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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아프리카 아냐? 한여름 옷 가져가야겠네."
"어, 이슬람 국가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근데 거기 사람들은 모두 흑인이냐?"
"사막에 어떻게 갈려고 그래?"

우리가 튀니지로 여행을 간다고 할 때 모두들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위의 말들은 모두 틀렸다.

▲ 튀니지 지도
ⓒ 론리 플래닛
튀니지는 북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공화국인데 농업과 관광이 발달했다. 흑인과 백인의 중간쯤인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에 눈망울이 깊고 선량해 보이는 유목민들이 대부분이다. 날씨는 제주도 정도로 겨울은 있지만, 그리 춥지 않을 정도인 전형적인 지중해식 기후로 살기 좋은 나라이다.

물론 국교가 이슬람이긴 하지만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철저하게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책으로 인해 매우 개방적이고 서구화된 법률을 갖고 있다.

여성에게 불리한 관습이 모두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교육과 의료는 무료이다. 당연히 여성의 교육수준과 사회진출이 매우 활발하다. 내가 튀니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페니키아인이 건설한 고대 국가 카르타고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장군 한니발의 고향이자 당시 유럽 전체를 지배할 만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기도 했다. 백년에 걸친 포에니 전쟁의 결과 로마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사라졌지만 다시금 로마에 의해 건설된 이 매력적인 도시를 직접 발로 밟아 보고 싶었다.

떠나기 전에 튀니지에 대한 정보를 구하려고 여행서적이나 인터넷을 뒤적거려 보았고 여행사에 자문을 구해 보았으나 한글로 된 만족할 만한 정보는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영어판 론리 플래닛이 유일한 정보였다.

내년이면 내 나이 50인데 돋보기안경 들고 마누라와 배낭여행을 떠나면서 이거라도 없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더 늦기 전에, 아니 더 늙기 전에 그냥 떠나는 거다.

우리 나라에서는 직항편이 운행되지 않기 때문에 인천에서 파리를 경유하여 튀니지로 가야만 했다. 인천에서 오전 10시 25분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7시경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공항에 도착했다. 단순하게 시간만 계산하며 8시간 정도 걸린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우리 나라와 시차(7시간)를 포함하면 15시간 걸려서 온 것이다.

입국 심사대에서 우리 나라 전자회사의 전광판을 보니 너무나 반갑다. 이곳 튀니지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는 알지 못해도 한국 회사의 컴퓨터 모니터와 휴대폰 이름은 알고 있는 듯했다. 입국 심사원은 여권을 이리저리 뒤져보고 몇 번이나 물어 본 다음에야 입국 도장을 찍어 준다. 한국인의 입국이 드문가 보다.

▲ 튀니스 메디나(구시가) 입구에 세워져 있는 프랑스의 문
ⓒ 함정도

▲ 튀니스 시내에 있는 성바울의 성당
ⓒ 함정도

▲ 튀니스 시내를 다니고 있는 전차(지하철이 아닌 지상철이 운행되고 있었다.)
ⓒ 함정도
튀니지는 유일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이다. 이러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아라파트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피신하고 망명을 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한다.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공통점은 이스라엘을 무척 싫어하고 이스라엘을 돕는 미국 또한 마찬가지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공항 환전소를 찾았다. 튀니지 지폐단위 명칭은 '디나르'. 1디나르가 우리 나라 천 원 정도 된다. 환전을 하고 공항을 나섰다. 여행자에게 가장 취약한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낯선 도시에 막 도착하여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택시비가 어느 정도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말 그대로 '어벙이'가 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 모습은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 택시 운전사의 좋은 먹이 감이다. 아니나 다를까, 금세 택시기사가 달려왔다. '하마메트'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대다수의 단체 관광객들은 튀니스 시내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이상 더 가야 하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하마메트'로 간다. 이곳은 휴양지로 유명하여 현대식 호텔이 즐비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을 피해 시내 한복판에 호텔을 구했다.

튀니스 시내의 호텔로 간다고 하니 20디나르를 부른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느 정도인지 느낌이 빨리 오지 않는다. 갈등이 생긴다.

15시간 비행에 지친 몸,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공항버스도 끊어진 상태이고 다른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엄청난 바가지 요금이었다. 주간의 택시 기본 요금이 0.4 디나르 정도였고 웬만한 시내거리는 3∼4디나르 정도면 충분했다).

바가지 쓸 각오로 택시에 올랐다. 택시 기사는 간단한 영어도 전혀 되지 않았다. 이곳 언어는 프랑스 식민지 역사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아랍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었다.

"뭐 괜찮아 호텔 이름만 통하면 되지."

나 또한 중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로 버티고 불어는 전혀 못하니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를 연상케 하는 시내 중심 대로
ⓒ 함정도

▲ 고풍스런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한가하게 거닐고 있는 사람들
ⓒ 함정도
어둠이 내린 튀니스 공항을 빠져 나온 우리는 약 20분 정도가 지나 시내로 들어왔다. 한적한 공항 주변과는 다르게 시내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거리 밖의 식당 의자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연상하게 했고, 키가 크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사람들이 밤거리를 한가하게 거닐고 있었다.

▲ 호텔에서 바라본 오페라 하우스(매일 밤 이곳에서 연주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 함정도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마음 한구석에 여행에 대한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렇게 여행 첫 날이 지나갔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1월 3일 부터 19일까지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몰타를 호텔팩으로 다녀온 부부 배낭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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