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도 시대의 흐름에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만, 몇 가지 뒤떨어지는 게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미지 시대로의 변화입니다.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글을 향한 고집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대상을 포착했을 때 이미지보다는 글로 묘사하는 게 더 우월하다는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지 없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합니다. 특히 각종 SNS에서도 글보다는 이미지가 우선입니다. 글은 이미지를 설명하는 보조 역할로 전락했습니다. 이미지는 글 없이도 충분히 존재 가치가 발휘합니다만, 글은 이미지 없이는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간혹 이미지 없는 긴 글을 만나면 사람들은 마치 지나간 교과서라도 보듯 진저리를 치면서 넘겨버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댑니다. 누구는 다녀갔다는 인증을 위해, 누구는 SNS에 올리기 위해, 누구는 현재의 감흥을 어떻게라도 표현하기 위해 찍어댑니다.
저도 이 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사진 찍기에 동참해야겠습니다. 어떤 대상을 보면 '닥치고' 사진부터 찍어야 하겠습니다. 제 글을 위해서도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제 글이 사람들에게 천대받지 않으려면 이미지로 치장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대상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은 무형이라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언어로 된 글이 아니고서는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합니다. 다만 사진은 기억을 되살려내는 좋은 매개가 됩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글을 훌륭하게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 사진찍기는 매우 편해졌습니다. 휴대전화기에 장착된 카메라로 언제 어디서든 사진찍기가 가능합니다. 또 디지털 사진이라 별도의 작업 없이 곧바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즉시 사진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이미지가 생산되고 유통됩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투명사회>(2014)에서 디지털 사진은 기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현재의 연속이고, 보존 가치를 상실한, '좋아요'만 남발하면 되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없는, 탈서사화한 사진입니다.
지금 이 사진 찍는 시대에 사람들은 디지털 사진을 오래 보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즉각적으로 소비하고 곧 망각해 버립니다. 수많은 이미지가 일회용 종이컵처럼 한번 보고 버려집니다.
하나의 이미지가 의미를 얻고 오래 기억되려면 언어가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전에 우리는 인화한 사진을 앨범에 끼워놓고 두고두고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방금 찍은 이 사진 한 장에 언어로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이 필요한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