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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완으로 가려고 버스 터미널을 찾아갔다. 버스는 없고 (이곳 사람들이 버스라고 부르는) 소형 밴과 택시를 개조한 차량들만 모여 있었다. 정원은 8명, 목적지를 외치다가 좌석이 차면 출발한다. 우리 나라의 합승과 비슷했다. 우리는 황당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수밖에. 현지인과 같이 9인승 밴을 탔다.

3시간 이상을 달려도 보이는 것은 지평선뿐이다. 지금 지나고 있는 지역이 유명한 '자마회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카르타고의 한니발군과 로마의 스키피오(아프리카누스)군의 한판 승부가 이 평원에서 이루어졌다.

로마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지중해의 맹주가 되고 카르타고는 역사에서 퇴장해야 했다. 전쟁의 징후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평화스런 지평선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두 번 갈아타고 '카이로완'에 도착했다.

튀니지에서는 택시를 즐겨 이용했다. 유럽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택시요금은 미터기로 결정되었다. '카이로완'에 도착해 택시를 탔다. 시내에서 웬만한 거리는 팁 포함해서 2디나르 정도면 충분했다.

▲ 카이로완 카스바 호텔 풍경
ⓒ 함정도
호텔에 도착해서는 깜짝 놀랐다. 고성을 호텔로 개조한 것이어서 뜰에는 야자나무가 둘러 선 수영장이 있고 방은 온통 푸른 모자이크 타일로 꾸며져 마치 술탄의 침실처럼 사치스러운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창 밖으로 안뜰이 내려다보이는 이런 호사스러울 정도의 방은 아마 환율 차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 것 같다. 같은 요금으로 유럽에서는 투어리스트급의 호텔을 이용했다.

다음날 또 새벽에 눈을 뜨고 말았다. 역시 7시간의 시차가 문제였다. 덕분에 일찍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조금 걷다보니 커다란 성벽이 나타났다. 이 곳이 메디나(구시가)이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카이로완 메디나(구시가) 입구
ⓒ 함정도
메디나(MEDINA)는 이슬람식의 오래된 시가를 말한다. 그러니 가는 도시마다 메디나가 있는데 이곳 카이로완의 메디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세계적인 관광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도 보이고 특이하게 생긴 창문과 강렬한 파랑은 튀니지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곳 사람들은 창문과 외벽 장식에 상당히 신경을 써서 단장한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눈앞의 풍경을 깊이 호흡했다.

▲ 카이로완 대 모스크
ⓒ 함정도
대 모스크(Great Mosque)는 아주 크고 특이한 건물이었다. 사각형의 첨탑과 맞은편 둥근 돔 지붕을 양변으로 커다란 네모를 그리고 있었다. 커다란 사각의 안뜰은 정말 크고 넓었다. 이유가 있었다.

▲ 필터 역할을 하는 장치(대리석 조각의 홈 사이 작은 구멍으로 빗물이 통과해 가운데 구멍으로 들어간다)
ⓒ 함정도

▲ 밧줄로 물을 퍼 올려서 닳은 흔적이 보인다.
ⓒ 함정도
사막지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식수의 해결이었다. 하얀 대리석을 바닥에 깔아 놓은 안마당은 가운데가 약간 낮아서 빗물이 필터 역할을 하는 작은 홈들을 지나 아래의 커다란 저수조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가장자리에 물을 퍼 긷는 샘이 여러 개 있는데 밧줄로 퍼올려서 닳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안마당이 커다란 물탱크였다. 기도실은 무슬림 남자만 들어갈 수 있었다. 훌륭한 장식들로 가득한 나무문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이슬람 사원에 사용된 로마식 기둥
ⓒ 함정도
대 모스크에 사용된 기둥은 모두 400여 개인데 대부분 로마식 기둥이다. 길이가 안 맞아서 단을 높였다 낮추었다 하여 세워 놓았다. 곳곳에 있는 유적지에서 가져온 것일 것이다. 첨탑 아래쪽에도 라틴어가 쓰여진 돌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정집에서도 로마기둥이 많이 보였다. 어쨌든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 시장풍경(여기서도 때밀이 수건이? 노키아 포장마차 대리점?)
ⓒ 함정도
비좁은 골목을 이리 저리 누비며 전통시장을 구경했다. 전통시장은 어느 나라를 가도 생동감이 넘친다. 투박한 전통 카펫을 팔고 있는 상점은 아프리카 특유의 색채를 물씬 풍겼고 우리 나라 때밀이 수건처럼 보이는 물건이나, 노키아 포장마차 대리점은 단연 압권이었다.

▲ 즐거워하는 학생들(뒷편에 흰 가운을 입은 교사들이 보인다.)
ⓒ 함정도
시장을 기웃거리다 학교를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다. 점심시간쯤 되었는데 등교하는 학생과 하교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교사들은 모두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낯선 동양인의 등장에 순식간에 우리 주변에는 꼬마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마침 영어가 가능한 젊은 여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옛날 우리가 2부제 수업을 했듯이 학생들은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등교시간이 모두 달라 4부제, 5부제쯤 되는 수업을 받고 있었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교육과 의료는 모두 무료이고(수준은 모르겠지만) 겨울방학은 없으며 여름방학은 길어서 석 달 정도란다.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서 마구 떠드는 바람에(특히 디지털카메라의 액정화면에 자신들의 얼굴이 나온 것을 보고) 학생 지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다.

▲ 애완양(?)과 함께 뛰어 노는 동네 꼬마들
ⓒ 함정도
메디나를 나와서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렸다. 특이하게도 이 동네 아이들은 양들과 뛰어 놀고 있었다. 행동 또한 영락없는 개처럼 주인을 졸졸 따라 다니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껴안고 뒹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는 개가 보이지 않고 고양이들만 현관 앞에 게으르게 누워 있었다. 개들은 들판에서 양을 지키고 아이들은 양을 개 삼아 놀고 있나 보다. 남자들은 자동차 사이로 유유히 당나귀를 몰고 다닌다.

▲ 야자 열매가 익어가는 평온한 시내 풍경
ⓒ 함정도
겨울인데도 키가 큰 대추야자 가로수의 야자열매가 노랗게 익어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지곤 했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1월 3일부터 19일까지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몰타를 호텔팩으로 다녀온 부부 배낭여행기 입니다. 이글은 안락답사회 홈페이지(http://hamjungdotour.netia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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