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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함께 출발했던 카약커들. 맨왼쪽이 박국재씨로 7년째 카약을 타는 베테랑이다. 제주도에서 완도 명사십리까지 100킬로미터를 완주하기도 했다.
 일행과 함께 출발했던 카약커들. 맨왼쪽이 박국재씨로 7년째 카약을 타는 베테랑이다. 제주도에서 완도 명사십리까지 100킬로미터를 완주하기도 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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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일) 일행(17명)과 함께 카약과 범선을 타고 까막섬에 다녀왔다. 까막섬의 공식 지명은 가막도(駕寞島)로 여수 소호요트경기장에서 직선거리 7.39km 떨어져 있는 무인도이다. 가막만 중앙에 위치한 자그마한 섬으로 면적 0.042㎢, 둘레는 1.0㎞, 최고점의 고도는 해발 30m이다.

오전 10시. 여수소호요트장에 일행이 모였다. 여수에서 참가한 일행과 KDI멤버들도 동참했다. 카약 경험 3번째인 필자와 함께 카약을 타기위해 나선 일행 중에는 완전초보도 있었다. 그 중에는 제주도에서 완도까지 카약을 탄 베테랑 박국재씨도 있었다. 필자와 한 팀을 이뤄 카약을 탄 일행의 아들이 카약타기를 원해 카약 중간에 태웠다.    

순천에서 온 베테랑 정웅교씨가 초보자들을 위해 카약 타기 요령과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소호요트장에 준비된 2인용 카약인 '싯온탑(sit on top) 카약'은 플라스틱으로 넓고 안전해 보였다. 구명복을 착용하고 아예 물에 빠질 준비를 한 일행이 몸을 푼 후 서서히 바닷물로 들어섰다. 10월이지만 바닷물은 아직 차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몇그루 밖에 없을 줄 알았던 까막섬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밀림처럼 나무가 우거져 올라가는데 애를 먹었다
 멀리서 보면 몇그루 밖에 없을 줄 알았던 까막섬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밀림처럼 나무가 우거져 올라가는데 애를 먹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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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섬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철모르는 개나리가 피어있었다
 까막섬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철모르는 개나리가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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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승 '싯인카약(sit in kayak)을 탄 베테랑 정웅교씨가 앞서고 2인승 카약을 탄 초보자들이 뒤따랐다.  파란 가을하늘이 빛나고 바다도 빛나고 있었다. 잔잔한 바다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조금씩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멀리 백야도 쪽을 지나던 어선이 일으킨 파도가 카약을 덮치자 우리는 파도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파도를 향해 정면으로 맞섰다.

빙 둘러 섬과 섬으로 둘러싸인 가막만은 천혜의 양식장이다. 김칫독을 거꾸로 엎어놓은 형상이라 큰 태풍이 와도 섬과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크게 피해를 입지 않는다. 김칫독 입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개도, 화태도, 금오열도, 돌산도가 방파제 역할을 한다. 때문에 바다 가운데에는 수많은 양식장이 있다.

베테랑 카약커들은 양식장 사이의 넓은 공간을 찾아 선두에 서고 초보자들이 뒤따랐다. 파도가 커지고 카약구멍에서 올라오는 물 때문에 아랫도리가 다 젖었다. 어른들이야 괜찮다. 하지만 10살짜리 아이가 "아빠 너무 추워요!"를 외친다.

한 윈드서퍼가 일행 주위를 달리고 있었다
 한 윈드서퍼가 일행 주위를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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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이 카약을 타 추워 덜덜떨던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아빠가 업어주고 있다
 겁없이 카약을 타 추워 덜덜떨던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아빠가 업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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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를 운항하는 도구를 '노'라고 한다면 카약은 '패들'이라고 한다. 뱃머리에서 패들링하는 내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전문가들을 따라갈 수 없다. 시트가 낮고 고정된 카약이서인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지난번 탔던 '인플레터블카약(inflatable kayak)'은 힘들었지만 허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30분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하다. 드디어 까막섬에 도착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움푹 팬 곳에서 아이 옷을 벗긴 후 섬 그늘에 흩어진 나무 조각을 모아 불을 지폈다. 이어 범선인 코리아나 2호를 타고 도착한 아이 엄마가 담요와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왔다. 덜덜 떨던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며 아이 특유의 익살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농담을 걸었다.

"갈 때도 카약타고 돌아갈까?"
"아니요! 싫어요."

일행의 웃음보가 터졌다. 겁없이 카약에 도전했던 아이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박수를 보냈던 일행은 돼지고기 삼겹살 안주에 술을 마시면서 흥이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태춘의 <저기 떠나가는 배>를 부르기 시작했다.
 
납작한 돌판에 삼겹살을 구워 술 한잔을 든 일행이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납작한 돌판에 삼겹살을 구워 술 한잔을 든 일행이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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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우고 납작한 돌판을 모아 삼겹살을 구었다. 멀리서 가져왔다는 흑돼지 맛이 일품이었다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우고 납작한 돌판을 모아 삼겹살을 구었다. 멀리서 가져왔다는 흑돼지 맛이 일품이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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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

술 한 잔이 들어간 일행의 노랫소리가 가막만을 메아리쳤다.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라는 구절에 이르자 합창소리가 높아졌다. 인생이 항해라면 덧없는 인생에 뭘 그렇게 가져갈 것이 많을까? 아무것도 없는 무욕의 땅. 가사가 절절하다.

7080세대인 교수들이 대학생 시절에 부르며 공감했던 노래인지라 일행의 심금을 울렸다. 노랫소리를 들으며 섬에 뭐가 있나 궁금해 섬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나무 몇 그루 밖에 없을 것 같던 정상 부분에 도달하는 데 애를 먹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밀림처럼 우거져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섬주인이 방사한 토끼들이 까막섬 주인이었다.
 섬주인이 방사한 토끼들이 까막섬 주인이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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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여수를 바라보니 시내와 돌산도가 다 보였다. 그때였다. 뭔가가 휙 하고 내 옆을 지나갔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무엇일까? 새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의문이 풀렸다. 사방에 토끼굴이 나 있었다. 섬 주인이 몇 년 전  방사했던 토끼가 집을 짓고 주인행세를 한 것. 섬에는 산머루와 모과나무, 방풍도 심어져 있었다.

일행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익숙한 솜씨로 돌판에 삼겹살을 구우며 음식을 만들고 있던 박국재씨에게 카약 경력은 얼마나 됐으며 카약을 즐기는 이유를 물었다. 박씨는 제주도를 떠나 완도명사십리까지 100㎞(직선거리 85㎞)를 14시간에 완주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카약커다.

"운영하던 서점을 정리하고 은퇴하는 심정으로 카약을 타기 시작했어요. 카약을 타고 섬주변을 돌면 참 좋아요. 섬에서 캠핑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여수로 돌아오는 길. 처음으로 카약을 탔다가 혼이 난 초보자들은 정면에서 심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기가 벅차 범선을 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서산에 황혼이 지고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흥이 오른 일행이 뱃전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까막섬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황혼이 지기 시작했다. 배가 살같이 바다를 달리고 흥에 겨운 일행의 노랫소리가 바다에 풍덩빠졌다
 까막섬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황혼이 지기 시작했다. 배가 살같이 바다를 달리고 흥에 겨운 일행의 노랫소리가 바다에 풍덩빠졌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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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여.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여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내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나고 흥겨움에 빠진 일행의 노랫소리가 바다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까막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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