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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는데 옆 사람이 갑자기 각혈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미얀마에 가면 비슷한 상황을 경험 할 수 있다. 미얀마 남자들은 뭔가를 질겅질겅 씹다가 입으로 붉은 피같은 것을 뱉어 낸다. 언뜻 보면 각혈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 정보 없이 이런 상황을 접하면 십중팔구 무척 당황스러울 게다.

이는 바로 '꽁야'다. 꽁야를 씹는 건 타나카, 론지와 함께 미얀마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독특한 문화이다.

핏빛 거리의 주범 꽁야
▲ 거리의 핏자국? 핏빛 거리의 주범 꽁야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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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거리를 유심히 살펴보면 곳곳이 핏자국처럼 울긋불긋 요란하다. 꽁야는 이처럼 미얀마 남자들이 대중적으로 즐기는 문화다. 미얀마가 앞으로 깨끗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도시 미화에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 꽁물 자국일 거다.

미얀마에 가면 타나카도 있고, 론지도 있고, 꽁야도 있다

양곤의 유자나 플라자 시장을 방문 했을 때 일이다. 미얀마의 일상을 담고 싶어서 시장 거리를 사진으로 담는데, 일꾼 중 한 명이 내 옆에 서더니 갑자기 붉은 피 같은 것을 토했다.

TV에서 폐병 환자가 각혈하는 장면은 봤지만 실제로 옆에서 이런 상황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피하는 시늉을 했더니 그 인부는 핏자국이 선명한 입으로 씨익 웃었다. 웃음 사이로 뿌리까지 시커먼 이가 보였다. 핏빛 물이 선명한 입술의 모습이 선한 미소와 대조를 이루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얀마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인 꽁야
▲ 꽁야 미얀마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인 꽁야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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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야는 타이완, 인도 등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볼 수 있는데 빈랑(betel palm) 나무 열매가 주 재료이다. 꽁웨라는 잎사귀를 잘 씻어 그 위에 톤이라고 부르는 액체(석회)를 바르고 빈랑나무 열매를 건조해서 말린 딱딱한 꽁디와 향을 내는 감초, 계피 등을 첨가하여 잎사귀로 싼다.

꽁디를 주재료로 해 기호에 따라 여러 첨가물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잎담배를 썰어 넣기도 하는데 이를 근거로 꽁야를 미얀마인들이 즐기는 씹는 잎담배라고 소개한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씹는 잎담배라기보다는 심심풀이 땅콩같은 기호품으로 씹는 각성제나 씹는 1회용 먹는 껌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가정집을 방문하면 손님 접대용으로 꽁야를 내놓을 정도로 일반적인 문화다.

꽁야를 계속 하면 꽁야에 바르는 석회질이 체내에 쌓이게 되어 건강에 안 좋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 사람들은 꽁야 후에 수박을 먹는데 이는 수박이 석회질 배출을 돕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석회질 체내 축적 문제뿐만 아니라 꽁야를 계속 하면 치아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실제 미얀마 사람 중에 치아가 시커먼 사람이 종종 있는데, 아마도 꽁야 때문인 듯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바간왕조시대(1044∼1287)에도 꽁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니 근 천 년의 역사를 가진 그들의 오랜 전통이다.

드라큘라가 나타났다-일행 중 용감한 도전자
▲ 꽁야 체험 드라큘라가 나타났다-일행 중 용감한 도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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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야 좀 씹어봐야 미얀마를 안다

씹는 법은 간단하다. 꽁야 쌈(우리나라 쌈처럼 싸서 먹음)을 입에 넣고 입술을 다물고 질걸질겅 씹는다. 이 때 입안에 물이 고이는데 이는 삼키지 않고 모았다가 한 번에 뱉는다. 이 꽁물이 붉은 색이어서 처음 보면 마치 폐병 환자가 각혈하는 것처럼 보인다. 꽁야 씹던 사람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다. 그의 입 주변은 피처럼 보이는 꽁야 물에 젖어 마치 드라큘라와 대화하는 듯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문화적 차이일 뿐인데 내공이 부족하여 생긴 일이다.

현지 가이드 말이 계속 씹으면 입안 전체가 상쾌한 맛이 돌며 온몸에 기운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해본 내 느낌은 참담했다. 어느 식당 앞 작은 꽁야 노점에서 할머니에게 100짯을(한화 100원에 3~4개) 주고 사서 씹어 봤는데, 맛이 '웩' 이었다. 나는 비위가 많이 상해 중간에 포기했다. 일행 중 용감한 한 명은 끝까지 씹었는데 약간의 흥분 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는지 얼굴이 벌게졌다.

미얀마 거리의 꽁야 노점상
▲ 꽁야 노점상 미얀마 거리의 꽁야 노점상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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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도 좋지 않고 거리 미관에도 치명적인 꽁야를 왜 정부는 그냥 둘까? 가이드는 꽁야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이 엄청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많은 꽁웨 재배 농가에서부터 거리에서 꽁야를 판매해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꽁야가 미얀마 경제에 큰 부분이라는 말이다.

시장에 가보니 꽁야 재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실제로 미얀마 거리에는 작은 꽁야 노점이 수없이 많다. 미얀마에서 꽁야는 단지 기호품으로 끝나지 않고 경제의 한 축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꽁야가 일으키는 부정적인 부작용들은 앞으로 미얀마가 해결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시장에는 꽁야 재료를 파는 곳이 많았다.
▲ 타욱자 재래시장 꽁야 도매상 시장에는 꽁야 재료를 파는 곳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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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바강)을 떠나기 전날 밤, 미얀마 별을 보며 간단한 맥주파티를 벌였다. 함께 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싸웅씨에게 물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왜 꽁야를 하는 건가요?"

그랬더니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싸웅씨 하는 말.

"밥 먹는데 이유가 있나요?"

우문에 현답같기도 하고, 내가 놀림당하는 기분도 들고... 뭐지?

덧붙이는 글 | 미얀마 말의 표기는 현지 발음 중심으로 표기 하였으며 일부는 통상적은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태그:#미얀마, #꽁야, #꽁, #꽁디, #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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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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