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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람들은 전통을 바르고, 입고, 먹는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전통은 자존심이고 그들의 삶이다. 그들의 전통복장인 론지(Longyi-롱지라고도 발음한다)도 그렇다.

미얀마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타나카를 바른 여인의 얼굴과 치마 입은 남자들의 모습이 독특했다. 특히 남자들이 치마를 입고 활보하는 모습은 이곳이 낯선 땅임을 각인시켜 준다.

언젠가 TV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치마 입은 스코틀랜드 남자들을 본적이 있지만 미얀마 남자들의 치마 입은 모습은 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화려하지 않은 남자들의 치마는 불편해 보이지 않았으며 그냥 편안하게 입는 평상복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미얀마에서는 론지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부분 입는다. 오히려 바지 입은 사람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이방인에게는 낯선 모습이지만 그들에게 론지는 평범한 그들의 일상이고 삶이다.

치마 입은 미얀마 남자들

치마 입은 남자, 미얀마에 가면 첫눈에 띄는 독특한 모습이다
▲ 미얀마 전통의상 론지(Longyi) 치마 입은 남자, 미얀마에 가면 첫눈에 띄는 독특한 모습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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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지는 미얀마의 전통 의상을 통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더 자세하게 구분하면 남자가 입는 론지는 빠소(paso 바쏘라고 발음하기도 함), 여자가 입는 론지는 트메인(htamein)이라고 부른다.

자세히 보면 빠소와 트메인은 약간 다르다. 남성용 론지는 격자 줄무늬가 있는 청색 계열이나 갈색 계열 등의 단순한 색으로 디자인 되어있다. 여성용 론지는 색이나 모양이 남성용보다 휠씬 화려하고 다양하다.

여성용 론지는 언뜻 보면 일반 치마처럼 보여, 전통 의상이지만 특이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론지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이 최신 유행의 스마트폰과 핸드백을 메고 자연스럽게 흘러 내린 론지를 입은 모습은 세련돼 보인다.

전통과 현대문명의 조화, 최신 스마트폰과 세련된 핸드백 그리고 론지를 입고 버스를 기다리는 양곤의 젊은 여성
▲ 론지 입은 미얀마 신세대 여성 전통과 현대문명의 조화, 최신 스마트폰과 세련된 핸드백 그리고 론지를 입고 버스를 기다리는 양곤의 젊은 여성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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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들

미얀마 도착 3일째, 양곤의 차이나타운 근처를 방문 했을 때이다. 거리는 오전부터 내린 비로 이곳 저곳에 웅덩이가 생겨 흙탕물과 오물들이 뒤섞여 지저분했다. 트럭 옆을 지나는데 왠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무심코 쳐다보니 소변을 누는 중이었다. 

처음 보는 모습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오기 전에 미얀마 남자들은 앉아서 오줌을 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직접 접하니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 몇 번 더 앉아서 뭔가를 해결하는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지저분한 거리가 꼭 흙탕물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양곤에서 인레로 들어가는 심야 VIP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는 집단으로 앉아서 오줌 누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근 12시간을 달려야 하는 심야 버스가 공식적으로 쉬는 휴게소는 식사를 위한 두 번뿐이었다. 장시간 가다 보면 급한 볼 일을 봐야 하는데 이때 조수에게 얘기하니 버스는 잠시 적당한 곳에 정차한다. 이때 어둠 속으로 너나 없이 뛰어 나가 여기저기 띄엄띄엄 앉아서 볼 일을 봤다.

처음에는 문화적 충격이었지만 미얀마를 떠날 즈음 바강(바간)에서 양곤으로 넘어 오는 심야버스를 탔을 때는 나도 그 무리 속에 끼었다. 그 중에서 나는 유일하게 서서 볼 일을 보는 남자였다.

양곤 선착장에서 바라본 미얀마 사람들의 일상, 자세히 보면 대부분 론지를 입고 있다.
▲ 론지 입고 사는 미얀마인들의 일상 양곤 선착장에서 바라본 미얀마 사람들의 일상, 자세히 보면 대부분 론지를 입고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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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의 어설픈 론지 패션쇼

양곤의 유자나 프라자를 방문 했을 때 나는 제대로 론지 체험을 했다. 유자나 플라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시장쯤 되는 곳이다. 론지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도매상쯤 되어 보이는 가게였는데, 관광객을 '봉'으로 아는 아줌마는 6000짯을 불렀다.

