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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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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경제조항은 5·16쿠데타 헌법체제"

- '헌법=기본권+권력구조'이기 때문에 전자인 기본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면서 개헌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기본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헌법개혁을 반대하는 논리가 되는 것은 틀린 진단이다. 헌법제정의 근본 목적은 자유와 평등의 보장을 통한 인간의 기본권 강화를 위한 법치와 질서의 구축이다. 그걸 위해 권력분립과 사회경제 조항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권 강화야말로 바로 권력분산과 직결돼 있다. 대통령,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다. 권리는 국가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권리가 결코 추상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실제)권력에 대응하는 개념이라는 얘기다. 기본권 보장을 위해 권력을 반드시 분산시켜야 한다.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기본권을 향상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권 역시 마찬가지다. 현행 헌법은 민주주의, 선거주기, 권력주기가 재벌체제, 기업주기, 시장주기를 견제할 수 없는 국가체제다. 전자가 후자에 비해 너무나도 제약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헌법하에서 복지권과 사회권을 온전히 보장받기 어렵다. 현재 헌법개혁 논의에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행 6월항쟁 헌법 제119조의 내용(제1항 :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은 5·16쿠데타와 함께 완전 역전된 것이었다. 즉, 경제조항은 건국헌법체제가 아니라 5·16쿠데타 헌법체제인 것이다.

그러나 1948년 건국헌법, 1954년 전후헌법, 1960년 4월혁명헌법에서 제84조는 일관되게 5·16쿠데타 헌법과는 정반대였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이것이 1962년 5·16쿠데타 헌법에서는 이렇게 바뀌었다. '제111조 제1항 :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대한민국 경제질서의 기본이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에서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쿠데타 이전 헌법에서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는 전자의 한계 내에서 보장되었으나, 5·16쿠데타 헌법 이후에는 대한민국 경제질서의 기본으로 상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매우 커다란 전변이었다. 게다가 현 6월항쟁 헌법에서는 '기업의 자유'까지 넣어줬다. '사회정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관한 한 적어도 조문상으로는 건국 이래 가장 후퇴한 헌법인 것이다. 그러니 사회권, 복지권이 보장되기 상당히 어려운 헌법이다. 즉 경제조항의 경우 건국헌법과 정반대다."

- 기존의 개헌논의는 4년 중임제냐, 이원집정부냐, 내각제냐 등 권력구조에만 집중됐다.
"민주주의에 바탕한 기본권 강화와 사회경제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자원배분의 요체로서 권력구조가 핵심문제이다. 하지만 그것만 논의하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의 국가체제와 헌법질서에서 인권조항, 권력구조, 사회경제체제는 분리할 수 없다. 이 세 가지를 유기적으로 사유하지 않고는 좋은 헌법과 좋은 공동체를 가질 수 없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더해 '국민부' 구성해야"

- 현재 정치권에서는 순수내각제(독일), 이원집정부제(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분권형 개헌'이 대세다.
"권력은 분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그래서 저는 4권분립을 제안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더해 정부 감시와 감사, 인권보호․ 시장 및 금융 감독기관, 권력선출 기관을 분리시켜 '국민부'(감독부)라는 제4부를 구성해야 한다. 감사원, 인권위, 공정위, 금감원 등 권력 감독·감시기관을 독립된 체제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을 넘어 이들 기관장들은 호선으로 선출하거나 추첨해야 한다. 추첨은 중요한 제도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 권력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분산된다. (공무원들이) 절대 줄서지 않는다.

또 대통령 권력 분산을 전제로 의회가 강화되어야 한다. 의회가 소극적인 정치가 아니라 적극적인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산, 인사, 정책, 감사 등 상당부분을 의회로 가져와야 한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의회책임제나 순수내각책임제를 주장하기 어려운 것은 한국사회에서 대통령 직선 열망이 강하고, 정당개혁이나 선거개혁, 의회개혁이 충분하지 않는 상태에서 개헌했을 때 그 정당능력과 의회능력으로 한국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통령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이다. 반대통령제는 능력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 반대통령제, 준대통령제는 어떤 형태인가?
"반대통령제, 준대통령제는 대통령책임제와 의회책임제의 혼합정체다. 대통령과 국회, 행정부와 의회라는 이원적 정통성을 갖는다. 의회책임제에서는 정부가 잘못하면 이를 의회가 책임진다. 의회책임제는 정당체제와 의회제도가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때 가능하다. 당장 우리의 정당체제와 의회정치가 상전벽해하듯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반대통령제, 준대통령제는 대통령과 국회, 행정부와 의회가 예산, 인사, 기구, 정책결정과 집행, 감사를 적절히 분배하는 제도다.

