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3 06:27최종 업데이트 24.08.2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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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형법 제98조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한 뒤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이 자리에서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무혐의 처분에 대해 "팩트와 법리에 맞는 판단"이라고 밝혔다.남소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무혐의 처분에 "팩트와 법리에 맞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결정이 정당했다는 얘긴데, 국민 대다수와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당대표 취임 전부터 국민눈높이를 강조해왔다. 비대위원장 때는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고 했고, 지난달 김 여사 '출장 조사' 논란 때는 "국민눈높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도 했었다.

명품백 입장 후퇴는 한동훈이 현재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호시탐탐 끌어내릴 기회를 노리는 친윤 세력의 위세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는 게 그의 현실이다. 압도적인 지지로 당대표가 됐지만 비주류 원외 대표라는 설움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한동훈당' 구축은 언감생심이다.

한 대표 취임 한 달을 꿰뚫는 열쇳말은 조바심과 성급함이다.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그로선 당권·대권 분리규정으로 불과 1년 남은 임기 내에 눈에 띄는 실적을 거두려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출되자마자 던진 여야 당대표 회담을 재빨리 낚아챈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차기 여당 대선 주자는 자신이라는 점을 공고히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터다.

한 대표가 호기롭게 나섰지만 그가 대표 회담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제3자 추천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은 점점 자충수로 굳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다 받을 태세인 민주당과 어느 조건을 붙여도 특검은 안 된다는 당내 주류 사이에서 한동훈은 길을 잃었다. 이 대표의 집요한 공격을 한 대표가 막아낼 방도는 없다. 거기서 "내 입장은 그대로"라고 얘기하는 건 얼마나 모양 빠지는 일인가.

이 대표가 강력히 주장하는 '25만원 지원법'도 한 대표로선 난감한 문제다. 이미 당 지도부 회의에서 "25만원법에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터라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왜 25만원만 주냐, 10억 100억씩 주지"라며 작심비판한 윤석열 대통령과 엇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혹 여야 대표가 합의한들 대통령실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계속 드러나는 미숙함... 한동훈의 비전 과연 뭔가

한 대표가 여야 대표 회담을 TV생중계로 하자고 나온 건 자신의 한계를 감안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불리한 현안은 특유의 한동훈식 화법으로 피해나가고, 이재명의 약점을 공격해 유효타를 높이자는 전략이다. 영수회담이나 여야 대표 회담은 꽉 막힌 정국에 돌파구를 얻자는 것이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토론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각한 것이다. 대표 회담을 너무 성급하게 받은 게 리더십 미숙을 드러낸다는 평이 당에서도 나온다고 한다.

한동훈에 대한 보수지지층의 요구는 당장의 치적쌓기가 아니다. 보다 긴 안목에서 한동훈만의 가치와 미래 비전, 보수혁신에 대한 구상을 보여달라는 거다. 지난 한 달동안 한 대표는 반대세력을 끌어안지도, 용산을 설득하지도,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기억나는 건 정점식 정책위원장 교체 논란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뿐이라고 실망하는 보수층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이 최근 단행한 인사에 잡음이 쏟아지지만 한 대표는 이렇다할 말이 없다. 친일 인사들 중용으로 광복절 행사가 반쪽이 되고 외교안보 라인 인사에 의문이 커지는데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로 한 대표가 표방한 중도·수도권·청년(중수청) 외연 확장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 대표 취임 후 당 지지율도, 본인의 호감도도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출마를 반대했던 측에서 제기한 주장은 현 상황에서 대표가 된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논리였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인 야당 사이에서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지금 한동훈의 처지가 딱 그대로다. 국민의힘의 한 원로는 한 대표에게 "머리는 검증됐지만 가슴으로 정치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현재의 한동훈은 가슴뿐 아니라 머리도 좋은 점수를 받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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