하지만 이미 양곤 4일차, 무엇이든 생존 본능으로 쉽게 습득하는 촌놈 출신답게 흥정을 시작했다. 현지 가이드에게 정보를 입수한 적정 가격보다 비싸다는 것을 알고 3500짯으로 깎았다. 계속 안 된다고 하다 돌아서려니 다시 잡았다. 흥정성공! 우리는 론지를 그 자리에서 입고 어설픈 패션쇼를 펼쳤다. 낯선 이방인들의 어색한 론지 패션쇼에 시장 통은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되었다. 날림으로 동여맨 론지가 흘러 내려갈 때마다 박장대소하며 좋아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낯선 이방인에게 다가와 론지 입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며 호의를 베풀었다. 한바탕 공연이 끝난 후 일행과 합류하니 몇몇이 자신들도 론지를 사고 싶다고 해서 그 아주머니 가게로 3명의 손님을 더 끌어다 주었다. 아마도 양곤의 유자나 플라자에서 활약한 한국인 최초의 '호객꾼'이 아닐까 싶다. 값을 깎아주었던 아줌마나, 한바탕 웃음 보따리를 덤으로 받은 우리나 손해 보는 흥정은 아니었던 셈이다.

미얀마에 가게 되면 론지는 꼭 한번 사서 입어 보길 권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방인이 자신들의 전통 옷 입은 모습을 무척 좋아하고 신기해 한다. 미얀마와 몇 배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론지를 실제 입어보면 생각보다 편하고 통풍도 잘 되어 시원하다. 나중에 양곤 쉐다곤 파고다 입장 시에도 반바지를 입었다면 론지가 필요하다.

좌)론지 입고 활보하는 미얀마 청년(양곤), 중)유자나 플라자 이방인 론지 패션쇼, 우)론지를 교복으로 입은 미얀마 어린 학생들(바간)
▲ 론지 입은 사람들 좌)론지 입고 활보하는 미얀마 청년(양곤), 중)유자나 플라자 이방인 론지 패션쇼, 우)론지를 교복으로 입은 미얀마 어린 학생들(바간)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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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지키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것

언젠가 TV 화면에 비친 한국, 미얀마 정상회담 자리에 론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미얀마 대통령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방인의 눈에는 좀 경박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국가 수반으로 최대한 예의를 갖춘 전통 복장이었음을 알았다. 정상 간의 만남에서 자기 나라의 자존심을 입고 나온 미얀마 대통령을 생각하니 우리 대통령도 양복보다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한복을 입고 나갔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얀마를 다녀와서 장롱 속에 잠자는 내 한복을 생각했다.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은 그 뒤로 어머님 회갑과 칠순 잔치 때 말고는 입은 기억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한복은 그저 행사용으로나 몇 년에 한두 번 정도 입어보는 옷이 된 지 오래이다.

수백 년 된 전통을 이어오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존심이라는 것을 아는 미얀마라는 나라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개발이 늦어서 그렇다고 폄하할지 모르나 내가 본 미얀마 사람들은 개방이 더 되고 경제성장을 이룬다고 해도 그들의 전통을 지켜가리라는 생각이다.

타이트 하게 쫙 빼 입은 론지를 입고, 허리춤에 최신 휴대폰을 꽂고, 주머니처럼 만든 볼록하게 여민 앞부분에서 꽁야를 하나 꺼내 씹으며 가던 양곤의 청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청년을 통해 전통과 현대문물을 지혜롭게 조화시켜 살아가고 있는 미얀마의 모습을 본다.
그렇다. 저 모습이 바로 미얀마다.

덧붙이는 글 | ※미얀마 말은 되도록 현지어 중심으로 표기 하였으며 일부는 통상적으로 쓰는 표기법에 따랐습니다.



태그:#미얀마, #땅예친 미얀마, #론지 롱지, #미얀마 전통의상, #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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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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