이를테면 대통령과 행정부가 인사, 예산편성, 집행기능을 가지면 의회는 예산법률주의와 감사권을 갖는다. 또 그래야 엄정한 권력분립이 가능하다. 또 만약 행정부의 인사권과 집행권을 대통령이 가지면, 감사원, 중앙선관위, 금감원, 공정거래위, 국가인권위 등 인권보호, 선거관리, 시장과 금융 감독기구 등은 감독부나 국민부로 독립시켜 대통령의 권력독점을 방지해야한다. 물론 인사권과 집행권을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가지면 감사권을 포함한 위의 기관들을 대통령이 통괄하며 상호 견제할 필요가 있다. 

반대통령제, 준대통령제의 핵심은 연립정치와 정당책임제를 위해 상당수 각료를 의회에서 충당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직선으로 뽑되 총리와 상당수 각료는 국회에서 선출·임명한다는 점에서 반대통령제다."

- 예전에는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가 많이 논의됐는데 최근에는 오스트리아의 이원집정부제가 관심대상이다. 이원집정부제는 대안이 아니라고 보나?
"준대통령제나 반대통령제도 대통령과 의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점에서 이원집정부제라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헌정체제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만약 국정을 내치와 외치로 나누는 이원집정부제라면 헌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분단국가에서 둘의 분리가 가능한가? 남북관계는 내치인가, 외치인가? 국가보안법 적용과 개폐문제는 내치인가, 외치인가? 최근의 전단살포 문제는 어느 영역인가? 결국 한국에서 영역을 나누어서 통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국정의 통합관리 측면에서 보면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다. 게다가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서 심각한 영역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 또 국민과 의회에서 대통령 지지자와 총리 지지자가 충돌했을 때 해결하기 어렵다. 내치와 외치를 두고 영역다툼하게 되면 헌재에 물어볼 것 아닌가? 정치의 사법화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영역별 이원집정부제는 쉽지 않다."

"대통령이 국회 개헌 논의에 개입해서는 안돼"

- 바람직한 개헌의 절차가 있다면?
"이상적으로는 시민사회의 사회적 논의와 의회의 정치적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헌법개정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의회가 중요하기 때문에 의회가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 대통령은 의회와 시민사회에서 개헌을 논의하는 동안 개입해선 안 된다. 대통령은 그 논의가 끝난 뒤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의회가 개헌 논의를 주도하되 헌법개혁 논의공간을 넓혀서 시민사회 의견을 많이 반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독자적인 논의공간이 있어야 한다."

- 그런데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도 헌법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지 않나?
"맞다. 그러나 현재처럼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은 국민 여론이나 입법부의 의견을 억압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발의권이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행정수반으로서 삼권분립 위반이다. 대통령이 국가수반 위치에서 개헌을 진행해라 마라고 개입하는 것은 안 된다. 그것은 권위주의 통치양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9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지도부와 회동을 마친뒤 함께 나오고 있다.
▲ 박 대통령, 여야 지도부와 회동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9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지도부와 회동을 마친뒤 함께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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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도 국회의 헌법 개정안에 자신의 의견을 내는 정도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독자적인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과 의회의 입법 논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차단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는 있지만, 국회의 입법사안에 직접 개입하여 좌우하는 것은 위헌의 요소까지 존재한다. 대통령의 권한 조항을 다 살펴봐도 의회의 개헌 논의에 개입할 권한을 발견하지 못했다. 제 개인 생각으로는 국회의 개헌 논의에 대통령은 개입할 수 없다. 의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3권분립이라는 의회민주주의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 지나치게 이른 질문일 수 있겠지만 개헌하면 한국사회가 어떻게 달라질까?
"첫째는 극한적인 진영대결의 종식이다. 최소한 크게 완화될 것임은 분명하다. 승자독식 권력구조와 대통령 권력독점의 해체는 권력분립, 분산, 공존의 정치를 통한 연합과 연립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지방자치 역시 획기적으로 증대된다. 이를 통해 진영논리나 진영구도가 상당히 완화될 것이다.

