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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볼, 친숙한 듯 낯선 스포츠입니다. 충북 옥천 읍면 곳곳에 스며든 게이트볼의 매력을 소개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6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게이트볼장' 글씨를 따라가면 차원이 다른 공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다.
 '게이트볼장' 글씨를 따라가면 차원이 다른 공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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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초입에 크게 쓰인 '게이트볼' 글씨를 따라 가면 나오는 마을회관. 텅 빈 회관 주변으로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주변을 기웃거리기를 잠시, 자전거 탄 주민이 "이쪽이에요"라며 길을 안내한다.

마을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게이트볼 구장에서 공 부딪히는 소리와 환호 그리고 탄식이 흘러나온다. 조용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구장. 그 내부에 들어서니 마치 차원이 다른 공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다. 26년 전부터 마을회관보다 게이트볼 구장에 모이기를 즐긴다는 안내면 월외리 주민들. 함께 땀 흘린 세월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항상 북적이는 게이트볼 구장
 
주민들의 진지한 표정은 실제 게이트볼 시합을 방불케 한다.
 주민들의 진지한 표정은 실제 게이트볼 시합을 방불케 한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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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넘은 때, 10명의 주민이 팀을 나눠 게이트볼을 시작한다. 공이 튀거나 게이트에 공을 넣지 못할 때마다 사방에서 안타까움이 터져 나온다. 경기 안내음에 맞춰 연습하는 주민들의 진지한 표정은 실제 시합을 방불케 한다.

이리저리 공과 함께 바쁘게 움직이는 주민들을 눈으로 쫓는 이가 있다. 건강문제로 한 달째 운동을 쉬고 있는 유은재(74)씨는 다른 회원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연습을 대신하고 있다. 

"2년 전 고향인 월외리로 돌아오면서 게이트볼을 시작했어요. 예전부터 우리 마을이 게이트볼로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일이 바빠 배울 생각은 못 했죠. 그러다 일도 줄고 마을 주민을 만나려고 구장에 왔다가 배우기 시작했어요. 공을 맞히는 재미가 커 금방 빠지게 됐네요. 지금은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지만 구장에는 매일 나와요. 경기를 꼼꼼히 살피며 전략을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공의 위치에 따라 전략도 달라지기에 가능한 많은 경기를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유은재씨가 직접 공을 치지 않아도 연습 장면을 눈에 담고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4년 차 강성자(69)씨는 팀원과 의논하며 공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게이트볼을 처음 시작하면 채로 공을 맞히는 것만 몇 개월 연습해요. 그 감각을 익힌 다음 규칙과 시합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공부하죠. 그런데 외운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공이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 전략이 바뀌니까요. 그럴 때는 팀원과의 소통이 답이에요. 각자 경험에서 나온 의견을 조합하면 길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게이트볼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팀원과 소통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것 같아요."
 
"공을 맞히는 쾌감도 있지만 함께하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공을 맞히는 쾌감도 있지만 함께하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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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자(68)씨 역시 강성자씨의 말에 동의한다. 그에 따르면 게이트볼의 매력은 바로 이 '팀원과의 소통'이다. 13년 전 대전에서 월외리로 이주해 살고 있는 그가 게이트볼을 시작한 건 3년 전, 인생 첫 운동이라 걱정도 있었지만 자신과 같은 초보자부터 20년 이상 베테랑까지 함께하는 클럽활동에서 운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어요. 공을 맞히는 쾌감도 있지만 함께하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회원들 덕분에 이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게이트볼이 몸에 무리가 안 가서 쉽게 시작할 수 있다지만 주변에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면 꾸준히 못 했을 거예요. 월외리는 게이트볼 역사가 오래된 곳인 만큼 즐기는 주민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남편도 함께하고 있죠."

조태자씨 말처럼 월외리 클럽에는 2~3년, 5년, 20년 이상 등 게이트볼 경력과 연령이 다양하다. 현재 클럽 회원은 24명, 경기관람을 위해 구장을 방문하는 이도 많다. 이웃을 급히 찾을 때, 연락이 안 될 때는 구장부터 확인할 정도라니, 월외리로 이주한 주민이 구장을 찾게 되는 것도, 신입 회원이 늘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을에서 항상 북적이는 곳, 언제부터 마을회관이 아닌 구장에 사람들이 모이게 됐을까?

