게 잡수세요 ⓒ 김규환
흑산 홍어는 칠레산 처럼 많이 삭히지 않아야 제맛이랍니다
흑산 홍어는 칠레산 처럼 많이 삭히지 않아야 제맛이랍니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뉴스비젼21, 하니리포터, 조인스닷컴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http://cafe.daum.net/hongaclub에 가시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연재코너 홍어 관련 기사가 더 있으니 참고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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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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