둘째는 책임정치 및 의회정치, 정당정치의 구현이다. 현재와 같은 완전한 대통령 무책임 정치와 정당 무책임 정치는 상당 정도로 극복이 될 것이다.

셋째는 영역별 부분주의를 통한 자율성의 획기적 증대다. 지금은 대통령 통할체제라서 국가의 모든 영역이 권력 정점의 구도와 의지를 따라가고 있다. 즉 남북관계, 경제, 교육, 복지, 노동, 외교 영역이 하나의 이념을 따라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로 일렬종대사회로 편제하려 한다. 그래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개혁을 통해 권력이 분산되면 남북관계, 복지, 교육, 환경, 외교, 지방자치 영역에서 각각 상당한 자율성이 보장되면서 사회적 역동성과 자율성을 통한 균형이 크게 제고될 것이다. 이를테면 남북관계는 현실적이라도 복지는 진보적일 수 있고, 외교는 보수적이지만 교육은 진보적일 수 있다.

넷째는 연합정치다. 준대통령제로 헌법을 개혁하면 연정을 할 수 있다. 연합하면 당대 존재하는 최고 인물과 최고 정책들이 연대할 수 있다. 즉 최고성이다. 그 다음에는 지속성이다. 연합하기 때문에 정부가 교체되어도 남북관계, 복지, 환경 등에서 극에서 극으로 바뀌지 않고 정책의 지속이 가능하다. 현재의 사생결단 구도가 무너지기 때문에 '최고성'과 '지속성'이 담보된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이 다 그렇다. 독일은 건국해서 23번의 정부가 들어섰는데 100% 연립정부였다. 항상 연립정부를 통해서 정책의 최고성과 지속성을 유지했다.

끝으론 통일문제다. 한국사회안에서조차 '수구꼴통' '종북좌파'라고 낙인찍으며 대립하는데 전쟁을 치른 적대적 북한과 통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현재 정도의 진보세력조차 '종북좌파'라며 수용하지 못하는 보수진영의 통일대박, 통일준비 담론은 허구다. 내부가 통합되어야 통일도 가능하다. 통일은 남북문제이기 이전에 내부문제다. 갈등을 수렴하고 연합하는 모습은 미래 통일사회의 당겨진 현재 모습이다. 저는 내부에서 연합하고 공존한 만큼 북한과의 통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공화주의사회 건설은 헌법개혁에 달려 있어"

- 누구나 '과연 개헌이 될까?'라고 묻는다.
"저는 그 질문을 거꾸로 던지고 싶다. 현행 헌법이 야기하는 이 많은 문제를 미래에도 계속 가지고 갈 것이냐,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줄 것이냐, 이 정도로 대가를 치렀으면 되지 않았냐고 진정 묻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한국사회 민주주의 역량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우리는 유신체제와 전두환 체제 아래에서 15년간 통치 받으며, 문제를 자각해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현행 헌법 아래에서는 그 두 배가 넘는 30년을 보냈다. 그런데도 헌법이 야기하는 이 많은 문제점을 판별해 내지 못하고 개혁하지 못한다면 그것 자체가 곧 우리 사회 민주주의 수준이자 역량이다. 헌법을 개혁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현행 헌법체제가 제공하는 숱한 문제를 감내해야 하지 않나 싶다. 정직하게 말하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학문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학문의 현재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제 스스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다.

헌법개혁은 좋은 사회, 능력있는 민주주의,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여러 노력 중의 하나다. 민주화 30년을 맞아 이제 한국사회는 좋은 공동체의 본질을 물어야 할 때다. 즉 민주공화주의를 통한 좋은 민주공화국가로 가야 한다. 정치가 시장경제를 제어할 수 없으니까, 일방적 신자유주의로 인해 불평등과 비정규직으로 달려가고 있으니까. 이것을 인간이 함께 사는 공화주의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는 헌법개혁에 달려 있다."


태그:#박명림, #개헌, #헌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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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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