"구장이 그냥 구장이 아니야"
 
땅을 닦고 게이트볼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를 구비해 시작한 운동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땅을 닦고 게이트볼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를 구비해 시작한 운동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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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외리에 게이트볼 구장이 처음 생긴 것은 1998년. 마을에 낯선 운동을 알린 한 주민을 시작으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덕이다. 

"1990년대 중반쯤 서울에서 이주한 안교진씨라고 있었어요. 우리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교통이 안 좋아서 어디 나서는 게 쉽지 않았죠. 일 외에 취미 생활은 꿈도 못 꿨어요. 그런 곳에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게이트볼이라는 운동이 있다며 안교진씨가 알려준 거예요." (박정삼씨, 65)

낯선 운동에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이내 주민들이 모였다. 

"마침 제 아버지(박판만)께서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안교진 씨에게 게이트볼을 배워서 적극적으로 알리셨죠. 그때는 지금처럼 인조잔디란 게 없었으니까 맨땅에서 시작하셨고요."
 

땅을 닦고 게이트볼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를 구비해 시작한 운동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농사일을 마치고 연습 삼매경에 빠진 모습은 더 많은 이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구경꾼 중 한 명이었던 남재성(83)씨도 구장에 가는 날이 늘면서 자연스레 게이트볼을 배우게 됐다고. 

"다 같이 뭔가를 한다는 게 재밌었어.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게이트볼을 치지만 그때는 더했지.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관없었으니까. 여름에는 더우니까 해가 질 때쯤 모이고 겨울에는 나무 베다가 불 때면서 했지. 불을 얼마나 크게 폈는지 날아다니는 불티에 옷에 구멍이 엄청 많이 났어(웃음). 옷에 구멍 나는 줄도 모르고 열심이었지."
 
실내구장은 게이트볼 회원뿐 아니라 휴식과 소통 공간으로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때 여성 주민들의 참여가 늘었다.?
 실내구장은 게이트볼 회원뿐 아니라 휴식과 소통 공간으로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때 여성 주민들의 참여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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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게이트볼이 시작된 월외리는 1999년 제4회 군수기차지 생활체육 게이트볼대회 준우승 이후 옥천군 친선게이트볼대회, 동부 4개면 친선게이트볼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상을 쓸어오며 명실공히 옥천군 게이트볼 강자로 우뚝 섰다. 트로피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게이트볼은 마을의 자부심이 됐다. 주민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옥천군에 전천후게이트볼 구장 설립을 요청했고 2007년 지금의 구장이 지어졌다. 

"바닥에는 인조잔디가 있고 해 가려주는 지붕이 있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장마철에는 몇 날 며칠을 못 했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날씨 걱정 없이 마음껏 공을 칠 수 있었으니까." (남재성씨)

이렇게 지어진 실내구장은 게이트볼 회원뿐 아니라 휴식과 소통 공간으로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때 여성 주민들의 참여가 늘었다. 

"구장에 자주 갔지만 농사일로 바빴어. 73살이 돼서야 한 번 배워볼까 생각했지. 내가 운동에 소질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공이 잘 맞으니까 더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 지금은 다리 수술해서 못 나가고 있지만 대회도 몇 번 나갔었지. 그때 나 게이트볼 정말 잘했어." (백봉순씨, 84) 

70대에 시작한 게이트볼이 첫 운동이었던 것은 10년 차인 황연자(82)씨도 마찬가지. 해본 적 없는 운동이지만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주민들이 있어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을이 대회에 나갔다하면 상 타오니까 게이트볼을 모를 수가 없지. 배우지 않아도 듣고 보는 게 있으니까. 젊어서는 일하느라 바빠서 못하고 대회 응원하는 정도였는데 나이 들고 갈 곳도 할 일도 줄어드니까 우리 마을의 자랑인 게이트볼 한 번 배우자 했지. 실력 좋은 선수가 이렇게 많은데 잘 알려주지 않을까 하고. 지금 생각해도 배우길 잘한 것 같아. 게이트볼 아니었으면 이 나이에 이렇게 재밌게 살 수 있었겠어?"

우리가 바라는 게이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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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남성 회원이 주를 이뤘던 월외리 게이트볼은 여성 참여가 꾸준히 늘면서 현재 10명의 여성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4년 전 회장이 된 추수남(62)씨 역시 그중 하나다. 게이트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월외리분회 대표로 옥천군회장기 게이트볼대회에 출전할 만큼 실력 좋기로도 유명하다. 

"탁구를 10년 넘게 쳤어요. 나이가 들면서 활동량이 많은 탁구가 몸에 무리가 돼서 5년 전 게이트볼을 시작했죠. 마을에 잘하시는 분이 계셔서 실력이 금방 는 것 같아요. 게이트볼 잘하기로 유명해서 다른 면 지역에서 배우러 오기도 했었거든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2000년 초반 활동하시던 분들이 잘 알려주신 덕분에 저도 배울 수 있었죠."

이제는 남편인 박정삼 씨와 함께 강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항상 남편과 같이 운동해요. 게이트볼도 같이 시작했는데 둘 다 운동 욕심이 있어서 기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하자고 해요. 집에 가서도 게이트볼을 연구하고 연습해요. 정말 밤낮 없이 게이트볼 생각뿐이죠(웃음).

게다가 게이트볼 역사가 있으니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해야 하고요. 요즘 더 집중하는 게 있다면 여성팀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거예요. 게이트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분도 계시고 대회 경험이 많지 않아 긴장해서 실력 발휘를 못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우리 월외리에서 더 많은 도대표가 나올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 가고 싶어요."


목표가 있어서 더 많은 연습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그. 바쁜 농번기라 24명의 회원이 모두 모이는 건 어렵지만 최대한 구장에 나오려는 모습에 더욱 힘을 내게 된다고. 
 
26년간 주민들의 이야기와 삶이 쌓여온 월외리 게이트볼 구장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채워질까.
 26년간 주민들의 이야기와 삶이 쌓여온 월외리 게이트볼 구장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채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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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오후 3시에 모여요. 너무 덥거나 농사일이 바쁘면 저녁 7시쯤 모이죠. 한 번 나오면 3시간은 기본으로 쳐요. 한 경기당 30분씩인데 6경기면 대단한 거죠. 그만큼 열정이 있으세요. 몸이 아파도 아무리 일이 많아도 매일 구장으로 나오는 분들을 보면 허투루 할 수 없어요."

추수남씨 말에 박정삼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게이트볼을 연구하고 연습하지만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요. 게이트볼 전국대회에 나갔을 때 울산팀을 만났는데요. 선수 중 국가대표가 있더라고요. 지도사자격증을 따서 팀원 지도를 직접 한다는 말에 부러웠어요. 우리 옥천도 전문가를 초청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꼭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이 정도 열의가 바탕이 되니, 신입회원 역시 끊이지 않는 것이리라. 마을로 이주해 오는 주민들의 참여도 높아 단연 마을 단결과 화합에도 게이트볼의 역할이 크다. 탈퇴자도 드물어 회원 수도 10년 전과 같다. 세월이 흘러도 왕성한 클럽활동에는 '생일밥상' 문화가 있단다.  

"저희 월외리 게이트볼은 회원 생일에 당사자가 식사 대접하는 문화가 있어요. 마을에 교통이 좋아지면서 버스가 들어서고 한두 번 외식하던 것이 생일밥상으로 자리 잡았죠. 24명의 회원 생일을 챙기다 보면 1년이 금방 간다니까요(웃음).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 걱정이지만 회원분들은 꼭 해야 한다고 하세요. 월외리가 서답벌, 본동, 용골, 신월동 4개 자연마을이 모여 있는데 생일 아니면 모두 모이기 어렵다고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얼굴 보는 날이 있어서 단합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추수남 씨)


게이트볼로 하나 된 월외리 주민들. 오후 6시가 다 되자 구장 입구에 주차 공간이 없을 정도로 더 많은 이가 모인다. 고즈넉한 여느 농촌마을과 달리 시끌벅적한 저녁을 맞이하는 월외리. 26년간 주민들의 이야기와 삶이 쌓여온 월외리 게이트볼 구장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채워질지 기대된다.


월간옥이네 통권 84호(2024년 6월호)
글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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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게이트볼, #옥천, #안내면, #월외리, #월간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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